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뮤즈이자 아내로만 알려진 젤다는 사실 위대한 창작자이다.

사진=김민규
사진=김민규

 

나는 젤다(Zelda Sayre Fitzgerald, 1900~1948)의 일기장을 읽고 싶다.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차 있을까. 젤다는 딸 스캇티를 낳고 쓴다. “딸이라서 다행이야. 저 애가 바보가 되면 좋겠어. 이 세상에서 여자는 예쁘고 작은 바보로 지내는 게 최고니까. 그거 알아? 나는 이 세상 모든 게 끔찍해.” 그의 냉소, 예민한 반짝거림, 통찰력. 모든 게 담긴 일기장이 궁금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다. 그의 남편인 스콧 피츠제럴드가 젤다의 일기를 출간하자는 에디터의 제안을 묵살했기 때문이다. 그는 젤다의 일기장을 독점한 뒤, 일기와 편지의 문장들을 자신의 작품에 고대로 베껴 써먹었다. 위의 아름다운 문장은 <위대한 개츠비>의 여주인공 ‘데이지’의 대사가 됐다.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 <젤리 빈>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름을 달고 출간됐지만 젤다의 문장이 곳곳에 박혀 있다. 젤다는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에 대한 위트와 냉소가 가득 찬 서평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페이지에선 결혼 직후 불가사의하게 사라진제 옛날 일기의 일부가 보여요. 꽤 편집돼 있지만 편지글들에서도 어쩐지 낯익은 내용이 있고요. 아무래도 피츠제럴드 씨는 (스펠링 제대로 쓴 것 맞죠?) 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

작가, 발레리나, 화가, 파티광, ‘미국의 원조 플래퍼’인 젤다. 그와 남편인 스콧 피츠제럴드는 뉴욕 사교계의 총아로 신문 가십난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 젊고 빛나는 커플은 세간의 이목을 끌어 “막 태양에서 걸어 나온 것 같았다. 그들의 젊음은 기가 막혔다”라는 말을 들었다. 자신의 집도 갖지 않고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크고 화려한 호텔을 전전하는 삶. 파리와 뉴욕의 유명한 카페를 거실인 양 쓰고 밤새 광란의 파티를 즐기며 그들은 당시의 흥청망청했던 ‘재즈 시대’를 마음껏 누렸다. 1차 세계대전 후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을 맞이하던 미국은 그들에게 딱, 걸맞은 무대가 됐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 ‘제멋대로 커플’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삶을 보여준다.

1900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주 대법원 판사 부부의 막내딸로 태어났을 때부터, 이 금발 소녀의 삶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춤을 잘 추는 개방적 성격의 젤다에게는 팬이 몰려들었다. 18세 때 만난 22세의 스콧 피츠제럴드도 처음에는 팬 중의 한 명이었다. 그를 촉망받는 작가로 주목하게 한 첫 소설 <낙원의 이편>이 출간된 즈음 둘은 약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유명한 커플로 첫발을 내디뎠다. 첫 소설에서부터 스콧 피츠제럴드는 젤다를 여주인공의 모델로 삼았다. 젤다는 스콧의 소설 속에 끊임없이 변주하며 등장한다. 젤다는 스콧의 공식적인 뮤즈였다. 그러나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젤다의 역할은 뮤즈 이상이었다. 스콧은 젤다의 문장을 훔치고, 젤다의 소설에 공저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리거나 혹은 젤다의 소설을 아예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젤다가 자전소설인 <왈츠는 나와 함께>를 탈고해 출판사에 보냈을 때, 스콧은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 <밤은 부드러워>와 내용이 겹친다며 분노했다. 둘이 함께 겪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스콧의 것’이었고, 젤다의 인생조차도 자신만이 쓸 자격이 있다고 스콧은 주장했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것은 내 거야. 만약 우리가 여행을 하고, 당신과 내가 함께했더라도 나는 전문적인 작가야. 당신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나라고. 따라서 모두 내 작품의 소재라고, 당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는 결국 <왈츠는 나와 함께>의 대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스콧의 곁에서 젤다는 작가가 아닌 그저 글감으로만 존재했다. 심지어, 젤다는 재능 있는 작가인 스콧을 망친 주범으로 비난받았다. 비난의 선두에는 작가 헤밍웨이가 있었다.

폭죽처럼 화려하게 치솟아 오르던 그들은 더없이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끝없이 바람을 피우던 스콧은 결국 마흔넷에 다른 여자의 집에서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죽었고, 8년 뒤 젤다는 입원해 있던 정신병원에 불이 나는 바람에 죽었다. 저평가되던 젤다는 1970년 전기 작가 낸시 밀퍼드의 평전이 발표되면서 페미니즘 운동의 아이콘이 됐다. 덕분에 우리는 젤다의 비범한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스콧의 이름을 벗겨낸 채로.

 

◆글쓴이 박사

문화 칼럼니스트. 현재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경북교통방송의 <스튜디오1035>에서 책을 소개하는 중이며, 매달 북 낭독회 ‘책 듣는 밤’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 백서> <나의 빈칸 책> 등이 있다.

 

우먼센스 2019년 4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에디터 하은정 박사(북 칼럼니스트) 사진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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