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017년 연평균 2366명 산재 사고 사망···기업·책임자 처벌은 대부분 '벌금·집행유예' 그쳐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안 국회 계류 중···“기업 솜방망이 처벌에 참사 되풀이”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2차 범국민 추모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2차 범국민 추모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매년 2366명의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죽었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산재 사고에 따른 손실액은 연평균 16조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산재 사고와 이에 따른 노동자의 죽음은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와 산재사망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시민단체들은 사업주들이 산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현실이 산재 사고가 이어지는 근본 원인이라고 밝혔다. 산재 사고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야 산재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연평균 2366명 산재 사고 사망···기업·책임자 처벌은 '벌금·집행 유예' 

30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에 따르면 2001~2017년 연평균 2366명이 산재 사고로 죽었다. 이 기간 정부 통계로만 154만3797명이 산재 사고를 당했다. 이 가운데 4만217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같은 기간 정부 통계에 따른 산업재해 경제적 손실액은 284조7479억원이었다. 연평균 16조7499억원 규모다.

그러나 중대재해 사고에 대한 기업 책임자 처벌은 거의 없었다. 실례로 2016년 6월 28일 고려아연 황산 누출사고로 5명의 하청노동자가 전신 화상을 입고 이 가운데 2명이 죽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유해화학물질인 황산 제조설비 보수공사 도중 황산 3만9000리터가 누출된 것이다.

고려아연 황산 누출사고와 이에 따른 기업 처벌 현황. / 이미지=민주노총
2016년 고려아연 황산 누출사고와 이에 따른 기업 및 관계자 처벌 현황. / 이미지=민주노총

검찰 수사 결과, 고려아연은 협력업체인 한림이엔지 측에 설비 내에 황산이 잔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작업 개시 전 황산을 제거하는 드레인(Drain) 작업도 실시하지 않았다. 현장 안전점검 없이 안전작업허가서를 한림이엔지에 무단 발행했고, 한림이엔지는 노동자들에게 방산복 등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았다. 2명의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하청기업의 부주의와 잘못으로 죽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위험업무를 도급한 원청의 책임자들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인에 대한 처벌도 원청 5000만원, 하청 1000만원에 그쳤다.

2015년 7월 3일 한화 케미칼 울산공장 폭발 사고로 하청노동자 6명이 사망했다. 검찰 수사결과 한화케미칼은 폐수집수조의 가스를 관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화케미칼은 가스측정 등 안전점검 없이 하청업체에게 용접작업을 지시했으며 하청업체 역시 기본적인 안전점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심과 2심 법원은 원청업체에 벌금 1500만원, 기소된 원하청 관리자들에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299명이 죽고 5명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 참사의 총괄 책임자인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과 청와대 핵심 책임 인사들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승선을 인가해 준 공무원 4명의 최종 징계는 감봉 3개월과 정직 1개월에 그쳤다.

이에 노동계와 산재 사망 노동자의 유가족, 시민사회는 산재 사고에 대한 원청 사업주와 법인의 책임을 강화해야 산재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 노동계·산재 사망 노동자 유가족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있어야 사고 막는다”

이상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위원장은 “영국의 국가기관인 보건안전청에 따르면 매년 발생하는 산재사망 중 70% 이상이 사업주의 무책임한 경영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대다수의 산재사망이 사업주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예방 가능한 것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라며 “거의 모든 산재사망이 원칙적으로 예방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고 있다"며 ”이는 사업주들이 산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산재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한 고리다“고 밝혔다.

특히 이 위원장은 규모가 큰 사업장일수록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 책임을 묻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생산 과정에서 혹은 생산물로 인한 노동자, 시민 생명 위협 행위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묻기가 더 어렵다. 대기업일수록 의사 결정 구조가 복잡하고 다층화 돼 있어 해당 행위에 대한 책임을 ‘한 개인’에게 묻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현행법은 중소기업에게는 책임을 묻기 쉽지만 대기업에게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책임자가 처벌받을 가능성이 낮은 모순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에 산업 재해의 경우 원청 등 기업의 경영 책임자와 고위 임원, 해당 기업, 재해와 관련된 정부의 행정 책임자들의 처벌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에 계류 중인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2017년 11월 고(故) 노회찬 의원과 박주민, 정동영 의원 등이 공동발의했다. 이 특별법안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가 이 법에 따른 안전조치의무 및 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며, 해당 법인에게도 벌금을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이 경우 기업 경영주와 업무 관련 공무원의 처벌에 대한 하한형도 포함했다.

