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과액 불산입 한도 범위 두고 ‘쟁송’···86억 증여세 취소 판결
고 함태호 명예회장, 오뚜기재단·은혜교회·밀알재단·미술관에 주식 남겨
法 “성실공익법인 보유분 계산 시 일반공익법인 절반만 적용해야”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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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2016년 9월 별세)이 생전에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에 증여한 주식에 증여세를 부과한 세무당국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박양준 부장판사)는 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이 세무당국을 상대로 “86억원대 증여세를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을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세무당국이 2016년 9월 은혜교회에 부과한 증여세 73억5000여만원, 2018년 12월 밀알미술관에 부과한 증여세 13억4000여만원을 각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함 명예회장은 1996년 오뚜기재단에 오뚜기 주식 17만주(내국법인의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4.94%)를 출연하고, 2015년 11월 자신이 보유하던 오뚜기 주식 60여만주(17.46%) 중 1만7000주(0.49%)를 은혜교회에, 3000주(0.09%)를 밀알미술관에, 1만주(0.29%)를 밀알재단에 각각 증여했다. 세 단체는 세법상 ‘공익법인등’에 해당한다. 세 공익법인이 증여받은 주식 총수는 3만주(1만7000주+3000주+1만주)다.

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 밀알재단은 2016년 2월 증여받은 주식 3만주의 1주당 가액을 108만여원으로 산정하고, 밀알미술관 일부 주식 2000주(0.06%)를 제외한 나머지 2만8000주의 주식들이 ‘내국법인의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5%를 초과해 주식을 출연 받은 경우에 해당한다’며 각 증여세를 자진신고했다.

옛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등이 출연받은 재산의 가액은 증여세 부과 대상이 아니지만, 내국법인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 5% 이상을 증여받은 경우 증여세가 부과된다. 성실공익법인의 경우 이 한도는 10%로 늘어난다(2017년 12월 법 개정으로 20%까지 확대). 함 명예회장이 오뚜기재단에 출연한 주식 17만주(4.94%)와 밀알미술관에 증여한 일부 주식 3000주(0.06%)를 합하면 5%가 된다.

세무당국은 2016년 9월 2만8000주 주식에 대해 1주당 가격을 소폭 감액하는 것 외에는 은혜교회 등이 자진신고한 내역과 동일하게 증여세를 결정·고지했다. 하지만 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은 함 명예회장이 사회 환원과 공익사업 지원이라는 순수한 목적으로 주식을 증여했다면서 과세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 소 제기 후 오뚜기재단과 밀알재단은 ‘성실공익법인’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성실공익법인을 포함한 다수의 공익법인에 동일한 내국법인 주식을 출연한 경우 비과세 초과부분을 어떻게 계산할지에 대한 판단에서 갈렸다. 법원은 성실공익법인 보유 주식을 계산할때 일반공익법인 보유 주식의 절반 수치를 적용해 합산해야 적법하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면서 성실공익법인인 오뚜기재단과 밀알재단, 공익법인인 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이 보유한 주식의 총수를 합하더라도 비과세 초과부분 합계가 과세 대상인 5%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즉 오뚜기재단 4.94%, 밀알재단 0.29%는 성실공익법인이기 때문에 그 비율을 절반만 적용하면 합계가 2.615%이고, 여기에 일반공익법인 은혜교회 0.49, 밀알미술관 0.09%를 합해도 비과세 초과부분 주식합계가 3.195%에 그쳐 불산입 한도인 5% 내에 있다는 결론이다.

/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재판부는 “성실공익법인 보유 주식을 일반공익법인 보유 주식에 비해 절반만 평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일반공익법인과 성실공익법인의 불산입 한도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합산할 경우 두 공익법인 사이에 납득할 수 없는 차별의 결과가 초래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사회 환원과 공익사업 지원이라는 망인의 순수한 목적에서 이뤄진 주식 증여가 지배수단으로 이용될 우려가 없다. (이 주식은) 오뚜기 지배구조와도 무관해 합한적·합목적적 관점에서 비과세 대상이다’라는 원고 측 주장은 배척했다.

재판부는 “비과세 초과부분을 과세가액에 산입하는지 여부가 출연자의 목적, 의도 및 동기 등에 영향을 받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이나 조세평등주의 관점 및 조세법의 엄격해석 원칙에 비춰볼 때 바람직하지 않고, 주관적 기준으로 입법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는 어렵다”면서 “더구나 공익법인에 해당하는 원고들이 오뚜기의 지배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점까지 고려하면, 출연자의 선의 등을 고려해 비과세 대상이라는 원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재판부는 증여자의 선의를 고려해 비과세 해야한다라는 원고 측 주장을 배척했지만, 기부문화 융성 및 조세회피를 방지해야 한다는 입법목적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성실공익법인 비율을 계산하는 방법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고, 피고 측도 이 부분을 문제 삼을 것으로 본다. 상급심에서 판단이 달라질 여지도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2016년 9월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한 함 명예회장은 47년간 식품산업의 발전을 위해 살아온 국내 식품산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69년 5월, 오뚜기를 창립하고 첫 제품으로 ‘카레’를 출시해 대중화시켰다. 1971년 케첩을 처음 생산했고, 이듬해에는 마요네즈를 국내 최초로 상품화했다. 함 명예회장은 지난 2005년 해외 신시장 개척 공로를 인정 받아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국민 식생활 개선을 통해 국가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그의 선행도 널리 알려져있다. 함 명예회장은 1992년 7월부터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약 5000명을 도왔다. 또 장학사업과 학술연구 지원사업을 위해 1996년에 오뚜기재단을 설립하고,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장미란 전 역도 국가대표 선수를 지원한 익명의 기업가도 함 명예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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