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 상징성 갖는 건물들 매물로 등장하지만 거래 안 돼 가격조정 거치기도
전문가 “평가금액 기초되는 공시지가 오르면서 세금부담 커져”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국내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 강남역 인근 빌딩시장이 심상치 않다. 약속장소로 꼽히는 등 상징성을 갖는 빌딩이 거래매물로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그간 강남역 일대 이면도로 빌딩은 종종 거래됐어도 10차선 대로변은 매물이 없어 손바뀜이 쉽지 않았던 것에 견주어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일각에서는 증세와 자영업자 폐업 증가에 따른 불투명한 수익성을 원인으로 꼽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50대 자산가 L씨는 최근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본인 소유 강남대로변 빌딩 가격을 1450억 원에서 1200억 원으로 낮췄다. 빌딩을 팔기 위해 지난해 매물로 내놓았지만 입질이 없어서다. L씨는 해당 빌딩을 매수한 지 약 5년 만에 적극적인 매도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이 빌딩은 현재 보증금만 50억 원에 달하고 다달이 나오는 월세만도 4억 원이 훌쩍 넘는다. 리모델링을 거쳐 대기업 패션의류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데 과거에는 이름난 제과점이 임차해 있었고 지하철 출구 접근성이 우수해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유명세를 탔다.

강남역에서 양재역 방향으로 가는 강남대로변에 위치한 지하4층 지상 17층 높이의 F타워도 1700억 원에 시장에 나왔다. 보증금만 130억 원, 월세 수익만 3억6000만 원에 달한다. 수익성률 2%대 안팎의 강남권에서는 3.3%에 달하는 해당 매물의 수익성이 매우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1층에는 이름난 프랜차이즈가 건물의 간판이 될 만한 앵커테넌트로 자리 잡고 있고 상층부 역시 증권사 등이 자리한다.

부동산과 선물 투자의 귀재로 이름난 S씨는 최근 강남대로변에 위치한 자신의 빌딩을 980억 원에 판 것으로 알려졌다. S씨가 매도한 빌딩은 유명어학원, 유학원 등이 임차해있다. 해당 빌딩 역시 토익, 토플이 취업을 위한 대표적인 스펙으로 인식되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20대 젊은이들의 약속 집결장소였다. 임차인은 여전히 빌딩 내에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름난 빌딩이 매물로 등장하는 현상은 강남대로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벤처의 요람으로 불리는 인근 테헤란로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12번 출구에서 도보 1분 이내 거리에 위치한 지하4층 지상 15층 높이의 한 메디컬 타워도 70대 소유주 P씨가 최근 1450억 원에 내놓았다. 인근에는 삼성타운, 메리츠타워 등 1군 기업의 본사 소재가 위치해있을 정도로 입지가 우수한데다, 보증금 85억 원에 임대수익만 월 2억3500만 원을 벌 수 있는 매물이다. 게다가 임차인으로 가장 선호되는 금융권과 병‧의원 다수가 들어와 있어 업계에서는 알짜 매물로 평가된다.

이처럼 이름이 나있거나 수익성면에서 뛰어난 빌딩이 시장에 비슷한 시기에 매물로 나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부동산 옥죄기 정책이 빌딩 시장에까지 심리적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시장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확대 해석이라며 선을 긋는 모습이다. 송파구의 한 빌딩중개법인 관계자는 “1000억 대 자산가들은 부동산 정책에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라며 “우연히 시기적으로 우수 매물이 나온 게 겹쳤을 뿐”이라고 말했다.

세율상의 변화는 없어 직접적 타격은 없어보여도 간접적 규제로 작용했을 수는 있다. 오승환 세무생각 소속 세무사는 “최근 들어 강화된 부동산 규제는 다주택자와 관련한 내용일 뿐 빌딩이나 상가 등은 직접적으로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세금을 위한 평가금액 기초자료가 되는 공시지가가 20% 안팎으로 오르면서 보유세가 증가해 이에 대한 부담이 커졌을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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