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리다며 웃어 보이지도,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배우 이재인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영화 <사바하>>에서 불행한 운명을 살아가는 소녀 ‘금화’, 악령과 짐승과 사람의 경계가 불분명한 쌍둥이 언니 ‘그것’을 연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재인의 나이는 금화와 같은 열여섯이다. 작은 체구와 맑은 얼굴이 아니었다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 이 배우를 영화 밖에서 만났다. 솔직히 그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대화를 편하게 나눌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러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 앞에 있는 사람은 작고 예쁜 열여섯 소녀가 아니라 배우 이재인임을. 촬영을 마치고 그에게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PHOTOGRAPHY=레스
하얀색 드레스와 덧입은 데님 스커트는 모두 렉토 제품

 

요즘 어떤 얘기를 제일 많이 들어요?

최근에 영화 <사바하> 홍보하려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는데요. 거기에 올린 점프샷 얘기를 제일 많이 들었어요. 되게 잘 찍었다고, 어떻게 찍은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점프 사진 촬영에 재미들려서 열심히 찍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까지 적극적으로 홍보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네. 그냥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포스터에 나오는 주인공중 한 명인데,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영화 <사바하>는 어떤 과정을 통해 캐스팅된 건가요?

처음에는 동생인 금화 역할로만 오디션을 봤어요. 1차 오디션 때 금화의 내레이션을 했는데, 제가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 극의 배경이 강원도인데, 제가 강원도 원주 사람이거든요.

오디션을 보고 나서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글쎄요. 오디션은 볼 때마다 결과를 모르겠어요. 그냥 보고 나오면 잊어버려요. 계속 기다리려고 하지 않으려고 해요. 안 되면 저만 힘드니까요. ‘안 되더라도 다른 길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쿨하네요.

아니에요. 사실 마음속으로는 힘들어요. 근데 잊어버리지 않으면 저만 더 힘들어지잖아요.

배역이 확정되었을 때 연기할 캐릭터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어요? 혹시 삭발을 하는 것도 알고 있었나요?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시작했어요. 워낙 어려운 캐릭터다 보니 제가 잘 알고 있어야 표현이 가능했거든요. 겨울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 가을 내내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준비를 많이 했어요. 삭발은… 오디션 볼 때 혹시 삭발을 할 수있느냐는 질문을 받긴 했어요.

하겠다고 했어요?

일단 할 수 있다고 했죠. 뭐 나중 일이니까요.(웃음) 또 좋은 캐릭터인데 삭발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너무 아쉬울 것같았어요.

처음에는 금화 역할로만 캐스팅됐는데, 언니인 그것 역할까지 1인 2역을 하겠다고 직접 제안도 했다면서요?

네. 금화를 연기할 때 언니인 그것의 마음을 알아야 했고, 그것을 연기할 때는 금화의 마음도 아는 게 좋을것 같았어요. 그렇게 두 자매가 상호 작용을 잘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1인 2역을 하겠다고 말했어요.

금화와 그것을 연기하기 위해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금화는 언니인 그것에 대한 애증, 그리고 신에 대한 원망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어요. 그러면서 감정 기복이 심한 사춘기를 겪는 모습도 드러내려고 했어요. 감정보다 보이는 것에 더 집중했어요. 모습이나 동작, 소리 연습을 많이 했어요.

<사바하>는 몇 살 때 찍은 거예요?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찍었어요.

영화 속에서 금화는 중학교 3학년으로 나오는데요, 금화보다 어렸을 때 찍은 거네요.

중학생은 한 학 년 올라갈 때마다 감정이나 생각이 정말 많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3학년은 어떨까에 대해서 엄청 고민하면서 연기했어요. 하교 장면이 있는데요, 굉장히 짧은 신인데 엄청 신경을 썼어요.

지금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보니까 어때요? 제 나이에 맞게 잘 표현한 것 같나요?

교복 치마가 불편해서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거 보면 3학년을 잘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감정적으로 저는 사춘기가 빨리 와서 오히려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사바하> 촬영할 때가 사춘기의 정점이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더 표현이 잘된 것 같아요.

PHOTOGRAPHY=레스
보랏빛 팬츠는 코스, 파란색 구두는 레이첼 콕스, 하얀색 터틀넥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평범한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해요.주변인을 관찰하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거든요. 주인공으로 제일 많이 등장시키는 건 동생이에요.”

