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재미있는 수학책을 보고 있었다. 숫자가 없는 수학책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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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는 큰아이가 불쑥 건네는 말. “엄마. 재밌는 수학책 한 권 보여드릴까요?” 무슨 말인가 싶어 관심을 보였더니 한마디를 더 보탠다.

“수학책인데요, 숫자가 하나도 없어요.”

숫자가 없는 수학책이라니. 수학이라면 꼬이고 얽힌 숫자가 들어간 문제를 다양한 연산 법칙으로 열심히 푸는 것 아닌가? 알고 보니 ‘사고력 수학’과 관련된 책이었다. 사실 부모인 내가 봐도 수학을 이해하는 건 참 어렵다.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다. 수학 성적은 대한민국 입시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모여 있는 교육 커뮤니티에는 오늘도 쉴 새 없이 “사고력 수학을 따로 가르쳐야 하느냐?”는 질문이 올라온다. 사고력 수학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걸까?

작은아이 초등학교 시절, 갑자기 사고력 수학 붐이 일었다. 안 가르치면 뒤처질 것 같아 테스트를 받으러 갔는데 동생을 따라온 큰아이가 덩달아 테스트를 받고 싶단다. 사고력 수학을 배운 적도 없는 큰아이지만 기본적으로 수학을 좋아하니 테스트를 해보도록 했다. 웬걸, 큰아이는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때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사고력 수학의 정체는 뭐지?

헷갈리던 차에 사교육 전문가와 인터뷰할 일이 생겼다. 그는 사고력 수학은 학원가의 마케팅에 불과하다면서 자신도 사교육 종사자로서 학부모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요지는 이러했다.

“사고력 수학 문제집들은 IQ 테스트처럼 교과서에 없는걸 모아놓은 게 많다. 2000년 초반에 외고 입시에서 수학 시험을 못 보게 하니 수학에 대한 능력을 평가하려고 교과서 밖에 있는 문제들로 대체해 만들었다. 그사이 많이 생긴 영재원에서도 교과서에 없는 문제들이 등장했는데 그걸 ‘사고력 수학’이라고 불렀다. 배우려는 학생이 많아질 거라 예상한 사교육계가 ‘학교 수학을 잘하려면 사고력 수학이 필요하다’고 홍보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문가인 내 생각은, 초등학생의 경우 분수와 소수를 포함한 사칙연산만 잘하면 중학교 수학을 소화하는 데 아무 부족함이 없다. 사고력 수학을 잘해야 학교 수학을 잘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애초에 수학을 좋아하고 수학적 두뇌를 타고났다고 평가받는 큰아이는 굳이 사고력 수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사고력 수학이란 게 따로 존재하지 않기에 잘했던 것이다. 주변에서 수학 점수를 잘 받는 아이들을 보면 내신 수학, 즉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수학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렇게 이해한 내용을 심화시키는 데 시간을 쏟은 사례가 많다. 학교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보통 두 가지 방법으로 공부한다. ‘심화’와 ‘선행’ 학습이다. 심화는 문제 풀이의 조건이 많아진다거나 수학의 각 단원에서 배운 개념들을 연결하는 응용력이 필요하고, 선행은 말 그대로 그저 교과서 과정을 앞서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하자. ‘중학생 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가 되지 않으려면 교과서 수학을 잘 이해하고 그 내용을 어떻게 응용해도 풀어낼 수 있도록 심화 실력을 기르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일단, 지금 내 아이가 배우고 있는 수학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체크하고 어려워한다면 선행 학습을 잠시 멈추는 것도 방법이다. 진도를 나가다 보면 언젠가 이해하겠지 하다가 나도 실패한 경험이 있다. 선행 학습에 중심을 두었던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 한때 힘들어했다.

수학의 한 영역에서 개념 이해가 크게 비어 있었던 것을 외면하고 열심히 선행 학습만 하다가 뒤늦게 개념을 이해하느라 혼자 마음고생이 많았다. 자칫 이 시기에 잘못하면 입시를 앞두고 수포자를 만들기 쉽다. 어린 시절 수학에 대한 관심을 붙여준다고 억지로 시킨 사고력 수학이 오히려 아이에게 수학은 힘든 과목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줄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며 지켜본 경험자로서 차라리 책 한 줄 더 읽어 글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수학에도 도움이 된다.

대한민국 입시에서 수학은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특히 수학은 답답하더라도 지금의 실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학습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작업은 모두 중학교 때 끝나야 한다. 중학교 때다져진 기본 실력이 결국 고등학교에서 점수를 만들기 때문이다.

 

글쓴이 유정임

<이문세의 별밤> 작가 출신으로 현재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으로 근무 중. 두 아들을 카이스트와 서울대에 진학시킨 워킹맘으로 <상위 1프로 워킹맘>의 저자이다.

우먼센스 2019년 4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에디터 하은정 유정임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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