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면세점, 중국인 보따리상들로 매출 꾸준히 상승···대량구매·현장인도 ‘악용’, 불법 유통돼
관세청 “대량 판매자 전수 조사할 근거 없어”···면세품 재판매 규제 법령 없어 대책 마련 지적

/그래픽=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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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내 면세점에서 판매된 면세 제품이 중국 보따리상들로부터 해외가 아닌 국내 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재판매되고 있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늦어도 5월 안에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면세전용상품’ 표기를 붙여 불법유통을 근절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면세용 제품 표기 방식이 ‘자율표기’이고, 국내 불법 유통을 근절한 마땅한 법규정도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중국 보따리상들은 국내 면세점 시장의 큰손으로 불린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내 면세점 매출의 7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관세청·한국면세점협회 등이 발표한 면세점 매출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면세점 구매객 중 중국인은 1293만3000명으로 전체의 26.9%를 차지했지만 이들이 기록한 매출액은 13조9201억원으로 전체 면세점 매출의 73.4%를 차지했다. 중국인 매출액도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5조2395억원이던 중국인 매출은 2016년 7조8063억원으로 48% 늘었고, 2017년에도 22% 올라 9조576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도 2017년 대비 45% 증가했다.

국내 면세점 내·외국인 매출 및 이용객 수 추이. / 자료=한국면세점협회,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국내 면세점 내·외국인 매출 및 이용객 수 추이 / 자료=한국면세점협회,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문제는 중국 보따리상과 국내 거주 외국인 유학생들이 면세점에서 대량 구매한 제품을 국내 또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재유통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관광산업 발전과 쇼핑 편의 및 국산 제품 판매 촉진을 위해 외국인 관광객이 시내 면세점에서 국산 면세품을 구매하면 출국장이 아닌 면세점 현장에서 바로 물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현장 인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제도를 악용해 국내 거주 외국인 유학생을 고용해 현장에서 대량으로 물품을 구매한 뒤 출국 예약을 취소하고 있다.

◇시내 면세점, 中보따리상들에게 ‘불법 유통’ 창구로 사용돼

기자는 11일 오전 용산에 위치한 시내 면세점을 찾았다. 중국 단체 관광이 풀리지 않았지만 면세점은 중국인 고객들로 가득했다. 특히 보따리상들로 추정되는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 브랜드를 중심으로 모여 박스채로 대량구매하고 있었다.

면세점 직원 정아무개씨(32)는 “보따리상들이 가끔 매장에 전시해둔 제품을 사진으로 찍어도 되냐고 물어 허락했는데 알고 보니 매장 전시 제품을 본인 SNS마켓에 올려 판매하고 있었다”며 “면세점에서 사진 찍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막무가내로 찍는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중국인 면세점 직원 리아무개씨(35)는 “보통 보따리상들은 박스채로 구매한다. 어떤 용도로 대량 구매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중국 위챗(WECHAT·중국 메신저)에 판매하기 위해서일 것”이라며 “관광객들이 몰리면 면세점에서 판매 수량 제한을 걸기도 하는데 어차피 이들은 유학생을 알바로 고용하는 등 각종 방법을 동원해 대량구매하기 때문에 소용없다”고 설명했다.

또 리씨는 “자주 매장에 들리는 일부 보따리상들은 면세점 직원들과 위챗 친구를 맺고 몰래 제품을 빼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며 “실제 보따리상들로부터 같이 위챗에서 제품을 판매하자고 제안을 받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11일 서울 용산 한 면세점 직원이 중국 보따리상에게 제품을 박스채로 판매하고 있다. / 사진=한다원 기자
11일 서울 용산 한 면세점 직원이 중국 보따리상에게 제품을 박스채로 판매하고 있다. / 사진=한다원 기자

