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하며 오너일가 견제역할 나서···현 정부 방향 등 여러 상황 들어맞아 흐름 계속 이어질듯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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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 대기업들 오너일가가 마음 놓고 경영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회사의 또 다른 주인인 주주들을 특별히 견제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특히, 사모펀드나 연기금 같은 주요 주주들이 방향을 같이 한다는 것은 오너일가에게 큰 힘이 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2년 동안 이 같은 흐름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지배구조를 바꾸거나 심지어 사내이사 연임을 할 때에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사모펀드와 국민연금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 2년 사이 재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들러리 역할을 하던 사모펀드와 국민연금이 재벌 저격수로 위상이 격상됐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하긴 했지만 과거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오너일가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때문에 진땀을 빼야 했다.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이 시급했던 현대차는 자체적으로 개편안을 내놓았다가 엘리엇에 퇴짜를 맞았다. 나아가 엘리엇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합병을 골자로 하는 자체 개편안까지 꺼내들며 현대차를 압박했다.

엘리엇의 공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총을 앞두고 양사가 총 8조3000억원의 배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가 제시한 배당금의 6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비록 주총 표대결에서 패하긴 했지만 이번 정의선 부회장과 엘리엇의 대결로 주주가 오너를 긴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평가다.

대한항공 일가는 강성부펀드(KCGI)의 맹공에 맞서야 했다. 강성부펀드는 대한항공의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의 2대 주주(14.98%)다. 비록 주주제안을 하려면 지분 6개월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 등 때문에 이번 주총에선 잠시 물러나는 모양새가 됐는데, 재계에선 내년을 주목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한진칼 상당 지분을 갖고 있는 강성부 펀드의 진짜 실력발휘는 내년 주총이 될 것”이라며 “조원태 회장은 그 전까지 지분확보 및 입지 다지기에 총력을 다 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모펀드와 더불어 국민연금도 오너일가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올해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총에서 고(故)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부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소액주주들의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주총 전부터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고려하며 사실상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퇴진 분위기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기관인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보유한 지분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더욱 국민연금의 행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재계에선 문재인 정권 들어 국민연금과 사모펀드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현 정권에서 강조하는 재벌개혁 방향이 오너경영 강화보다 주주 권리 강화에 가깝다는 점 ▲사회적 물의 등으로 재벌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 ▲재벌들이 세대교체 시대를 맞아 과거와 달리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 등이 맞물려 지금의 상황이 됐다는 해석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한국의 자본시장 발전 단계와 현 정부가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사모펀드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꼭 잘못된 변화라고 할 수 없지만, 특히 사모펀드는 단기 실적에 집착할 수 없다는 점 등 우려되는 부분도 공존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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