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불합치 4명·단순 위헌 3명···다수 의견 “여성, 자율적 생활영역 형성 권리 있어”
“출산 강제, 자기결정권 제한···사실상 부정 및 박탈”
소수 의견 재판관 2명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권이 더 중요”

유남석 헌재소장 등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은애, 이선애, 서기석 헌법재판관, 유남석 헌재소장, 조용호, 이석태, 이종석 헌법재판관. / 사진=연합뉴스
유남석 헌재소장 등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은애, 이선애, 서기석 헌법재판관, 유남석 헌재소장, 조용호, 이석태, 이종석 헌법재판관. / 사진=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무게를 둔 판단으로 분석된다. 헌재는 낙태죄 조항이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입법목적을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으며, 공익에만 일방적인 우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4(헌법불합치) : 3(단순 위헌) : 2(합헌) 의견으로 이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법불합치의견에 단순 위헌의견을 합산하면 법률의 위헌결정을 선고할 때 필요한 심판정족수 6인을 초과한다. 이에 따라 헌재는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주문했다.

법 조항이 즉시 폐지되는 ‘단순 위헌’을 결정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는 법적 공백이 발생한다. 헌재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낙태 결정가능기한을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이밖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에 대해 입법자의 법 개정을 주문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부분에 주목했다.

유 재판관 등 4인은 “헌법이 보호하는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인격권이 보장되고, 여기에서 자기결정권이 파생된다”면서 “자기결정권에는 여성이 그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임신한 여성이 이를 유지할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돼 있다”라고 규정했다.

이어 “낙태죄 조항은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했다”라며 “이는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어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유 재판관 등 4인은 “낙태죄 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다.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고 지적했다.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린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부정되거나 박탈당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이 재판관 등 3인은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낙태가 허용되는 예외적 사유를 두는 것은 ‘낙태가 불가피한 사람’의 지위를 부여해 법적 책임을 면제할 뿐”이라며 “임신한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하지도 않고, 이는 사실상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려면 자기결정권 행사가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동안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낙태죄 조항의 예방 효과가 제한적이고, 형벌조항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낙태죄 조항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낙태죄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반면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은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인간의 존엄 및 태아의 생명, 국가의 보호의무를 강조하며 합헌 의견을 냈다.

조 재판관 등 2인은 “인간의 생명을 고귀하고 고유한 가치를 가지며,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라며 “생명권은 일부 제한할 수 없다. 이러한 제한은 생명권의 완전한 박탈을 의미한다. 낙태된 태아는 생명이 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가피한 경우 ‘모자보건법’을 통해 낙태가 허용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비해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중시한 입법자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라며 “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해 결코 크지 않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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