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군 전직 회장·측근, 3자 통해 건설사에 돈 요구해 받아낸 정황 담겨
“최하 30억 정도 설계변경 들어올 듯”···배임에 공사비 증액 특혜 의혹
심부름한 당사자가 고발해도 檢 “추측성 주장에 불과” 불기소 처분

/ 이미지=김태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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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이 확산되면서 검찰의 기소독점권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범죄를 공모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하고도 관련 고발사건을 석연치 않게 불기소 처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발인은 부당한 지시를 받고 심부름을 한 당사자가 녹취록까지 제출했는데도 검찰이 적극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며 미온적인 수사 태도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관련기사: 본보 4월16일자 <[단독] “기초사실 잘못된 불기소처분”···檢, ‘향군 배임 혐의 고발 사건’ 부실 수사 의혹> 보도 참조

시사저널e는 전역 군인 단체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향군) 전임 회장 박세환 전 회장(재임 2009년~2015년)과 오랜 기간 교류해온 사업가 정아무개씨를 통해 A4용지 한 박스 분량의 녹취록을 확보했다. 이 녹취록에는 정씨가 지난 2011년부터 2014년 말까지 당시 향군회장이었던 박 전 회장, 박 전 회장의 측근이자 향군 사업개발본부장을 지낸 A 전 본부장, 중견건설회사 서희건설 임직원 등과 나눈 대화가 담겨있다.

녹취록에 따르면 박 전 회장과 A 전 본부장이 정씨에게 박 전 회장의 금전 문제 해결을 부탁했고, 정씨는 이들의 지시에 따라 서희건설을 찾아가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으로 돈을 받아냈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잠실 향군 회관의 ‘건물일체형 태양광 발전 시스템(BIPV) 설치 공사’ 수주 등에 투자한 최아무개씨 등 3명에게 3억7000여만원을 돌려줘야 할 상황이었다. 정씨와 만난 서희건설 회장은 ‘(A 전 본부장으로부터) 손해를 안 끼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흔쾌히 정씨에게 용역비를 지급한다.

녹취록에는 또 첫 ‘돈 거래’가 있은 지 2년 뒤 박 전 회장과 A 전 본부장이 공모해서 향군이 발주하고 서희건설이 시공한 오피스텔 건축과정에 공사비를 부풀리자고 공모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도 담겨있다.

◇ 고발인 정씨 “향군 전임 회장 위해 허위 용역계약 했다”

정씨의 증언과 시사저널e 취재를 종합하면, 잠실 향군 회관의 BIPV 설치 공사 수주에 투자한 최씨 등 3명은 2011년 8~9월경 박 전 회장에게 두 차례에 걸쳐 내용증명을 보냈다.

내용증명에서 최씨 등은 ‘향군 녹색사업단장인 오아무개씨가 향군 녹색사업단 설립 자금으로 2009년 1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총 3억7000만원을 받아갔다’ ‘2011년 10월 4일까지 지급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향군 회장(박 전 회장)을 상대로 민·형사상 법적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자 법적 다툼을 진행하기 전 ‘최후통첩’을 한 셈이다.

이에 박 전 회장은 최씨 등에게 거액을 변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향군과 거래관계에 있던 서희건설을 통해 이 채무를 갚고자 했다고 정씨는 설명했다.

다음은 정씨가 서희건설과 용역계약을 체결하기 앞서 박 전 회장과 측근인 A 전 본부장과 나눈 대화 일부다.

☞2011년 9월 2일 (서울 성수동 향군본회 박세환 전 회장 집무실)

박세환(이하 박): 정 회장(정씨를 지칭)은 여기서 나를 도와주는 은혜는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2011년 10월 10일 (서울 성수동 향군 건물 내 A 전 본부장 집무실)

A 전 본부장(이하 A) : 서희를 내가 이제. 이번에 부산 민락동, 거기는 다 해놨어. 그래서 이제 서희가 하기로 하고, 해놨으니 그거는 내가 안 빠트리고 줄게. ···(중략)··· 지금 뭐 이제 이달 중으로 아마 서희하고 계약해야 될 거야. 그때 내가 단단히 해서. 

☞2011년 10월 13일 (서울 성수동 향군본회 박 전 회장 집무실)

박: 지금도 내가 결재한 게 있는 게 부산에다가 오피스텔을, 오피스텔 건물을, 그 오피스텔이라고 그러나? 오피스텔 건물, 그거 지금 짓겠다고 내가 승인받은 거란 말이야. ···(중략)··· 정 회장 위해서 나도 뭔가 갚아야 되겠다 이거야. 그동안 나한테 지금 많이 정성을 보여, 보여 왔잖아? 내가 그거는 언제든지 내가 갚는다고. 

