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이재용 부회장 만날 무렵에도 압수수색은 그대로 진행···기업 협조 필요하지만 지지층 눈높이도 맞춰야 하는 딜레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세계최초 EUV(극자외선)공정 7나노로 출하된 웨이퍼ㆍ칩에 서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라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세계최초 EUV(극자외선)공정 7나노로 출하된 웨이퍼ㆍ칩에 서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라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업들은 그야말로 ‘초긴장’했다. 마침 주요 대기업들이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농단에 연루됐었던 터라 정권 출범 초기부터 재벌개혁 목소리가 드높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복잡 미묘하다. 한 재계 인사는 “이번 정부의 행보를 보면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기업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듯 하면서도 어쩔 때 보면 개혁해야 될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때부터 기업들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기업인들을 따로 불러 국정농단 사태를 빚었던 박근혜 정권을 반면교사 삼아 공개적으로 만나 소통하려는 모습이었다. 당시 한 정권 인사는 “우린 태생적으로 기업인들을 몰래 불러 특정 주문이나 요구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심지어 정부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라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할 말이 있으면 공개적으로 숨기지 않고 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정권 인사들은 현장을 돌며 기업인들을 격려했고 대기업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SK하이닉스 공장에서 열린 제8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이 한 마디가 화룡점정으로 꼽힌다. “결국 기업의 투자 촉진과 활력 회복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맞춤형 지원을 하는 서포터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던 포지티브 규제도 점차 네거티브 규제로 변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네거티브 규제는 기업들이 규제개혁을 이야기하며 가장 필요성을 강조했던 부분이다.

이 같은 내용만 모아보면 정부와 기업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던 것처럼 보인다. 허나 이와 무관하게 기업들은 정부와의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것과 정책적 부분이 따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기업 활동에 있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 등을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도 결국 정부의 재벌견제 일환으로 해석한다. 이어 하향식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기업들은 정부의 압박으로 느끼고 있다.

특히 작금의 삼성은 정부와 기업의 현 관계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와 기업의 유화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이벤트와 기업 사정은 따로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허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이 있을 때에도 검찰의 삼성 수사는 거침없이 진행됐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연구소에서 만난 지 일주일만인 지난 7일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전격 압수수색해 사무실 바닥에 숨겨져 있던 노트북 등을 확보했다. 지난해 7월 문 대통령이 삼성전자 인도 신 공장을 방문해 이 부회장을 만났을 당시에도 검찰은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했고, 같은 해 9월 이 부회장이 방북했을 무렵에도 검찰은 에버랜드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재계에선 정부의 이 같은 행보의 배경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자리 창출의 주체가 결국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일부 지지층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행보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배경은 문재인 정부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엔 공감하지만, 개혁 수위나 방식 등에 대한 차이가 문 정부의 정책 및 행보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만남에 대해서도 같은 정부 내에서도 문제없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다른 일각에선 비판하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다른 한편으론 큰 흐름에서 보면 결국 재벌 개혁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부의 행보를 보면 대외적으론 기업들과 파트너십 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책 등 실제 행동으로 임하는 것을 보면 그 반대적 성격이 짙다”며 “대외적 메시지가 아닌 실제 행동으로 판단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면 계속해서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