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들, 각종 규제 및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경영권 승계 점점 더 힘들어져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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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까지 별 문제 없이 세대교체를 이뤘던 재벌들이 3세 경영진으로 세대교체를 앞두고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주나 시장을 만족시키며 지배구조 개편을 이루기 힘들어진데다, 마약 사건 등으로 재벌 3세에 대한 이미지 악화까지 겹치며 오너의 핏줄이니 수월하게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이란 기대를 갖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현재 주요 대기업 중 어느 정도 3세대 세대교체를 이뤘다고 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현대자동차그룹과 LG 정도다. 허나 이 두 곳조차 아직 100% 안정적인 세대교체를 이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됐지만,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지난해 제시했던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을 골자로 한 안은 결국 시장반발에 무산됐다. 주총에서 엘리엇에 승리를 거뒀지만, 지배구조 개편 문제는 시장여론 등 고려할 것이 많아 녹록치 않은 작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광모 LG 회장은 지주회사 회장 자리에 올라 지배구조와 관련해선 크게 고민할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다소 갑작스럽게 총수 자리에 오른 만큼, 지배력을 굳건히 하기 까진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더불어 상속세 납부 문제 역시 아직 과제로 남아있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얼떨결에 유일한 오너일가로 경영을 이끌어가게 됐지만, 당장 내년 주총 때까지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다. 승계 작업을 채 끝내기도 전에 홀로서기 하게 된 그는 벌써부터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나머지 그룹들은 더 갈 길이 멀다. 한화그룹은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와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 각자 위치에서 경영수업을 하고 있다. 후계구도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한 재계 인사는 “김동관 전무는 저번 인사 때 승진이야기가 나왔지만,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승계를 위해 부족한 지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주)한화 지분을 보면 김동관 전무가 4.4%, 김동원 상무, 김동선 전 팀장이 1.7%씩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되지만 쉽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SK그룹은 아직 3세 경영을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 1960년생인 최태원 회장이 왕성하게 경영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자제들 역시 경영수업에 돌입한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회장의 장녀 최윤정씨와 차녀 최민정씨는 각각 SK바이오팜, 중국 홍이투자에서 근무하고 있고 장남 최인근씨는 아직 유학 중이다. 한 재계 인사는 “SK 3세 승계에 대해 지금 점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

CJ그룹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씨와 장녀 이경후씨는 각각 CJ제일제당 부장과 CJ ENM의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재계에선 CJ가 이선호씨와 이경후씨가 각각 지분 17.97%, 6.91%를 보유하고 있는 CJ올리브네트웍스를 통해 승계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점치기도 했으나, 일감몰아주기 논란 등이 일 수 있어 만만치 않은 여정이 예상된다.

이처럼 대부분의 재벌가는 아직 3세 경영을 위한 준비 작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승계 작업은 더욱 더 힘들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한 재계 인사는 “예전엔 별 문제 의식 없이 행해졌던 것들이 내부거래, 일감몰아주기란 비판을 받고 자칫 잘못하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까지 받는 상황”이라며 “승계 작업 진도가 더딘 곳들은 시간이 갈수록 고려할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재계는 ‘일감몰아주기’ 외 마땅한 승계방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와 더불어 주주들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고, 최근 마약 사건 등으로 재벌 3세에 대한 부정적 여론까지 더해지면서 3세 승계 작업은 모든 그룹들에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전망이다.

한편 3세 승계와 관련해 승계에 대한 관점 자체가 바뀔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산업 환경의 변화, 법적 허들 문제 등으로 3세 승계는 갈수록 힘들어 질 것”이라며 “다만 그런 것들을 따지기 전에 이젠 왜 승계를 당연히 해야 하는 수순처럼 여기는 것인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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