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QR코드 등 모바일 중심 서비스 확대 추세
금융소외계층 “혁신금융, 다른 세상 얘기”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혁신금융서비스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혁신금융서비스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평소 현금만 가지고 다니던 A씨(54세)는 동네 근처 카페를 방문했다가 예기치 못한 불편을 겪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현금으로 값을 치르려다 결제를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해당 매장은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돼 현금 결제가 불가하다는 게 점원의 설명이었다. 카드가 없는 A씨에게 점원은 모바일 간편결제를 권했으나 A씨에게 간편결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결국 카드도 없고 간편결제도 사용할 수 없던 A씨는 주문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카페를 나와야 했다.

간편결제·QR코드·인터넷은행 등 모바일 중심의 금융서비스가 정부의 혁신금융서비스 추진에 힘입어 확산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고령층 및 저소득층 등 특정 계층은 이같은 혁신금융서비스의 편리함과 혜택을 접하기 어려워 금융소외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금융당국, 금융샌드박스 통한 혁신금융서비스 추진···간편결제·QR코드 등 포함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 17일 금융샌드박스를 통해 9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했다. 이번에 지정된 서비스에는 국민은행의 알뜰폰을 이용한 금융·통신 결합서비스, 디렉셔널의 블록체인 주식 대차거래 중개 플랫폼, 농협손해보험과 레이니스트의 해외여행자보험 간편 가입 서비스 등이 포함됐다.

9건의 혁신금융서비스 중 단연 돋보이는 건 간편결제 서비스다. QR코드를 이용해 푸드트럭·노점상 등에서도 결제가 가능한 BC카드의 ‘모바일 플랫폼 QR’과 SMS 인증방식을 통한 페이플의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 등이 이에 속한다.

간편결제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는 추세다. 1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간편결제 서비스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과 PC를 이용한 간편결제 결제금액이 80조원을 넘어섰다. 또한 모바일 간편결제 이용건수는 23억8000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16년 결제 건수인 8억5000만건에서 약 2.8배 성장한 규모다.

◇ 저소득층·고령층·신용불량자 등···금융소외계층에게 혁신금융은 ‘남일’

정부의 혁신금융 정책으로 간편결제 시장이 확대되면서 소비자들의 편의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저소득층·고령층·신용불량자 등 특정계층은 이런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상황이다.

간편결제 및 인터넷뱅킹은 스마트폰이 있어야 이용 가능하다. 애플리케이션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서비스라 A씨와 같이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에게는 QR코드 결제와 같은 혁신금융서비스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발표한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계층별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평균 68.9%인 반면 장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63.1%에 불과했다.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 등 여타 계층과 비교해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저소득층에게도 간편결제는 다른 세상 얘기다. 고가의 스마트폰이 부담스러워 2G폰을 이용하고 있는 B씨(43세)는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가격이나 유지비가 부담스러워 군 전역 때부터 계속 2G폰을 사용하고 있다”며 “애플리케이션이나 QR코드 같은 걸 들어는 봤지만 생소하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인 C씨(46세) 역시 이런 혁신금융 바람이 달갑지 않다. 신용불량자는 카드 사용 정지는 물론 모든 금융 거래가 제한된다. 사용자의 카드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간편결제 사용 역시 불가능하다.

C씨는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보니 현금으로 결제하는 일이 잦은데 간편결제나 카드 결제만 가능한 매장이 늘어나고 있어 이용에 불편을 겪을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혁신금융 추진에 따른 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가 특정 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저해해 금융 소외 현상을 심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혁신금융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운 금융소외계층의 상황을 감안해 보완책 마련 및 정책 속도를 조절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혁신금융은 당연히 추진해나가야 하지만 금융서비스의 혜택 및 편리성으로부터 소외되기 쉬운 금융소외계층을 고려한 대책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협업해 민간기업들이 금융소외계층을 챙길 수 있게끔 유인책을 마련하거나 고령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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