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에 뛰어든 이유도 가지각색. 젊은 술꾼들이 발 벗고 나서서 흥나게 빚는 우리 술 뉴 웨이브.

사진=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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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백주

이화백주는 인공 감미료와 인공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빚는 생막걸리다. 톡 쏘는 탄산 맛이 마치 샴페인 같다. ‘막페인’이라는 별명은 그래서 생겼다. 다소 밋밋해 강한 양념의 안주와 함께 마시면 맛이 묻혀버리는 탁주도 있지만, 이화백주는 그렇지 않다. 한 모금 머금고 삼키면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이 우루루 입안을 훑는다. 탁주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쿰쿰한 냄새와 텁텁한 맛, 심한 숙취. 탁주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의 불평이다. 심우진과 박종진이 만드는 이화백주는 여기에 정면으로 맞선다. “가족이 하는 대규모 쌀농사를 돕던 것이 이화백주의 시작입니다. 쌀은 많고 값어치는 폭락하던 시절이었죠. 부가가치 높은 제품을 고민하다 경북 안동의 외조모께서 막걸리를 옛 맛으로 잘 만드시는 것이 생각났어요. 곧장 달려가 주조법을 직접 배웠죠. 잘 만든 술로 탁주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좋은 쌀로 좋은 술을 빚어보겠다고 결심한 이후 전국의 유명하다는 양조장은 다 찾아다녔다. 이화백주는 경남 양산에서 생산되는 금개구리쌀, 삼양주쌀을 쓰고, 맑기로 유명한 양산 천성산의 물을 댄다. 인공 효모와 효소는 필요 없다. 누룩만을 사용해 발효시킨다. 샴페인처럼 톡 쏘는 맛은 발효로 끌어올린 천연 탄산이다. 1차적으로 발효가 다된 상태에서 2차 발효를 하는 것이 비결. 2차 발효는 1차 발효가 끝난 후 추가로 당분을 넣어 효모를 다시 활동하게 하는 것인데, 이화백주는 당분 대신 쌀가루를 조금씩 넣는다. 쌀이 당화되면서 당분을 만들어내고, 이를 다시 효모가 먹어 발효되면서 탄산이 발생하는 것. 일본의 몇몇 스파클링 사케 주조에 사용되는 방식이다.

 

사진=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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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래한강

사케는 사케고, 와인은 와인인데 막걸리는 왜 영어로 ‘코리안 라이스 와인’라 부르는 걸까. 서울 신설동에서 우리 술 전문점 ‘학술적 연구소’를 운영하던 이주원은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직접 막걸리를 만들고,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주원이 양조 사업에 뛰어든 계기다. 산아래한강은 그의 주점 학술적 연구소에서 판매하던 막걸리 ‘산아래’를 모델로 삼았다. 산아래는 충북 제천의 산자락에 위치한 유기농 쌈밥 식당 ‘산아래’의 대표가 내포 양조장의 대표와 함께 만든 막걸리다. 산아래 막걸리를 조금 수정하면 자신의 입맛에 이상적인 막걸리를 만들 수있을 것 같았던 이주원은 두 대표의 동의와 힘을 빌려 산아래한강을 완성했다. 쌈밥 식당인 산아래는 모든 식재료를 유기농으로 사용하는 등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를 고집한다. 그 철학을 이어받아, 산아래한강 역시 유기농 쌀과 충남 홍성의 깨끗한 물로 빚는다. 천연 감미료는 최소량으로 넣어 단맛을 최대한 억제했다. 시원한 청량감 뒤에 올라오는 쌀의 달큼한 향이 퍽 기분 좋게 와닿는다. “학술적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막걸리를 마셔봤습니다. 다들 훌륭했지만 개성이 무척 강해서 음식과 곁들여 마시면 음식 맛을 잘 느낄 수 없었어요. 음식과 함께 마실 때 가장 조화로운 막걸리를 생각하면서 만든 것이 산아래한강입니다.” 이주원은 지금 을지로 4가에 외국인 동료들과 함께하는 막걸리 가게 ‘7.8’을 준비 중이다. 산아래한강을 필두로 다양한 막걸리를 젊은 친구들과 외국인에게 가열차게 소개해볼 생각이다. 막걸리가 영어로도 ‘막걸리’라 불릴 때까지.

