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PA-K “승객 안전을 위한 일” vs 국토부 “항공사-기장 간 절충안 내놓기 힘들어”···7년 째 해법 도출 못해
2011년 ICAO 발표 이후 미국, 유럽, 호주, 일본, 중국 등 해당 내용 개정···전문가 “항공사들은 비행근무시간 개정으로 추가 인력 고용해야 해 원치 않아”
국토부도 2012년 3억원 투자해 연구용역 맡겼지만 제도에 반영 안돼···현재 2차 연구 용역 진행 중

최대 비행시간을 둔 항공 기장과 국토교통부 사이의 갈등이 7년 째 계속되고 있다.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최대 비행시간을 둔 항공 기장과 국토교통부 사이의 갈등이 7년 째 계속되고 있다.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최대 비행시간에 대한 논란이 7년 째 해법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기장들은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 다양한 피로 상황 조건에 맞춰 최대 비행시간이 차등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기장과 항공사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어 마땅한 절충안을 내놓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19일 현재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별표 18에 따르면, 운항승무원의 최대 승무시간·비행근무시간은 아래 도표와 같다. 승무시간은 비행기가 최초로 움직이기 시작한 때부터 비행기가 최종 정지하고 엔진이 꺼질 때 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비행근무시간은 승무시간 전후로 진행되는 각종 항공 보고·기상 확인·항공기 내 정리 등을 포함한 시간이다.

현재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별표 18. /사진=항공안전법 갈무리
현재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별표 18. / 자료=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이를 두고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사 기장들로 구성된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는 국토부가 ‘비행근무시간의 시작 시간대·승무 횟수·휴식시설 등급·시차 적응 여부’ 등 다양한 조건에 따른 차등적 비행근무시간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2009년 콜건항공 사고 등 조종사의 피로로 인한 항공 사고가 이어지자 2011년 유엔 전문기구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발표한 내용을 근거로 한다. 비행근무시작 시간이 야간일 경우 최대 비행시간을 줄인다거나, 휴게 시설 등급이 낮을 경우 최대 비행시간을 줄이는 등의 방침이다.

이후 미국 연방항공청(FAA)을 시작으로 유럽 항공안전기구(EASA), 호주 민간항공안전청(CASA), 일본 국토교통성 등이 다양한 조건에 따른 차등적 비행근무시간을 개정·도입했다.

국토부도 2012년 3억원의 비용을 투자해 ‘한국형 피로관리시스템 구축방안 연구’를 교통안전공단, 한국항공정책연구소 등에 연구 용역을 맡겼다. 연구진 역시 다양한 조건을 고려한 차등적 비행근무시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연구 결과를 2017년 발표했다. 하지만 해당 내용은 제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이를 두고 국토부 개정 논의에 참여했던 한 기장은 “국토부가 항공사의 눈치를 봤다”며 “기장과 항공사 간 합의가 되지 않으면 ‘현행 유지’라는 결론을 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업계 전문가들은 항공사들이 비행근무시간 개정을 원하지 않는 이유를 “비행근무시간이 다양한 조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면, 항공사는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기장 1명, 부기장 1명 총 운항승무원 2명이 조작할 경우 최대 비행근무시간은 13시간이다. 만일 제도 개정으로 다양한 조건에 따라 최대 비행근무시간이 차등 적용될 경우, 최대 비행근무시간은 확연히 줄어들 수 있다.

이 경우 야간에 출발하는 휴게 시설 3등급의 비행기를 기장 1명, 부기장 1명이 조작하면 최대 비행근무시간은 10시간 안팎이 된다. 보통 11시간~1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유럽을 기존 제도에선 2명의 운항승무원이 합법적으로 운항할 수 있지만, 개정 시엔 기장 혹은 부기장 1명을 더 투입하지 않으면 비행근무시간이 초과 돼 법적 문제의 소지가 생긴다.

한편, 국토부는 최근 일부 내용을 반영해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발표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의 ‘2019-116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을 보면 “항공기내 휴식시설을 등급화 (1, 2, 3)하고 1등급 미 충족시 비행근무시간을 각 1시간씩 차감”이라고 적시돼 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의 바로 윗 문장을 보면 “연속되는 24시간 동안 12시간을 초과하여 승무할 경우 항공기에는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휴식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명기됐다. 이에 ALPA-K는 “반대로 12시간 초과 승무가 아닐 경우엔 휴식시설이 없어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 /자료=국토교통부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 / 자료=국토교통부

ALPA-K에 소속된 한 기장은 “12시간을 초과 승무하는 것은 장거리 노선이 있는 대형항공사에나 적용되는 내용”이라며 “중·단거리를 야간 퀵턴으로 운항하는 저비용항공사(LCC)의 경우 이코노미좌석에 앉아있던 기장과 부기장이 돌아오는 항공기를 운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퀵턴은 목적지 도착 후 체류 없이 바로 돌아오는 항공편을 말한다.

실제 한 LCC의 운항 상황을 보면, 밤 9시 45분에 출발해 목적지에 새벽 1시 25분에 도착하는 비행기에 기장과 부기장을 각각 2명씩 태워 보낸다. 기장 1명, 부기장 1명이 출발 시 조작하고 나머지 기장 1명과 부기장 1명은 이코노미 좌석에 탑승한다. 휴게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목적지 도착 1시간 뒤인 새벽 2시 25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임무가 교대된다. 현행 제도에선 문제가 없다.

LCC에서 근무하는 한 기장은 “항공은 자동차와 피로감이 다르다. 항공기엔 탑승하고 있는 승객들이 적어도 100명 이상”이라며 “과연 일반 좌석에서 목적지까지 간 기장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승객들을 태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국토부는 이런 기장들의 불만에 대해 갈등을 조정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국토부 항공운항과 관계자는 “항공사와 기장 간 최대 비행시간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어찌됐건 최대 비행시간이 변경되면 항공사들도 추가로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절충안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라며 “더 진전된 결과를 내기 위해 2차 연구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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