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첫 푸틴 대통령과 북러정상회담
양 정상 단독회담→확대회담→연회 순서로 4시간 동안 ‘비핵화·대북제재’ 논의 전망
푸틴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에게 ‘러시아 활용·6개국 다자협상’ 제안할 듯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만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본격적인 정상회담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블라디보스토크 EPA)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극동연방대학에서 만나 정상회담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블라디보스토크 EPA)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첫 북러정상회담이 25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렸다. 양측은 장기 경제협력 방안과 북한 비핵화 협상 전략 공유 및 지지를 목표로 회담에 임할 전망이다. 특히 러시아가 북핵 6자회담 유용론을 제기한 상황에서 북러 정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간 협상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지난 24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특별열차로 평양을 출발한 김 위원장과 북한 대표단은 러시아 하산을 거쳐 오후 6시쯤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은 극동연방대학에 도착한 뒤 별도의 외부 일정을 갖지 않고 휴식을 취하며 측근들과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항공기 편으로 25일 오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양 정상은 총 4시간에 걸쳐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러시아, 북한에게 ‘러시아 적극 활용·6자 회담 확대’ 제안 가능성

김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남북정상회담 3차례, 북중정상회담 4차례, 북미정상회담 2차례 등을 가졌지만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담 핵심 의제는 북한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 조치 차원의 제재완화 문제, 경제협력을 비롯한 북러 관계 현안이다.

이번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를 적극 활용하라고 제안할 전망이다. 앞서 러시아 크렘린궁 측도 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문제의 정치·외교적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고 언급한 대목에서 미뤄볼 때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북핵 6자회담(한국·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등 다자 협상의 틀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북러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효과적 해결책은 6자회담이 유일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서는 (6자회담 외에) 효과적인 국제적 메커니즘이 없다”며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들이 진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그런 모든 노력이 도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 협상이 난관에 봉착한 상황에서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과 장기전에 대비해 우군인 러시아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는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식을 지지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북한 비핵화 조치에 맞춰 미국 등 국제사회가 대북제재 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협상 진전을 위한 단계적 비핵화 협상 방식에 미국 호응을 촉구할 전망이다. 이외에도 북미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 사회 공조 필요성도 강조하며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이례적으로 해외 외신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 전 잠시 정차한 하산에서 러시아 국영TV 인터뷰를 통해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이) 지역 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하고 공동으로 조정해나가는 데서 매우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오후(현지시간) 북러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오후(현지시간) 북러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 러시아·북한 밀착 행보에 견제

미국은 북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촉구하는 한편 러시아를 겨냥한 항공모함 동시전개작전 상황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 간 밀착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이날 방영된 CBS 인터뷰에서 “비핵화 합의는 오로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근본적 전략 결정에 달렸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반도의 전략적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진정한 기회가 아직도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것들을 봐왔다”며 “비핵화 협상은 평탄치 않고, 도전적일 것이다. 우리가 이 과정을 어떻게 진전시킬지에 대해 대화를 할 기회를 더 갖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CNN은 이날 ‘미 군함이 러시아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다’라는 기사를 통해 지중해에서 실시된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강습단과 존 C 스테니스 항모강습단 동시전개 직전 상황을 보도했다. 지중해에서 두 항모가 동시 훈련한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훈련에는 존 헌츠먼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도 이례적으로 동행했다. CNN은 또 항모 전개 및 전투기 이·착륙 등을 담은 화면을 내보내며 “미군은 이 지역에서 이뤄지는 러시아 군사 태세 강화를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면서 “이번 항모 배치를 통해 러시아에 분명한 메시지를 모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헌츠먼 대사관은 이번 훈련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지중해를 항해하는 이 상황을 외교라고 한다”며 “이것은 전진 배치된 외교”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을 상대로 대북제재 완화를 압박하려는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러시아는 6개국 다자회담을 제안하면서 비핵화를 공동목표로 북한의 경제제재를 완화하자고 회담에서 주장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북러회담 이후 시진핑 주석과 만나 회담 결과를 공유하면서 다자 협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나단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아산플래넘 2019’ 포럼에 참석해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외교관계를 재개한다는 점에서 이용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머문 만큼 러시아라는 우군이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렉서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도 “이번 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도 북쪽 국경에 동맹·우방이 있다고 보여주면서 경제제재 완화를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곧바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 포럼에 참석하고 오는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26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며 주변 시설 등을 방문하고 특별열차로 귀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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