구체적으로 이 법안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했다.

또 사업장이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감독의무 또는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이 직무를 유기해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법안을 2년 넘게 방치하고 있다. 그 사이 수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 현장에서 다치고 죽었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24)가 석탄운송설비에서 운전 업무를 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

산재·재난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도 이러한 참사가 되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입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는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산재·재난참사 유가족과 국회의원들이 함께 하는 이야기 마당’에서 “우리 유미는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었다. 유미가 병에 걸린 후에 보니 유미와 둘이 짝으로 일했던 분도 백혈병으로 죽었다. 더 알아보니 삼성에서만 직업병 피해 자가 500명 가까이 되고, 150명 넘게 죽었다”며 “그러나 피해자가 수백명이 나와도 삼성은 처벌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에 따르면 2018년 11월 28일 기준 삼성그룹 직업병 피해자 450명 가운데 151명이 사망했다.

황씨는 “직업병 외에도 화학가스 사고로 몇 번이나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삼성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던 불산 사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작년에 있었는데 몇백만원 벌금이 전부였다”며 “사람이 죽어도 벌금 몇백만원 내면 끝인데 삼성이 왜 돈과 노력을 들여서 안전한 환경을 만들겠는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만들어 반복해서 사람이 죽는 기업들은 벌금도 세게 매기고, 처벌도 세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특히 권한이 있는 기업책임자들을 꼭 처벌해야 한다. 권한이 있는 사람을 처벌해야 이러한 문제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숙씨는 “제 아들 용균이는 2018년 12월 11일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운전 및 점검 업무를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이는 사고를 당해 죽었다”며 “하청회사인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해 고작 안전교육을 3일 받은 상황에서 밤에, 그것도 혼자서 현장에 투입됐다. 현장은 온통 분진가루에다 한 사람당 2㎞를 점검하고 낙탄을 처리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용균이 동료들이 몇 년 동안 회사에 28가지 안전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는 3억원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그 요구를 듣지 않았다”며 “당연히 줘야 할 헤드랜턴이나 손전등도 없이 현장에서 흐릿한 불빛에 의지해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 용균이는 사고 당일 휴대폰 라이트를 켜서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김씨는 “고용노동부도 사고 책임이 있다. 한국서부발전에서만 고의 누락한 4명을 포함해 10년간 12명의 하청노동자가 업무 중 사망했다. 만약 사고 1년 전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었을 때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관리 감독했더라면 또 우리 아들이 처참하게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여태껏 기업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아무 제재가 없었다. 노동부는 용균이가 죽은 뒤 특별안전결과를 발표하면서 서부발전 김병숙 사장의 처벌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김씨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을 묻고 기업을 제대로 처벌해야 이러한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캐나다와 호주는 2003년과 2004년에, 영국은 2008년에 기업 살인법이 제정됐다.

지난 28일은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었다. 이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 등은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위치한 김용균씨 묘역 앞에서 정부와 국회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했다. 김용균 노동자 묘비와 추모 조형물 제막식도 했다.

이날 현장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 CJ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군,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 고 홍수연양, 토다이 현장실습생 고 김동균군, tvN 고 이한빛 PD 등의 유가족 등이 참석했다.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인 지난 28일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열린 청년 노동자 고(故) 김용균 동지 묘비 및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고인의 아버지 김해기 씨(왼쪽)와 어머니 김미숙 씨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인 지난 28일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열린 청년 노동자 고(故) 김용균 동지 묘비 및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고인의 아버지 김해기 씨(왼쪽)와 어머니 김미숙 씨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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