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먹보가 되기 위하여.

사진=최승혁
사진=최승혁

 

1 <탐식생활> 이해림

미식가가 특별한 기호에 따라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다면, 탐식가는 맛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며 탐색하는 사람이다. 저자 이해림은 책에서 자신을 미식가도 대식가도 아닌 ‘탐식가’라 정의한다. 그는 매거진 기자로, 또 푸드라이터로 일하는 동안 “왜 맛있을까?”라는 질문을 일관되게 던져왔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을 취재에 골몰하며 구한다. 맛의 ‘팩트’를 끈질기게 찾는 것이다. <탐식생활>에는 그렇게 얻은 답이 담겼다. 출하 시기와 특징이 다른 식재료를 구별해 종류에 따른 맛을 눈앞에 차린 듯 펼쳐내고, 각 품종에 적합한 요리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장을 볼 때 ‘이 감자는 무슨 감자예요?’라고 물어야 오늘 저녁 닭볶음탕 속 감자의 운명을 정할 수 있다”라든지, “맛있는 복숭아를 먹었다면 이름을 적어두자. 복숭아는 품종을 기억해가며 먹어야 하는 과일이다”라는 식이다. <탐식생활>은 결코 맛을 평가하거나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먹었던 음식들을, 다시금 넓고 깊게 파고들며 즐기는 법을 알리며 먹보들의 간지럽던 속을 시원히 긁어준다. 알수록 맛있는, 쓸모 있는 맛의 지식이 넘쳐흐른다.

2 <재료의 산책> 요나

<재료의 산책>은 채소 요리책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묶은 작은 책 4권으로 이루어진다. 봄의 책은 버섯, 셀러리, 아스파라거스, 냉이, 쑥, 딸기. 여름의 책은 가지, 피망, 토마토, 오이 등의 챕터로 구성된다. 각각의 채소 이야기에는 몇 가지 요리법을 곁들였다. 연근을 구워 버섯과 함께 지은 밥, 아삭한 당근에 향긋한 고수와 요구르트를 발라 만든 토르티야, 두부와 검은깨를 버무린 아스파라거스… 찬찬히 읽다 보면 손끝으로 채소의 시간을, 변해가는 계절의 결을 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재료의 산책>은 실제로 긴 시간이 깃든 책이다. 매거진 <어라운드>에 연재한 동명의 칼럼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3년 4개월간, 서른네 번의 연재를 거쳤다. 채소가 제철을 맞아 생명력을 얻는 시기를 기다리고, 그 채소의 성질을 곧이 알고 조리하는 방법을 두어 가지만 선택해 소개했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먹고 싶은 요리를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부터가 식사의 시작이다.” <재료의 산책>은 탐식의 여정을, 먹고 싶은 요리를 천천히 고민하는 일로 시작하도록 만든다.

3 <입말한식> 하미현

하미현은 요리할 때 할머니가 주신 오렌지색 저고리와 이브 생 로랑의 분홍 니트를 같이 입길 좋아한다. 술을 마실 땐 올리브와 동치미를 즐기며, 커피엔 크루아상과 백설기를 함께 먹는 사람이다. 20대를 통째로 타국에서 공부하며 보냈고, 다민족 문화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 그가 엮은 <입말한식>의 이야기를 따르다 보면 평생 먹은 한식이 낯설다. 올챙이국수나 칡잎옥수수떡, 옥수수묵이 다 무엇이며, 향과 단맛이 강하다는 수비초, 식감이 아삭하다는 칠성초라는 고추는 또 무엇인가. <입말한식>은 오랜 세월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온 9가지 식재료와 농부, 토박이의 입으로 전해지는 71가지 한식들을 푼다. 제주도 김을숙의 마농지, 충북 옥천 최옥자의 고추국수, 울릉도 한귀숙의 감자팥죽처럼 ‘누군가의 오래된’ 맛들이다. 한국의 고추 품종은 사실 1천5백 가지쯤 되고, 팥 종류는 50가지가 넘는다. 오십일팥으로는 팥죽을, 가래팥으로는 팥전을, 되호박으로는 호박국수를 만들어 먹고, 떡호박으로 호박떡을 찐다. 책에는 이토록 다양한 식재료에서 시작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한식이 빼곡하다. 그렇게 맛의 돌기를 살살 훑는다.

4 <오예! 스페셜티 커피!> 김현섭 & 김기훈

김현섭은 로스터, 김기훈은 바리스타다. ‘세상에 커피 책이 얼마나 많은데 또 쓸게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시작된 책은 작은 핸드북을 만들려던 처음의 계획에서 벗어나, 장편 소설 한 권의 두께로 완성됐다. 김현섭과 김기훈은 ‘아티스틱 커피 듀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도쿄 커피 페스티벌’과 ‘도쿄 커피 컬렉션’에 참가했고, 각종 커피대회의 심사를 맡기도 했다. 또한 성수동에서 커피 가게 ‘메쉬 커피’를 운영 중이다. 동시대 커피신 안팎에서 다양한 커피 경험을 쌓고 있는 이들이 들려주는 스페셜티 커피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분명하며 신선하다. 두 남자는 커피 신에서 활동하며 습득한, 스페셜티 커피에 관한 모든 비법과 철학, 레시피와 노하우를 책에 숨김없이 밝힌다. 커피에 최적의 온도가 없는 이유, 유행하는 ‘아이스’ 플랫 화이트라는 메뉴의 정체성, 어쩌다 라이트 로스팅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는지 등 커피를 마시며 무심히 지나친 맛의 지점들을 시원하게 짚는다. 레시피와 노하우는 더없이 사실적이다. 레시피는 추출수의 온도, 분쇄 원두의 그램 수까지 밝히며 적고, 메쉬 커피에서 선보인 시그너처 커피 메뉴 27가지의 레시피를 탈탈 턴다.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 정체를 궁금해하던 사람들을 스페셜티 커피 신안으로 ‘쓱’ 끌어당기는 책이다.

 

아레나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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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최승혁 Editor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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