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로 일했거나 연구용역비 준 제약사는 재직 동안 잊고 공정하게 정책 집행해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 취임한 후에도 언제든지 전화 주시면 받고 식약처의 정책과 행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이같은 언급은 지난달 8일 청와대가 신임 장관들과 식약처장 등 차관급 인사를 발표한 당일 오후 이의경 처장이 기자와 통화에서 밝힌 내용이다. 당시 마감 기사에 바쁜 기자가 후배와 잠깐 통화하던 중 이 처장이 기자들한테서 오는 전화는 모두 받는다고 들은 후 바로 전화를 걸어 들은 내용이다. 실제 이 처장은 운전 중이라면서도 모든 질문에 답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후 식약처장 취임과 업무보고 청취, 국회 상임위 출석, 모친상 등이 이어지는 일정을 감안, 전화통화를 자제했었다. 기자는 최근에 들어서야 이 처장에게 전화를 했다. 지난달 25일이었다. 이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야당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한 2개 제약사 사외이사를 역임한 경력과 최근 3년 동안 이 처장이 연구용역을 수주한 55건 중 제약사로부터 받은 용역이 43건, 금액 기준 65억원 중 35억원 부분에 대한 질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통화는 됐지만 이 처장 목소리는 몇 주 전과 다소 달랐다. 물론 기자의 주관적 느낌이 작용했을 수 있다. 이 처장은 식약처 대변인과 통화하라고 했다. 기자는 이 처장의 사외이사 경력과 연구용역 부분을 질의하며 대변인과 설전을 벌였다. 대변인은 장관이나 차관급도 사외이사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기자는 기업 사외이사를 한 사람은 양심이 있으면 장관이나 차관직을 고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기업의 사외이사가 회의에만 참석하고 대가를 챙겨가는 행태는 이제는 누가나 아는 상식이 됐다. 게다가 사외이사로 대가를 지불한 모 제약사가 기관으로부터 리베이트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그 기관 책임자가 어떻게 공정하게 행정과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지 기자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기에 35억원 연구용역비를 제공한 제약사도 마찬가지 사례로 본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런 경력이 있는 이 처장이 차관급인 식약처장을 수락했다는 사실이다. 사외이사를 10개 제약사를 하든, 연구용역비로 100억원을 받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학교수의 자유다. 하지만 국민 세금을 받는 차관급 고위공직자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식약처장은 다른 차관급과도 다르다.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사실상 장관급 대우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기자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 처장이 향후 공정하게 정책을 집행하는 지 다른 기자들과 공무원들이 꼼꼼하게 체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사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인사청문회에서 사생활 등을 논의하지 말자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고위직 공무원에 사생활이 있는지 여부부터 묻고 싶다. 현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은 과거 보건의료정책관으로 근무하면서 의사들이 파업을 추진할 당시 주말에도 출근해 열심히 일했다. 만약 사생활을 핑계로 주말에 출근하지 않았다면 복지부를 출입하는 국가정보원 조정관에 노출돼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다.  

이처럼 고위직 공무원은 출신 고등학교나 대학교, 재산 등 모든 것이 투명하게 노출된다. 고위직 정점인 장관이나 차관급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장관이나 차관은 사생활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통상 장관이나 차관 임명에 있어 능력이나 실력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기자는 능력의 경우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하고 도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복지부처럼 우수한 인력이 모여 있는 정부중앙부처에서 도덕성이 부족한 장관들은 취임부터 퇴임 시까지 줄곧 입길에 오를 수 있다. 실제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모 복지부 장관의 경우 부 유관기관 직원들이 힘들어 했다. 본부 직원들이 통화를 하면서 장관 욕만 해대니 정작 용건을 말하기 쉽지 않았다.  

이 처장의 경우 이중국적인 딸 등 사생활은 거론하지 않으려 한다. 불만은 많지만 대통령 인사권을 최대한 존중하겠다. 다만, 취임 직전 초심을 잃지 말고 퇴임 때까지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기자들 전화는 대변인이 받으면 된다. 그 시간에 이 처장은 오직 국민만 생각했으면 한다. 본인에게 사외이사 월급을 주거나 연구용역비를 준 제약사는 최소한 처장 임기 동안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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