SK行 택한 LG화학 직원들 소식에 타 계열사서도 ‘공감’
팀·부서 등 성과가 우선시되는 기업문화 속 경쟁사 대비 낮은 처우에 대한 불만 팽배, 변화 촉구 목소리도

/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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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인 고(故) 구본무 회장을 넘어설만한 독자적인 리더십이 요구되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에게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그룹 내 핵심계열사를 중심으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지적하며 소속감에 대한 회의적 반응들이 속속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계열사의 일부 임직원들은 LG그룹을 향한 대외적인 평가와 달리, 각 계열사 내부에서는 다소 온도차를 보이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한다.

LG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 상당히 긍정적인 대외 이미지를 구축한 그룹으로 여겨진다. 구광모 회장만 하더라도 편법 없는 정상적인 상속세 납부를 진행 중이다. 창업주는 독립자금을 지원하고, 일가 대다수가 성실한 군복무를 이어왔다는 점 등도 높이 평가된다. ‘LG의인상’으로 대표되는 사회공헌활동과 가전제품 등의 품질·기술력도 대외신임도를 방증하는 대목들이다.

9일 업계 등에 따르면, 그룹 내부에서 소속감에 대한 회의를 품는 반응들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펼치면서부터다. LG화학은 최근 2년 새 전지사업본부 핵심인력 76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상당한 영업비밀이 유출됐다고 주장하며 미국 사법당국에 SK 측을 고발했다.

이 과정에서 처우 문제가 불거졌다. 익명을 요구한 LG화학 재직자는 “개인적으로는 SK 측의 기술유출이 의심되지만, 이와 별개로 불과 2년 새 76명의 인력들이 왜 SK행을 택했는지에 대해서 회사 차원에서 심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며 “회사 차원에서는 기술유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도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LG화학이 1위, SK이노베이션이 3위다. 최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두 업체는 각각 시장점유율 4위와 9위를 기록했다. 연봉은 SK이노베이션이 앞선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SK이노베이션은 비단 석유·화학업계를 넘어 국내 대기업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보수 수준을 자랑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업계 1위에 대한 자부심보다 연봉을 바탕으로 한 대우·처우에 직원들이 높은 관심을 갖게 됐고, 유행처럼 SK행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 재직자의 전언이었다. 소송관련 소식에 앞서 공고가 나고, 맞물려 전형이 치러진 SK이노베이션 경력직 채용에도 상당수 LG화학 재직자들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소속으로 이번 SK이노베이션 배터리부문 채용에 응했다는 한 직원은 “면접을 앞두고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기사를 통해 접했다”면서 “LG화학 소속이기에 채용과정에서 행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내부에서도 상당한 인원이 이번 채용에 응시한 것으로 안다”며 “대부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룹 내 타 계열사 재직자들도 비슷한 반응들이다. 특히 LG화학과 같이 특정 분야를 선도하는 핵심계열사 재직자들일수록 공감대가 높은 모양새다. 한 관계자는 “부장 이상급 관리자들은 ‘우리보다 나은 회사가 몇이나 되냐’며 현재 직장에 만족하길 권하지만, 그 몇몇 기업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냐”고 답했다.

시사저널e와 접촉한 LG맨들은 “모든 조직에는 불만이 있기 마련이고, 어찌 보면 모든 요구조건을 회사에서 수용해 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부심은 그룹 이미지에서도 비롯되지만, 불만은 각자가 수령하는 연봉에서 가장 많이 기인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소위 ‘월급쟁이’ 중에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회사임엔 분명하지만, 특별히 내세울 수조차 없는 환경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인 셈이다.

이들 중 한 직원은 “인화로 대표되는 기업문화가 원인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개인의 성과보단 팀·부서 등의 성과가 우선시되는 기업문화 속에서 열심히 근무해도 부서 차원의 성과로 반영되고, 이는 곧 부서장의 공으로 평가되는 문화 속에서 경쟁업체보다 낮은 처우가 더해지면서 이탈을 꿈꾸게 된다는 요지다.

아울러 직원들은 구광모 회장이 변화의 물꼬를 터주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기업 동일인’ 지정을 앞둔 구 회장은 대외적으로 그룹 총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모양새다. 내부구성원들에게 부친을 넘어설 독자적인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점인 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부정적인 사내 여론이 그룹 내부에 확산될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면서 “리더십 확보와 리스크 줄이는 차원에서 상당히 고민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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