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위 구제절차 미포함 근기법 시행령, 평등권 침해 안해” 결정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 증가 추세···노동계 “해당 358만명 노동자 법 사각지대 방치” 지적

사진은 2003년 창원의 한 소기업 모습. / 사진=연합뉴스
사진은 2003년 창원의 한 소기업 모습. / 사진=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4인 이하 사업장에 부당해고 제한과 노동위원회 구제절차를 포함하지 않은 근로기준법이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에 4인 이하 사업장 소속 358만명의 노동자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게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건의 전말을 이렇다. 김아무개씨(가명)는 2016년 11월 17일 4인 이하 사업장인 숙박업소 카운터 관리업무를 하다가 그 해 11월 22일 해고당했다. 이에 김씨는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서 제한하는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으나 각하 판정을 받았다.

이에 김씨는 다음과 같은 근로기준법과 시행령 3개가 청구인의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2017년 7월 24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5인 이상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 4인 이하 사업장에 적용될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11조 제2항,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7조 ‘별표 1’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가운데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7조 ‘별표 1’만 심판대상으로 삼았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일 “4명 이하 사업장에 적용될 근로기준법 조항 중 부당해고를 제한하는 제23조 제1항, 노동위원회 구제절차에 관한 제28조 제1항을 포함하지 않은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7조가 평등권, 근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재판관 7대 2의 의견이었다.

헌재는 이러한 결정의 이유에 대해 “일반적으로 4인 이하 사업장은 5명 이상 사업장에 비해 매출규모나 영업이익 면에서 영세해 재정능력과 관리능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며 “해고 사유와 절차를 엄격하게 할 경우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다수 포함된 4인 이하 사업장은 인력을 자유롭게 조절하기 어려워 경기침체 등 기업여건 악화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헌재의 결정이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상 권리를 제약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당해고를 당하지 않고, 또 부당해고 등을 당하더라도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 상 권리를 말한다.

특히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들이 다른 사업장보다 임금과 사회보험 보장률이 낮은 상황에서 헌재의 결정은 이들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노동조건이 열악한 노동자들일수록 정부가 더 많이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이 노동자들의 보호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노동조건의 최소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에서도 이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며 “최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영세사업주 보호 명목으로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의 무책임을 정당화해준다. 이에 약자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일수록 권리에서 배제되는 현실을 고착시킨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이에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노동자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4인이하 사업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수는 2004년 290만6000명에서 2015년 358만7000명으로 늘었다. 이는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18.7%에 달한다. 4인 이하 사업장은 여전히 임시직이 2015년 51.1%, 일용직 21.2% 등 다른 사업체 규모에 비해 열악한 종사상 지위도 많다. 5~9인 사업장은 임시직 34.2%, 13.6%였다. 10인 이상 사업장은 각각 17.1%, 2.7%였다.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0인 이상 사업장 임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2004년 94만 원에서 2016년 138만 원으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10인 이상 사업장은 181만 원에서 279만 원으로 증가했다. 4인 이하 사업장의 사회보험 가입률도 30%로 낮은 수준이다.

김 활동가는 “영세사업주들이 높은 임대료, 원청의 수탈, 해직과 소상공인 증가에 따른 경쟁 심화 등으로 근로기준법조차 적용할 수 없을 정도로 한계상황이 됐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 영세사업주를 지원해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그 피해를 더 어려운 처지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 최근 헌법재판소 판결은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정부가 임의로 제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4인 이하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조항을 확대해야 한다"며 "특히 연장근로수당과 노동시간에 대한 조항, 부당해고 조항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삶이 불안정해지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이 조항들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도록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8년 5인 미만 사업장에만 근로기준법 주요 규정을 배제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없다며 모든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목표로 해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사업체 규모별 임금근로자 수 추이 / 자료 = 한국노동연구원 '4인이하 사업장 실태조사'
사업체 규모별 임금근로자 수 추이 / 자료 = 한국노동연구원 '4인이하 사업장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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