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반약 전환 추진 가능성 관측 무게, 시장 선점 현대에 유리···현대 “일반약 전환 논의 재개되면 전략 변화 예상”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국내 사후피임약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현대약품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선고에 표정관리에 들어간 모습이다. 이번 선고로 인해 정부가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에 사후피임약 시장에서 1위와 2위 품목을 점유한 현대약품에 유리한 형국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재는 11일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단, 헌재는 낙태죄 규정을 곧바로 폐지해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오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을 지칭한다.

이처럼 예상대로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자, 정부가 현재 전문의약품인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헌재 선고 외에도 변화된 사회 분위기와 진보 정책에 주력하는 문재인 정부 등 여러 요소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정책 변경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실제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보건당국은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추진했지만 종교계와 의료계 등 반발에 부딪혀 좌절한 바 있다. 만약 사후피임약이 일반약으로 전환되면 의사 처방이 필요 없게 돼 현재보다 일반인 구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사후피임약 시장은 100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일반약 위주인 사전피임약 시장이 200억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시장 규모는 향후 확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사후피임약 시장은 현대약품 제품이 1위와 2위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현대약품 ‘엘라원정’과 ‘노레보원정’이 각각 33억8500만원과 28억5800만원 매출을 올렸다. 2개 품목 매출은 사후피임약 시장의 60%가량, 사후피임약 1위부터 7위 품목 전체 매출의 약 75%를 점유하고 있다. 

이어 바이엘제약 ‘포스티노원’과 콜마파마 ‘세븐투에이치정’이 3위와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각각 8억5300만원과 7억3000만원 판매고를 기록했다. 명문제약 ‘레보니아원’도 지난해 2억7000만원을 판매했다. 이밖에 크라운제약 ‘쎄스콘원앤원정’과 다림바이오텍 ‘애프터원정’ 등 품목 매출이 높은 편이다.     

이처럼 사후피임약 시장을 선점한 현대약품은 이번 헌법불합치 선고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현대약품 관계자는 “피임약과 낙태는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사후피임약 시장에 큰 파장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후피임약이 일반약으로 전환이 되지 않는 이유는 사후피임약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고 오남용에 대한 우려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 현대약품도 이번 헌재 선고로 인해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란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현대약품 관계자는 “헌재 선고에 따라 향후 일반약 전환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며 “논의가 이뤄질 경우 그 부분에 대한 전략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도 “헌재 선고로 인해 정부가 일반약 전환을 논의하면 일부 반대는 있지만 성사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단 실제 정책이 변경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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