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예산낭비 유도·과도한 사유재산 침해 비난 여론
잠실5단지 조합 측 “시 요구조건 다 맞추며 36억 원 썼더니 이제와서 나몰라라”
시장 전문가들조차 ‘단기적 집값 잡기 가능해도 중장기적 부작용 불가피’ 우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강남 재건축 추진 단지 소유주들이 전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건축 표류 공식화 발언에 단단히 뿔이 났다. 이들은 시장이 요건만 충족시키면 인가해주겠다는 약속을 시가 지키지 않은 것은 조합을 기만한 것이고, 박 시장의 인위적 시기 조정은 사유재산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박원순 시장의 이번 발언에 대해 잠실주공5단지 등 일부 조합 측은 추가 단체 행동까지 고려 중이다.

11일 강남구의 한 재건축 추진 단지 조합원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박 시장의 발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올바른 행정가라면 기반시설 훌륭한 동을 기준으로 끌어올리는데 목표를 둬야 하는데, 박 시장 발언은 개발이 덜 된 강북 개발속도에 강남을 맞춰 하향 평준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매달 조합 운영비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시장이 조합 예산 낭비를 유도하니 지나친 사유재산 침해”라는 견해를 내비쳤다.

재건축 인가 지연과 맞물려 예산낭비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잠실주공5단지다. 이 단지 조합은 2017년 3월 서울시의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하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건축심의까지 일괄해서 통과시켜주겠다는 제안에 공모에만 36억 원의 비용을 투자했다. 1년 뒤인 지난해 3월 설계안을 선정했고 그로부터 1년이 또 지났지만 인허가는 감감 무소식이다. 이에 조합 측은 지난 9일 서울시청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그럼에도 박 시장이 더욱 강경한 입장을 밝히자 이들 역시 추가 집회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상우 잠실5단지 조합 자문단장은 “시는 재건축을 추진하라고 조합추진위 설립 인가를 내준 것 아닌가. 그런데 5단지 조합 추진위는 지난 2000년도에 설립된 지 19년 째 재건축이 안 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단지는 시가 통보한 요건을 모두 갖췄는데 이제 와서 안 해준다고 한다. 행정가라는 사람이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데 동네 슈퍼마켓 운영도 이렇게는 안 한다”고 힐난했다.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도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잠실주공 인근의 A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5단지 소유주 조사를 해보니 전체 3930세대 중 3100세대가 60대 이상이더라. 고가를 지불하고 투자한 일부 조합원도 있지만 한 평생 이곳에 살며 집 하나가 전부인 노인도 많다. 시장을 교란한 투기세력이 있다면 세금 또는 법률로 징벌해야지 조합원 전체를 투기세력으로 인식하고 행정절차를 중단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재건축 인허가 절차 지연이 당장은 집값 상승 억제효과를 낼 순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집값 급등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함영진 직방 리서치팀 랩장은 “서울은 신규택지가 많지 않아 신규주택은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 사업을 통해 공급된다”며 “인가를 지연시켜 새 아파트 신규 공급이 늦어지면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시장 전문가들도 인위적 인허가 지연을 우려, 집값을 안정화시킬 다른 대안을 내놓는 게 필요하다면서도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미 ▲3억 원 이상의 주택매입에 한해 자금조달계획서 도입 및 검증 ▲자금출처조사 강화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재건축 허용연한 규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도입 ▲재건축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 ▲재건축 이주시기 조정 등 집값 급등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부분에 대한 규제는 더 나올 게 없을 정도로 다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기 부담스럽다는 한 부동산 시장 조사업체 관계자는 “대안책으로 내놓으라고 말할 게 없을 정도로 이미 너무 많은 규제가 도입돼 대안책 제시가 쉽지 않다”면서도 “그렇지만 정상적 행정절차를 인위적으로 규제하는 건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잘못된 결정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