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진들 상당수 ‘정주영 세대’, 체질 개선 위한 특단조치 해석
“품질·실적 개선” 한목소리···이면엔 경쟁사·비전문가 선임에 우려도

왼쪽부터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배재훈 현대상선 사장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왼쪽부터)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배재훈 현대상선 사장.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우리 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긴 ‘현대’ 브랜드에 고(故) 정주영 창업주의 색채가 점차 옅어지는 모양새다. ‘현대’라는 브랜드를 공유하는 대부분의 업체 고위직의 경우 고 정 창업주 시대를 거친 인물들이 대다수인데, 최근 외부수혈을 바탕으로 체질 개선에 나선 업체가 있어 주목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과 배재훈 현대상선 사장을 들 수 있다. 이들 두 사람은 지난달 주주총회를 통해 정식으로 대표이사에 올랐다. 안 사장의 경우 경쟁사인 포스코 출신이며, 배 사장은 LG그룹 출신으로 해운업계 전력이 전무하다.

안동일 사장은 1984년 포스코에 입사한 뒤 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경쟁사 출신임에도 현대자동차그룹은 ‘생산·기술부문 담당사장’이란 직책을 신설하고 그를 영입한데 이어, 그간 ‘2인 대표이사’ 체계를 유지했던 현대제철의 단독 대표직까지 부여했다.

주총을 통해 주주들로부터도 인정받은 안 사장은 그간 현대제철 대표들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며 제품력 향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간 현대제철 대표는 경영총괄을 맡은 부회장과 재무 등을 책임지는 사장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히 이들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사옥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주요 현안들을 처리했다.

현재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안 사장은 당진제철소에 사무실을 내고 현장에서 근무 중이다. 기존 대표들과는 사뭇 다른 근무 형태다. 비록 사내이사엔 이름을 올리진 않았으나, 경영총괄을 맡고 있는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이 본사를 지키며 제품력 개발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 안 사장을 지원하는 모양새다.

기술력 향상을 위해서는 당진제철소장인 박종성 부사장이 안 사장과 호흡을 맞춘다. 그룹사 출신 임원들도 대거 등용됐다. 현대차 출신의 서강현 전무가 재경본부장(CFO)를 맡은 가운데 오늘(1일)자로 단행된 조직개편을 통해 기아차 송교만 전무와 현대차 출신의 김영빈 상무가 각각 제철지원사업부장·경영전략실장에 각각 임명됐다.

특히 송 전무는 노무지원사업부장 출신으로 지난해 4분기 파업에 따른 실적감소를 겪은 바 있는 현대제철을 위한 맞춤형 인사라는 후문이다. 업계에서는 임원인사와 주총, 그리고 이번 조직개편 등을 통해 현대제철이 각 분야에 전문성을 두루 갖춘 경영진들이 포진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배재훈 신임 현대상선 사장은 ‘LG맨’ 출신이다. 주로 해외영업파트와 해외법인에 몸담았다. 2009년 12월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LG그룹의 물류계열사 범한판토스 대표직을 맡았다. 오랜 기간 해외법인에서 경력을 쌓아 온 만큼 물류분야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실적개선을 이끌며 2016년 1월까지 대표직을 수행했다.

산업은행은 법정관리 중인 현대상선의 신임 대표이사로 배 사장을 낙점하면서 “영업협상력, 글로벌 경영역량, 조직관리 능력 등이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배 사장이 내정됐을 때부터 다소 우려를 표했던 것도 사실이다. 해외네트워크가 강하고 경영능력 면에선 이견이 없었으나, 해운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상태서 최상의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배 사장은 임기보다 조기에 출근하며 현안을 보고받고 업계 이해도를 높이는데 주력했다는 게 회사 안팎의 전언이다. 또 지난달 27일 주총을 통해 정식으로 선임된 직후 취임사를 통해 임직원들에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2015년 2분기 이후 15분기 연속 적자인 영입이익 흑자전환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업무방해요소를 제거하고 자율성·책임감 부여를 통해 직원들에 동기를 부여하고 몰입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나은 성과를 창출하겠다”면서 “이제 한 배를 탔다. 희망찬 항해를 시작하자”고 차분하지만 강경한 어조로 향후 현대상선의 흑자전환을 위한 개혁과 변화를 예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임 유창근 사장이 해운업계에서만 3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이라며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던 유창근 사장도 현대상선의 정상화를 이끄는데 실패했기에 업계서 비전문가 출신인 배재훈 사장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다만, 마찬가지로 해운업계 비전문가로서 법정관리 주체인 산업은행의 생각은 달랐다”며 “현대상선 내부에 자리한 위기의식 부족이 더 큰 문제로 보고 배 사장과 한진해운 출신의 박진기 전무를 컨테이너영업총괄을 맡김으로서 리스크를 줄이고 혁신을 유도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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