☞ 2011년 11월 4일 (서울 성수동 향군본회 앞 2층 커피숍)

A: 그러니깐 알짜배기 3억7000을 주겠대. 오늘. 오늘 주면은 우리가 마련한 각서에다 다 서명을 받고 그럼 그냥 내주면 돼. ···(중략)··· 서희건설 회장하고 내가 약속을 했어. 오늘 4시에 만나기로 했어. 그러니까 비서실로 오면 돼.  

정씨는 2011년 11월 4일 A 전 본부장과 만난 후 서희건설을 찾아가 용역계약을 체결한다. 정씨가 설립한 컨설팅업체 V사가 서희건설에 토목 및 건물, 각종 플랜트 등 공사정보수집과 수주전략 수립에 대한 내용을 자문해 주고 총 4억3200만원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정씨는 이 금액이 박 전 회장을 위한 변제금 3억7000만원에 세금(제세공과금)을 합해 산정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 2011년 11월 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서희건설 회장 비서실 및 접견실)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하 이) : 어쨌든 용역비 좀 주면은 자기(A 전 본부장을 지칭)가 힘써서 같이 해가지고, 저희한테 손해 안 끼치겠다고. 

정 : 예 그렇습니다.

이: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자고, 서로 더 좋지 뭐. ···(중략)··· (서희건설 박아무개 재무담당 사장을 향해) 친분이 깊고 그래서, 같이 우리가 힘을 합쳐가지고 이걸 해보면 좀 앞으로 영업이 좀 될거야. 

박아무개 재무담당 사장(이하 박) : 예

정씨는 서희건설로부터 받은 용역비를 박 전 회장의 채무를 갚는 데 사용한다. 정씨는 “계좌이체로 받은 용역비를 1000만원권 수표로 인출한 뒤 박 전 회장에게 채권이 있는 최씨 등 3명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당시 최씨 등에게 ‘사후 법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각서 및 영수증도 받았다.

정씨는 이러한 내용을 A 전 본부장에게 보고했고, 최씨 등으로부터 받은 각서 및 영수증 또한 전달했다고 한다. 기자가 확인한 변제 각서 및 영수증 하단에는 정씨의 이름과 함께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귀하’라고 적혀 있다.

◇ 오피스텔 발주한 향군 회장 측이 왜 “30억 설계변경” 언급했나

녹취록에는 또 2013년 무렵 박 전 회장 측이 서희건설 측에 추가로 돈을 요구하려한 정황도 담겨있다. 향군이 발주하고 서희건설이 시공한 부산 수영구 민락동 한 오피스텔(공사규모 3만8998㎡, 지하 5층~지상 20층) 공사비를 설계변경을 통해 증액시켜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내보자는 내용이다.

정씨는 2007년 무렵부터 박 전 회장과 사업적인 관계를 맺었고, 이후 11억원(피해배상액 포함 14억원 주장)을 투자 또는 지원했는데, 수년간 사업 성과가 없자 투자금 반환을 박 전 회장 측에 요청해둔 상태였다.

다음은 정씨가 A 전 본부장과 나눈 대화 일부다. 박 전 회장이 돈을 요구하고 있는 정씨를 달래는 내용도 있다.

☞2013년 5월 8일 (서울시 성수동 향군 건물 내 A 전 본부장 집무실)

A: 전에 이야기 한 거. 그거 참모들 준비 있으니. 그거 한번 시작해보고.

정: 서희에 가 가지고 무슨 그 계약서를 새로 쓰든지, 안 그러면 옛날 계약을 하든지. 서희에 가서 또 받아야 되는데

A: 그럼 어떻게 방법을 좀 할까?

정: 향군에서 서희가 공사하는데 공사비를 더 주든지 ···(중략)··· 서희에서 받아가지고 그냥 나한테 줘야지

A: 그렇게 하면은 일단은 정 회장이 좀 마음을 잡겠어

☞2013년 5월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호텔 3층 일식당)

박: A 전 본부장 얘기 듣고 내가 이 일을 했던 건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중략)··· 오늘은 그런 방법은 아니고 내가 연출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연출해서 가져온 거니까.

다음은 A 전 본부장과 정씨가 서희건설에 요구할 금액과 이에 따른 공사비 증액 금액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화 내용 일부다. 여기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설계변경도 언급된다.

☞2013년 6월 14일 (서울시 잠실 광고문화회관 1층 커피숍)

A: 7억5000 해주는 걸로 일단하고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게. ···(중략)··· 이제 잘 알듯이 설계변경을 해야 된다고. ···(중략)··· 그 돈도 공짜가 아니란 말이야.

