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및 당진다문화가족지원센터 물심양면 지원···법적·행정적 지원 바탕으로 이달 1일 고국에 무사히 귀국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지난 2월 20일 충청남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해 철광석을 이송하는 컨베이어벨트 부품을 교체하던 외주업체 소속 이아무개씨(50)가 숨을 거두게 된다. 이씨의 빈소 한 켠에는 허망한 표정을 한 아내 A(38)씨가 있었다.

이 사고로 A씨는 일순간 미망인이 됐다. 불과 결혼 7개월만의 일이었다. 신혼의 단꿈에 젖었던 그들 앞에 너무도 큰 불행이 갑자기 드리웠다. 세상이 이씨의 죽음을 떠들썩하게 알린 사실조차 A씨는 몰랐다. 지레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결혼과 함께 한국에 온 베트남 이주여성이었던 탓이다.

7개월 남짓한 한국 생활 중 대부분의 시간은 남편 이씨와 보냈다. 도시처럼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외진 동네에 신혼집을 차렸기에 A씨는 남편이 출근하면 집에 있었고, 쉬는 날이면 함께 장을 보고 외식도 다녔다. 행복한 나날이었지만 전적으로 남편에 의존한 삶이었다.

그랬기에 A씨의 충격은 더 컸다. 반려자를 잃은 슬픔과 더불어 낯선 땅에서 유일한 버팀목이던 존재가 사라진 셈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당진다문화가족지원센터(이하 당진다문화센터) 관계자는 “사고 이틀 후 A씨와 처음 마주하게 됐는데, 남편과의 부부관계가 유독 좋았기에 상실감에서 오는 슬픔과 이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이 매우 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관계자가 A씨를 찾게 된 것은 현대제철의 요청 때문이었다. 현대제철은 자사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유가족에 도움이 될 것을 찾아보던 중 A씨의 사연을 접하게 됐고, 2012년 건물을 기부채납하면서 꾸준히 우호관계를 맺어 온 당진다문화센터에 통역 등 A씨를 위한 지원을 의뢰하게 된 것이다. 당진다문화센터도 안타까운 처지에 공감해 A씨를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됐다.

A씨는 실의에 빠져있었지만 장례 등 많은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아야 했기에 이 같은 지원이 절실했다. 타지에 떨어져 살아 데면데면한 관계였던 시댁식구들과의 의사소통에도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시댁식구들 역시 급작스러운 슬픔을 마주했기에 혼란스러워 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래서였을까 주변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새나왔다.

박선영 당진다문화센터장은 “고인이 돌아가신 뒤 유가족들은 장례절차를 밟아야 했으며, 사망신고와 더불어 위로보상금과 산재보험금 등의 수령도 해결해야 했다”면서 “정작 유가족들은 고인을 잃은 슬픔으로 정신이 없는데, 주변에서 불미스러운 이야기들도 많이 새나왔고 A씨와 시댁식구들 간 관계가 다소 어색해졌던 단초가 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비슷한 시기 장례지원을 마친 현대제철 관계자들은 A씨를 위한 또 다른 지원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당진다문화센터 측으로부터 A씨가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해한다는 점에 착안, 베트남에 있는 그녀의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시는 방안이 추진됐다. 이번엔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이 나섰다. 베트남 대사관에 서신을 보낸 것이다.

서신에는 미망인 A씨의 모친이 한국에 입국한 필요한 비용을 현대제철이 부담할 의사가 있음이 담겼다. 아울러 A씨가 향후 한국에 정착하게 될 경우 취업 및 정착지원에도 적극 나설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이를 두고 박 센터장은 “사고와 별개로 유가족을 대하는 현대제철의 후속조치에 있어선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언급했다.

박선영 당진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센터장 / 사진=김도현 기자
박선영 당진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센터장. / 사진=김도현 기자

베트남 현지에 있던 A씨 모친도 연락을 받고 한국행을 서둘렀다. 하지만 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현지 서류절차가 복잡해 진행이 더디기만 했다. 현대제철이 대사관은 물론이고 백방에 문의하며 모친의 한국행을 서두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모친이 출국 문턱을 넘는데 애를 먹고 있을 때쯤 A씨도 당진다문화센터 등과 손을 잡고 사망신고 등 행정절차를 속속 밟아가기 시작했다.

박선영 당진다문화센터장은 “아무래도 부군을 잃은 상황에서 시댁식구들과 같이 지내기엔 의사소통 등 문제가 있을 것 같아 따로 숙소를 마련했다”며 “홀로 쉬면서 시댁식구들을 만나거나 사망신고 등 행정처리 등을 위한 이동 때마다 센터와 함께 움직이며 점차 A씨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A씨의 경우 베트남에서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었을 정도로 고학력자”라면서 “그래서인지 본인이 서류를 독해할 순 없었지만 각각의 항목별 내용을 통역사에 묻고 이해하며, 진행과정 전체를 꼼꼼히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 “현대제철 측이 관련 전문변호사 등을 선임하는 등 법률지원을 아끼지 않아 보상금·산재보험금 등을 수령하고 A씨를 포함한 유족 간 원만한 배분문제 등에도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면서 “이 같은 지원을 바탕으로 센터장 이하 당진다문화가족지원센터 스태프 들의 헌신이 더해져 근로자들의 외국인 배우자들이 혹시라도 닥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A씨는 지난 1일 고국으로 출국했다. 그녀의 모친은 결국 비자발급이 늦어져 자택에서 딸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고인과 A씨가 살던 방의 보증금문제 등도 센터의 노력과 집주인 등의 양해에 힘입어 손쉽게 해결됐다. 떠나는 출국장까지 박 센터장과 직원들이 배웅했고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센터에 A씨가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베트남어로 쓰인 편지의 수신인은 시어머니였다. A씨는 한국어로 번역해 편지를 전해줄 것을 센터에 요청했다. 편지에는 “경황이 없어 어머니를 잘 보살피지 못했다. 그이가 떠나게 돼,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지만 당신은 나의 영원한 시어머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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