중국 보따리상들은 인기 제품을 대량구매하기 위해 면세점 오픈 전부터 줄서서 기다린다. 면세점 재고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조금만 늦어도 상품 구매가 어려워 보따리상들 사이에서도 구매 경쟁이 치열하다. 아울러 이들은 면세품 재판매를 위해 다양한 마케팅 방법도 동원한다. 주구매 대상인 SNS 팔로워들의 주문량을 늘리기 위해 매장에서 실시간 SNS 방송을 하며 정품을 인증한다. 당초 중국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전자상거래법’을 시행해 불법 유통 판매를 단속하고 있지만, 보따리상들은 SNS판매까지의 단속은 하지 않고 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날 면세점에서 만난 중국 보따리상 쑨아무개씨(27)는 “면세점에서 구매하고 중국에서 재판매한 지는 3년 정도 됐다. 인기 제품을 구매하려면 아침부터 줄서는 것은 물론 서울시내 면세점을 모두 돌아야한다”며 “면세품 표시가 붙어도 재판매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한국 유통은 어렵겠지만 중국 SNS에서는 잘 팔릴 것이고 오히려 면세품 표시가 중국에서는 ‘정품’으로 인식돼 오히려 너도나도 사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면세점 표기 관련 대책 내놓았지만 실효성은 의문

같은 날 화장품 가맹점 연합회는 면세점 등 제한된 곳에서 거래돼야 할 면세 화장품들이 불법으로 유통되면서 화장품 자영업자들뿐 아니라 유통시장 질서가 흐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회는 면세 화장품의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화장품 용기에 면세전용 표기 ▲시내면세점의 현장인도제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관세청은 이 같은 피해를 인식하고 지난해 9월부터 항공권 예약을 자주 취소하거나, 장기간 출국하지 않고 시내면세점에서 면세품을 빈번하게 구매하는 외국인에 대해 면세품 현장 인도를 제안하고 있다. 또 관세청은 면세 화장품의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화장품 회사가 자율적으로 화장품 용기에 면세전용을 표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관세 물품의 불법 유통에 대한 관리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며 “현장 인도 제도를 포함한 방안은 현재 최종 조율하고 있다. 이달 중순 전에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관세청이 내놓은 면세품에 ‘면세전용’을 표기하는 방안은 말 그대로 자율표기라는 점에서 불법 유통을 근절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현행법상 면세품 재판매에 특정화된 법령은 없다.

면세점 직원 박아무개씨(24)는 “저희 본사에도 면세전용 표기 관련 요청이 들어온 것으로 아는데, 정부가 요청한 면세전용 표기 방식은 스티커 또는 스탬프 형식”이라며 “지금도 일부 브랜드에서는 자체적으로 ‘비매품’이나 ‘not for sale’이라는 스티커를 부착해 판매하고 있는데, 스티커 제거가 쉬워 보따리상들의 판매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세청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면세품이 면세점에서 구매한 것이 아니라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유출된 제품이라면 문제 삼을 수 있으나 그게 아니라면 면세품 재판매에 특정화된 법령은 없다”며 “다만 대량으로 면세품 판매를 지속한다면 이는 개인이 아닌 사업자로 봐야하고 그 사업자가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아 세금을 내지 않고 상업 활동을 한다면 불법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한 개인이 일시적, 우발적으로 면세품을 인터넷에서 되파는 것은 사업자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며 “인터넷에서 면세품을 판매하는 판매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판매자들을 전수 조사할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전혁구 화장품 가맹점 연합회 공동회장은 “일부 외국인들이 면세점 화장품을 싼 값으로 구입한 후 물건을 바로 가지는 혜택을 악용해 해외로 가져가지 않고 국내시장 또는 SNS에서 유통시키고 있다”며 “국내에 유통된 제품은 온라인 몰에서 싼값에 판매되고 있어 가맹점들이 제일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담배와 같이 면세품 화장품 용기와 포장상자에 국내 시판 화장품과 명확히 구분될 수 있도록 표시해 불법 유통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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