정 : 그렇죠. 맞아요. 그건 공짜가 아닙니다.

A : 그런데 7억5000을 얻어 쓰면 저번 것도 좀 있고. 이러면 최하 30억 정도 설계변경이 들어올 것 같애. 응?

정 : 30억 정도. 20억 정도 들어오겠지. ···(중략)··· 만약에 30억 정도를 설계변경 해준다 하면은 내 손에 쥐는 걸 15억을 해주고. ···(중략)··· 그래도 걔들은 10억 이상 남는 거라고.

A : ···(중략)··· 저쪽 사정이 얼마나 빨리 되는지는 모르겠어. 내가 얘기해 가지고 그거는 될 수 있도록 할 거고. 그리고 (서희 쪽에서) 해주려고 마음먹고 있고.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실제 설계변경을 통한 공사비 증액은 있었을까. 시사저널e 취재결과, 이 오피스텔 시행사인 코바플랜(향군이 100% 출자한 특수목적법인 SPC)과 서희건설은 두 차례에 걸쳐 공사대금 변경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두번째 계약변경 시점은 이들의 공사비 증액 관련 대화가 있은 뒤인 2013년 12월 이뤄졌다.

이후 정씨는 2013년 10월부터 2014년 1월까치 총 세 차례에 걸쳐 박 전 회장 측으로부터 현금 7억원을 지급받았다. 모두 똑같은 형태의 고무밴드로 묶여진 현금 5만원권이었다. 하지만 피해배상액을 포함해 총 14억원을 지급받아야 한다고 본 정씨는 7억원 이외에도 추가 변제를 요구했다.

이에 박 전 회장 측은 정씨를 공갈 및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정씨 역시 박 전 회장을 위증, 무고, 사기 혐의 고소하고 배임수재 및 업무상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양측이 고소고발한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향군 회장 등이 시공사에 설계변경을 대가로 공사대금을 부풀려 이득을 줬다면 향군이 그만큼 재산상 손해를 보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오피스텔 공사 당시 설계변경으로 증액된 공사비는 40억여원(368억여원→408억여원)이다.

그러나 검찰은 업무상배임 고발을 지난 1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결정했다. 향군이 이 오피스텔 공사에서 투자자로 참여했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과 그에 따른 금품수수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는 점, 박 전 회장이 정씨에게 지금한 7억원의 출처가 상당부분 해명됐다는 점, 정씨의 주장이 추측에 가까운 점 등이 이유다. 검찰은 정씨가 제출한 녹취록을 보고도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수수가 없었고, 정씨가 추측성 주장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 정씨 “범행 관련됐다 자백해도 불기소”···A 전 본부장 측 “법적으로 모두 끝나”

이에 반해 정씨는 박 전 회장이 자신에게 갚은 7억원의 출처와 관련해 금융자료 상당부분이 미제출됐거나 돈을 빌린 사람의 이름조차 소명되지 않았다며 검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당시 거래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녹취록을 제출했는데도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씨는 “박 전 회장과 A 전 본부장이 공모한 범죄를 수행한 당사자가 녹취록까지 제시하며 스스로 범행에 개입했다고 밝히고 있데도 검찰은 불기소처분을 내렸다”면서 “검찰은 사건 당사자인 박 전 회장을 단 한차례도 불러 조사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또 “박 전 회장과 저는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고소고발을 주고받았는데 검찰은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않은채 사건을 묻으려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씨는 검찰의 처분 결과에 불복해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정씨는 항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진실을 밝힐 기회조차 갖지 못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설계변경을 통한 공사비 증액 주장에 대해 향군과 서희건설 측은 결코 허위계약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향군 측 관계자는 “지하에서 바위(암)가 많이 나와서 공사비 증액이 있었던 사실은 기억한다”면서도 “없는 일로 돈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서희건설 관계자도 “당시 현장 소장 등은 바위 발생에 따른 공사비 증액이 있었다고 기억한다”면서도 “기초공사가 아닌 건물 주변부 땅을 정리하다가 바위가 나올 경우 착공이 한참 지난 뒤에도 공사비 증액이 있을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시행사와 시공사가 합의를 통해 공사를 미리 진행한 뒤 뒤늦게 변경계약을 체결했을 여지도 남아있다.

시사저널e는 사건의 당사자인 박 전 회장과 A 전 본부장에게도 구체적입 입장을 듣고자 노력했으나 들을 수 없었고 다만 A 전 본부장 측은 “이미 (법적으로) 모두 끝난 사안”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또 박 전 회장에게는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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