 

사진=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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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담

설하담은 깔끔하고 발랄한 맛이다. 부산 영도에서, 부산 출신의 젊은이들이 빚는다. 몽펠리에는 와이너리 투어로 유명하고 아오모리는 사케 투어로 유명하다. 설하담은 주조회사와 지역사회가 손을 잡고 함께 발전한 전례에 주목했다. 부산의 외식업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막걸리가 되리라 작심했다. “출시된 막걸리 종류가 몇백 개는 됩니다. 청주와 약주를 비롯해 다른 전통주까지 치면 그 수가 족히 1천 개는 될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술집에서 볼 수 있는 술은 맥주, 소주, 와인이 절대 다수죠. 주점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평생 장수 막걸리 외에는 전통주를 접할 수 없을 거예요.” 김승언 대표는 여전히 동시대 젊은이들이 전통주를 멀게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봤다. ‘전통 주점’을 콘셉트로 구성한, 소수의 공간이 아니면 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설하담의 목표는 전통 주점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전통주가 되는 거다. 술맛을 완성하기까지 사용한 쌀의 양만 700kg. 시음해본 전국의 막걸리는 1백여 종 이상이다. 제품 개발에는 1년 8개월을 들였다. 설하담은 오롯이 부산 쌀만 사용해 빚는다. 저온 살균법(Pasteurization)을 사용해 숙취를 유발할 수 있는 미생물 역시 많은 부분 제거하고 유통기한을 늘렸다. “기타 유명 막걸리들의 쌀 함유량은 6~7% 정도에 그치기도 합니다. 설하담은 쌀의 함유량을 31%로 월등히 높였어요. 더욱 달콤한 맛을 내기 위해서죠.” 저온 숙성한 원주를 오랜 시간 걸러내어 부유물도 대폭 줄였다. 텁텁하지 않고 깔끔한 맛이 톡 쏘는 탄산감과 어우러져 첫 모금부터 개운하다.

 

사진=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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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아

조선 시대 음식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과하주라는 술이 등장한다. ‘독하고 달다’고 기록된 과하주는 이름 그대로 무더운 여름을 나는 술이다. 지날 과(過), 여름 하(夏), 술 주(酒)자를 쓴다. 달콤하면서도 도수가 높은 이유는 발효 중인 술에 증류주를 투입해서다. 감미료에 의한 단맛이 아니라, 발효로 얻은 자연적인 단맛인 것이다. 발효주에 증류주를 섞는 건 높은 기온으로 술이 상하기 쉽던 시절, 온도와 습도에 따른 술의 변패를 막기 위해 고안한 양조 기법이다. “스페인의 셰리 와인이나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과 제조 방식이 동일합니다만, 역사적으로는 과하주가 1백 년 앞섭니다. 과하주는 조선 최고의 명주죠.” 술아를 만드는 술아원은 강진희 대표가 이끈다. 잊어가는 우리 술을 복원하고 지금의 입맛에 맞게 발전시키려 시작된 주조사다. 과하주 복원이 술아원의 첫 번째 미션이었다.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술 빚는 법을 배운 강진희, 서석, 정해나가 함께 두 팔을 걷어붙이고 고문헌 속에만 존재하던 과하주를 동시대에 현존하는 술로 빚어냈다. 술아는 여주 찹쌀과 증류주정, 국내산 누룩, 정제수로 만든다. 살균을 하지 않은 생약주로, 인공 감미료나 화학 첨가물은 쓰지 않는다. 주조할 땐 전통 방식에 가깝게 거의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한다. 그렇게 4가지 종류의 술아를 완성한다. 사계절의 풍미를 담는다. 봄은 매화주, 여름은 연화주, 가을은 국화주, 겨울은 순곡주다. 술아 매화주는 봄의 매화를 넣어 은은한 향이 일품이고 술아 연화주는 여름의 연꽃과 연잎을 넣어 신선하고 맑은 맛이 입안을 적신다.

 

 

아레나 2019년 4월호

https://www.smlounge.co.kr/arena

PHOTOGRAPHY 박재용 ASSISTANT 허주하 EDITOR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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