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 환원’ 실천한 故함태호 명예회장···공익법인에 오뚜기 주식 출연·증여
法, 85억 증여세 소송서 ‘비과세’로 화답···법문 얽매여 ‘정의’ 외면당하지 않아 다행

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2016년 9월 별세)이 공익법인에 오뚜기 주식을 남겼고, 이 주식에 세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결한 기사를 썼다.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큰 공부가 됐다.

이 사건을 접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선고된 지 보름이나 지난 판결문이었다. 법원을 출입하는 수십여명의 기자들이 한 번쯤은 들여다봤을 판결문이었다. 85억원대 증여세 소송이었다. 주식을 증여받은 교회와 미술관이 이겼다. 원고들의 사연과 함께 금액도 크고, 세무당국의 판단이 뒤집혔으니 기사 가치가 충분한 판결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먼저 찾아 쓰지 않았다.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세법 관련 판결은 어렵다. 법조인들은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기자들은 일반인이다. 세법 용어 하나하나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판결 내용을 겨우 이해하더라도 일반 독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판결문을 법원에 요청해 정독했다. 기사를 완성하기까지 5시간 이상이 걸렸다. 마감 시간을 한참 놓쳤다. 단순 판결 기사에 꽤 오랜 시간을 소모한 셈이다. 그러나 오뚜기라는 회사에 대한 궁금증이 호기심을 계속 자극했다. 신을 뜻하는 갓(God)과 오뚜기의 합성어인 ‘갓뚜기’라는 국민 애칭이 생긴 이유가 판결문에 녹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윤 극대화라는 단순한 기업 목적 이상의 것이 존재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비경제적 목적까지 고려했던 함태호 명예회장의 윤리경영이 엿보였다. 함태호 명예회장의 철학은 세금 취소를 구하는 원고 측 주장에 녹아있었다.

원고 측은 “사회 환원과 공익사업 지원이라는 함태호 명예회장의 순수한 목적에서 이뤄진 주식 증여다. 주식이 기업 지배수단으로 이용될 우려가 없다. 합헌적, 합목적적 관점에서 관련법 원칙에 따라 비과세 대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해 법원은 상당한 고민을 판결문에 풀어낸다. 정부가 여력이 없어 수행하지 못한 분야에서의 공익법인의 역할, 세금을 없애 이를 장려하려는 정부의 노력, 재벌이 상속세 부담을 줄이려하거나 조세회피를 위해 악용하는 사례 등을 설명한다. 고민 끝에 재판부는 ‘함태호 명예회장의 순수한 목적이 있으니 과세는 안된다’라는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출연자의 목적, 의도 및 동기를 고려해 법을 해석하면 법적 안정성이나 조세평등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신 법원은 ‘묘수’를 꺼내든다. 성실공익법인과 일반공익법인이 동시에 주식을 증여받은 경우 주식의 합계를 계산할 때 성실공익법인에는 절반의 가중치를 적용해 합계를 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다. 복잡하지만 이러한 해석으로 당초 5.81%였던 주식 비율(내국법인의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에 대한 비율)이 3.195%가 됐다. 5% 미만은 비과세 대상이다.

재판부는 “법이 명시적으로 자세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성실공익법인들이 받은 주식에 절반만 가중치를 적용해 합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법원 판단에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부문화 융성 및 조세회피를 방지해야 한다는 입법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으로 본다”라는 의견을 냈다.

판결문을 읽는 내내 재판부가 함태호 명예회장의 철학을 이해하고 선의로 해석하려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차와 법문에 얽매여 더 큰 진실과 정의가 외면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함태호 명예회장도 하늘에서 뿌듯하게 생각했으리라. 문득 장학재단에 180억원을 기부했다가 1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받았던 ‘수원 교차로’ 창업자 고(故) 황필상 박사의 사례도 떠올랐다. 황 박사는 7년간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과세가 부당하다’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정의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황 박사는 지난해 12월 숨지면서 자신의 시신을 아주대병원에 기증했다.

기자는 기부를 통해 사회적 정의를 실천한 의인(義人)들의 행동과 법원의 판단에 큰 감동을 받았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오뚜기가 함태호 명예회장이 보여준 윤리경영을 계속해 실천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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