사춘기가 지난 중학교 3학년의 생활은 어때요? 오늘도 학교를 마치고 오느라 늦은 저녁부터 밤까지 촬영을 했어요. 심지어 원주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서울까지 먼거리를 와야 하는데도 마지막 수업까지 다 들었다면서요.

학교를 빠지면서까지 무리해서 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 생활도 경험을 해봐야 연기할 때 도움이 될것 같아요. 그리고 공부도 필요하고요. 역사를 잘 배워두면 나중에 사극 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수학을 열심히 배워두면 나중에 수학자 역할을 잘해낼 수도 있으니까요.

연기와 학교 다니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재미있어요?

어렵네요. 학교 생활은 친구들이 있으니까 재미있고, 연기는 그 자체로 재미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둘 다 못놓는 것 같아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연기를 했다고 들었어요. 그때부터 연기에 재미를 느낀 건가요?

유치원 때 부모님이 ‘해볼래?’라고 해서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세트장도 신기하고 카메라에 찍히는 것도 좋았어요. 보람도 느꼈고요. 그래서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는 보는 것도 찍는 것도 모두 좋아요.

그런데 영화가 왜 그렇게 좋은 거예요?

영화관 가는 걸 진짜 좋아하는데요. 팝콘 냄새도 좋긴 한데, 깜깜한 곳에서 다른 걱정 없이 영화에만 집중할 수있어서 좋아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아무 생각이나 걱정 없이 영화 속에 빠져든 느낌이 좋아요.

수없이 반복해서 본 영화가 있을까요? 제일 많이 본 영화요.

<물랑루즈>랑 <중경삼림>이요. 사랑 이야기인 것도 좋고, 화면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연출도 좋아해요. 아, <암살>도 많이 봤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10번쯤 본 것 같아요.

PHOTOGRAPHY=레스
체크 패턴 수트와 회색 셔츠는 모두 스튜디오 톰보이, 겨자색 슈즈는 레이첼 콕스 제품

 

작품을 보는 눈이 범상치 않네요. 갑자기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하네요. 요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들은 어떤 것이 있나요?

일단 귀찮음이 80% 정도. 영화 찍을 때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평소에는 마음 편하게 살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걱정이 조금 있어요. 5% 정도. 그런데 나머지는다 즐거운 생각을 많이 하니까 괜찮아요. 요즘 행복해요. <사바하>로 무대 인사를 다녔는데 관객들이 제 플래카드도 만들어왔더라고요. 얼떨떨하면서 좋았어요. 팬이 생긴 건처음인데, 너무 기분이 이상해요. 팬이 생길 거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벌써 시간이 꽤 흘렀네요. 이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가면 밤 12시가 넘을 텐데, 피곤하지는 않아요? 평소에 일찍 잠드는 편이에요?

이거 비밀인데, 엄마 아빠는 모르시지만 저 사실 엄청 늦게 자요. 자기 전에 일기도 쓰고, 글 쓰고, 내일 할 일 적고 하다 보면 새벽이에요. 사실 낮보다는 밤에 뭘 하는 걸 더좋아해요. 그림도 밤에 더 잘 그려지고, 요즘에 대본도 쓰는데 주로 밤에 작업해요.

대본도 써요?

단편이긴 한데요, 완성한 건 서너 개 정도 돼요.

어떤 이야기를 써요?

평범한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해요. 주변인을 관찰하면서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거든요. 주인공으로 제일 많이 등장시키는 건 동생이에요. 일종의 저의 뮤즈예요. 동생은왜 자꾸 자신을 주인공으로 쓰냐고 불평을 하는데, 동생 얘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진짜 영화로 만들어봐도 좋겠네요.

올해 목표예요. 친구들 모아서 조금씩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하고 있는데요 완성한 게 없어요. 짧아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완성해보고 싶어요. 이런 것도 시도해보면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모든 경험을 연기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네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는 누군가에게 마냥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스스로 만족하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싫증이 날 때까지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연기를 할 것 같아요?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지만, 아마 그렇겠죠.

 

아레나 2019년 4월호

https://www.smlounge.co.kr/arena

PHOTOGRAPHY 레스 STYLIST 배보영 HAIR&MAKE-UP 김지혜 CONTRIBUTING EDITOR 강예솔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