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제로 정비구역 해제되면 조합원 1인당 수백만 원 손해 우려
매몰비용 발생하지 않도록 지자체가 원활한 사업진행 지원해 줘야

최근 우연히 강남 재건축 대장주라는 대치동 한 아파트 자산 및 부채명세서를 보게 됐다. 이 사업장 부채는 지난해 12월 말일 기준으로 98억 원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금액이지만 워낙 해당 사업장의 경우 단지가 크고 조합원이 많다보니 조합원 1인당 부채는 200만 원 수준이다. 그치만 이 역시도 없는 돈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크고 아까운 돈이다.

조합이 경영을 방만하게 해서 이정도의 빚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사업장별 규모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조합 또는 재건축 추진위는 어디든 업무 특성상 수입은 없고 지출은 많다. 일단 사무실 운영비, 인건비, 홍보비 등 매달 다달이 드는 고정비용이 있다. 또한 재건축 진행과정에서 시시때때로 생기는 각종 법적 분쟁 해결을 위해 생기는 소송비용도 만만찮다. 조합 운영비는 조합원으로부터 출자하거나 은행 대출을 통해 마련하는 게 원칙이지만 신용대출 이자가 높다는 이유로 시공사 보증을 통해 담보대출을 받거나 시공사로부터 직접 빌려 쓴다. 이 단지 추진위 역시 지난 2003년 시공사로 선정한 두 곳의 건설사로부터 약 94억 원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준공 후 신축 아파트에 들어갈 때 이자까지 더해 추가 분담금 형태로 건설사에 갚게 된다.

그런데 새로 들어갈 아파트가 앞으로도 계속 지어지지 않는다면 100억 원에 육박하는 이 큰 돈은 더 불어나게 된다. 무기한 사업이 추진되다가 결국 좌초된다면 이는 매몰비용이 된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새 아파트에 살아보지도 못하고 돈과 세월만 날리는 셈이다. 경제적 행위에서는 선택의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재건축 지연이나 포기가 조합 자의가 아니라 타의라면 이 매몰 비용은 누가 처리하는 게 맞을까?

서울시가 최근 38개 정비사업구역이 일몰제 적용을 받아 정비구역에서 해제될 수 있음을 해당 지자체 및 사업장 등에 통보했다고 한다. 적지 않은 정비사업장이 정비구역 해제가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사회비용도 수백,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막기 위해선 지자체가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지원은 커녕 되레 강남권 재건축 사업장 인허가 일시 중단 발언을 했다. 일몰제로 정비구역에서 해제될 경우 직권해제와 달리 지자체로부터 매몰비용을 지원받지 못한다. 결국 매몰비용은 조합원 몫인 셈이다.

박원순 시장은 강남 재건축 인허가 일시 중단 발언의 배경으로 한국의 사회 불평등을 앞세웠다. 그러면서 부동산으로부터 일어나는 부당 수익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부동산으로 인한 부당수익을 용인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부동산으로 인한 부당 손실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반대 논리도 있다는 점을 박원순 시장을 비롯해 행정담당자들은 염두에 둬야 한다. 서울시의 강남‧북 차별과 불평등 없는 정책 지원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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