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별 환변동성 헤지 전략···LG화학 '오픈'·한화케미칼 '파생상품 종합백화점'

국내 정유·화학 업계에서는 실적의 핵심 변수 중 하나로 환율 관리를 꼽고 있다. 정유업체나 화학업체 모두 원재료를 국내에서 수입해야 하고, 주요 제품을 해외에 수출한다는 점 때문에 외화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화학 업체들은 모두 다양한 방법으로 환율 변동성을 방어(헤지, Hedge)하고 있다.

시사저널이코노미가 국내 정유·화학 업체 가운데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0위 안에 포함되는 7개 업체(LG화학,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금호석유화학, OCI)를 대상으로 파생상품 거래 현황을 분석한 결과, 파생상품을 가장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LG화학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장 다양한 파생상품을 활용하고 있는 곳은 한화케미칼이었다.

이미지=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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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이 달러 등 외화 가치 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가장 쉽게 활용하는 방법은 환율 선도계약이다. 선도계약은 금융기관 등 거래 당사자간 교환할 환율과 기간을 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1년 뒤 1달러를 1120원에 교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년간은 원달러 환율이 오르거나 내리더라도 1120원이 적용된다. 환율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느냐에 따라 계약자간 손실이나 이익이 갈리지만, 정해진 환율로 교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환율 방어 수단으로 꼽힌다.

LG화학은 국내 화학업계 선두 기업 답게 환율 변동성을 회피하는 데서도 가장 세련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LG화학의 사업보고서에서는 환율과 관련한 파생상품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외화 표시 자산과 부채의 규모를 맞춰서 환율 상승이나 하락시 자연스럽게 헤지가 되도록 하는 모습이다. 환율 변동성을 파생상품 통해 방어하기 보다는 외화 차입금을 통해 자연스럽게 헤지(Hedge)하는 전략을 활용하는 모습이다. 쉽게 말하면 금융기관을 통해 환율 변동성을 헤지하지 않고 기업 내에서 해결하는 셈이다.

◇LG화학, 외화 자산·부채 규모 매칭···가장 세련된 환헤지

LG화학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2조4588억원에 달하는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동시에 2조3966억원 가량의 달러 부채를 보유중이다. 자산과 부채의 차이는 600억원 수준이다. 이렇게 자산과 부채 규모가 비슷할 경우, 달러 가치 하락시 자산 가치가 하락한 만큼 갚아야할 부채 역시 줄어들기 때문에 환율 손실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환 변동성을 막기 위해 별도의 파생상품에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비용 효율적인 헤지 수단이다. 

이미지=김태길 디자이너
이미지=김태길 디자이너

국내 화학 업계에서 자산과 부채 규모를 맞춰 자연스럽게 환율 변동 위험을 제한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곳은 LG화학이 유일하다. 다른 기업들이 LG화학의 방식을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자산과 부채를 통한 자연스러운 헤지 전략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높은 신용등급과 해외 투자 등 자금 수요가 필수적이다.

LG화학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 덕분에 해외에서도 국내에서 만큼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동시에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면서 해외 자금 수요도 풍부하다. 따라서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해 달러로 환전한 뒤 해외 공장에 투자하기 보다는 외화로 직접 자금을 조달해 투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환 헤지 전략을 진행할 수 있다. 반면 해외 조달 비용이 국내에 비해 과도하게 높거나, 해외 투자 수요가 크지 않은 기업은 자산 부채 규모를 일정하게 맞추기가 어렵다.

실제로 LG화학은 사업보고서가 발표된 이후인 최근 달러화와 유로화로 표시되는 '그린본드' 15억달러 어치를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LG화학이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부여받은 신용등급은 A-등급 수준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 해외 신용평가기관들 사이에서 LG화학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받은 기업은 삼성전자(AA-) 뿐이며 비슷한 수준의 기업들로는 SK텔레콤과 KT가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오래전부터 차입금 활용에 보수적인 곳으로 유명하다. 삼성전자의 해외법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34개 통화에서 2266건의 통화선도 거래를 체결하고 있다.

LG화학이 환 변동성 회피 전략은 미국달러에만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비슷하게 유지되는 달러화 표시 자산과 부채와 달리 유로나 엔, 위안화 등은 자산과 부채 규모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사업보고서 상에서는 유로표시 자산과 부채가 각각 1979억7500만원, 8929억6300만원으로 기록돼 있다. 엔화 표시 자산과 부채는 각각 278억4900만원, 1143억9900만원이다.

LG화학은 2017년말까지만 해도 계약을 맺고 있는 파생상품이 한건도 없었다. 다만 지난해에는 원재료에서는 상품(Commodity)스왑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항목은 비철금속 등이며 만기는 오는 2021년 12월까지다. 배터리 시장에서 핵심 원료들의 가격 변동을 제한하기 위한 상품으로 추측된다.  해당 상품의 공정가치는 지난해말 기준 184억7700만원이다.

◇한화케미칼, 통화옵션계약도 활용···환율 관련 '파생상품 종합백화점'

파생상품의 활용에 제한적인 LG화학과 달리 파생상품을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곳은 한화케미칼이다.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6건의 통화선도계약과 8건의 통화옵션 계약, 5건의 통화스왑 계약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에서는 통화 선도계약과 통화 스왑, 이자율 스왑 등을 활용하고 있다. 환율 변동성을 제한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파생상품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화학업계 상위 업체 7곳 가운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통화 옵션 계약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한화케미칼이 유일하다. 국내에서는 10여년 전 키코(KIKO) 사태 이후 환율과 관련한 옵션 사용에 거부감을 느끼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통화 옵션계약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상태다.

LG화학과 한화케미칼을 제외한 대다수 업체들은 외화 관련 파생상품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면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통화선도계약과 통화스왑이 활용된다. 두 상품의 차이는 거래의 지속 여부다. 통화선도계약은 계약된 환율로 정해진 만기에 한번 통화를 교환하지만, 통화스왑은 일정 기간 동안 여러차례 정해진 환율로 통화를 교환한다. 단순화하면 통화선도계약을 반복적으로 묶어놓은 계약이 통화스왑이다.

우선 통화스왑을 활용하는 곳은 롯데케미칼과 금호석유화학이다. 롯데케미칼은 미국 달러와 유로, 파운드, 위안화 등에서 통화스왑 거래를 활용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통화스왑 계약과 이자율스왑을 활용하고 있다.

◇롯데케미칼·금호석화, '통화스왑'파···OCI·에쓰오일, '통화선도계약'파

OCI와 에쓰오일은 통화선도계약을 통해 환율 변동성을 방어하고 있다. OCI는 통화선도계약에서 모두 선물환 매도 포지션이며 1120.13원을 기준으로 환율이 상승시 손실을 보는 반면, 하락시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해당 상품의 만기는 거래일 이후 1개월 가량으로 지난 1월말 모두 만기가 도래했고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쓰오일은 통화선도계약과 상품 스왑을 활용하고 있다. 통화선도계약에서는 미국달러와 일본 엔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체결됐던 선도계약들은 지난 3월말 모두 만기가 도래한 상황이며 이후 새로운 선도계약을 체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쓰오일은 원재료 가격 변동을 방어하기 위한 상품 스왑에서는 만기를 1년 이내로 유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내 화학 중간 지주사인 만큼 직접 계약을 맺은 파생상품은 많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이 국내외 금융기관과 맺은 파생상품 계약은 해외사채에 대한 이자율 스왑 계약과 미국 달러화에 대한 통화 선도계약 뿐이다. 다만 자회사인 SK에너지와 SK종합화학, SK인천석유화학 등은 상품 스왑을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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