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중에 ‘계주생면(契酒生面)’이라는 말이 있다. ‘계모임에서 마시는 술로 생색낸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마치 자기 것처럼 생색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속담으로 치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는 말이 있다. 카드업계 사이에선 금융당국의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을 두고 ‘계주생면’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자영업자 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 ‘카드수수료 종합개편방안’을 내놨다. 연매출 30억원 이하의 중소형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해주는 게 개편안의 주요 내용이었다. 금융위원회는 개편된 수수료율로 전체 가맹점의 96%가 우대수수료를 적용받는 것으로 분석했다. 사실상 우대수수료율이 아닌 ‘일반수수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비중이다.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는 좋다. 그러나 좋은 취지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자영업자들로부터 덜어낸 비용 부담을 모두 카드사가 지게 됐다는 점이다. 수수료율 인하 여파로 카드사들은 연간 약 8000억원의 수익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정부도 이런 여파를 전혀 몰랐던 건 아니다. 때문에 중소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대신 대형가맹점의 수수료를 인상하겠노라고 카드사에 약속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현대·기아차가 신한·KB국민·삼성카드 등 5개 카드사에 가맹점 계약해지 통보라는 강수를 놓으면서 상황은 당초 계획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카드사들은 앞서 1.8%대였던 수수료율을 1.9%중반대로 0.1%포인트 올리겠다는 계획이었으나 결국 현대차 제시안을 수용하면서 수수료 인상 계획은 후퇴하게 됐다.

대형가맹점과 카드사 간 갈등은 결국 정부의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에서 시작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뒷짐 진 채로 사태를 방관했다. 중소형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는 건 금융당국의 관할이지만 대형가맹점 수수료를 올리는 일은 “사적계약에 당국이 일일이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드노조에서 “필요할 땐 관치금융, 대형가맹점에 대해선 시장자치”라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뒤늦게 카드사를 달래기 위한 후속대책을 내놨지만 업계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카드노조는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이달 말 총파업을 단행하겠다고 경고했다. 카드사의 총파업도 문제지만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수수료 인하로 발생한 카드사의 손실이 결국 돌고 돌아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소비자가 누리던 혜택은 줄어들고 있다. 포인트 적립률이 높거나 할인 혜택이 많아 소비자들로부터 각광받던 카드 상품이 올 들어 40여종 단종됐다. 향후 피트니스센터 및 어학원에서 제공하던 3개월 무이자할부 등의 혜택도 줄어들 전망이다.

신용카드 혜택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 신용카드 사용 빈도도 낮아진다. 이용 유인이 낮아져 쓸 돈도 덜 쓰게 된다. 자영업자 입장에선 매출 감소와 영업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수수료 인하 정책의 나비효과가 결국 취지에 반하는 역효과로 나타나는 셈이다.

카드사 주머니로 ‘자영업자 살리기’라는 생색은 냈지만 결국 남의 주머니로 생색낸 대가는 ‘정책실패’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관치금융과 시장자치를 오가는 이중잣대나 남의 주머니로 생색내는 정책으로는 어느 누구의 환영도 받을 수 없다. 카드사가 총파업을 단행하기 전에 금융당국은 이같은 나비효과를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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