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발표회에 후드 티셔츠·운동화 신고 나서는 유연한 사고방식
임직원 자율복장제도 안착···채용은 ‘수시’, 임원 직급도 축소 및 개편

소형 SUV ‘코나’ 신차발표회 당시 편안한 복장으로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던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 사진=현대자동차
소형 SUV ‘코나’ 신차발표회 당시 편안한 복장으로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 사진=현대자동차

‘생산 유니폼과 보수적 분위기의 남초(男超) 기업.’

과거 한 취업사이트가 조사한 ‘대학생이 생각하는 국내 주요 대기업’ 설문 결과다. 주인공은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건설 등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 온 그룹을 둘러싼 대학생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1년 실시된 이 설문조사는 근래까지 대학생들을 넘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 정체돼 온 그룹 이미지가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이다. 그룹 내부에선 “단기간 내 너무도 많은 것이 변했다”고 입을 모은다. 동시에 변화의 주역으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을 꼽는다.

변화의 물꼬는 이달 초부터 트이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은 4일부터 임직원 자율복장제도를 시행했다. 해당 제도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많은 기업들이 이미 도입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이목을 끌 수 있던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이 그간 상당히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도 빨랐다. 불과 지난달 말까지만 하더라도 직원들은 풀 정장을 착장했다. 하절기 일부 기간을 제외하곤 늘 넥타이도 매야 했다. 하지만 자율복장이 도입된 첫 날부터 바지 밑단 아래로 발목을 드러낸 남성 직원들이 속속 보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맨투맨 티셔츠와 후드 티셔츠까지 챙겨 입은 직원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선제적으로 시행된 다른 기업에서도 볼 수 없던 스타일이었다. IT(정보기술)기업들이 밀집한 판교에서나 볼법한 의상들이 그룹 본사 사옥이 있는 염곡사거리를 물들였다. 눈치를 보며 점잔을 빼던 직원들도 슬그머니 이 같은 대열에 합류하면서 불과 한 달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한 번 트인 물꼬는 또 다른 물길을 이끌었다. 복장에 이어 채용에도 변화를 줬다. 연례적으로 진행하던 공개채용에서 상시채용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신입사원을 상시적으로 채용하겠다는 정책은 10대 그룹 내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어 정기임원인사를 폐지하고 연중 수시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내달 1일부터는 임원 인사제도 또한 개편된다. 이사대우부터 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 등 6단계로 구성된 직급을 ‘상무-전무-부사장-사장’ 등으로 축소·개편한다. 기존 이사대우 및 이사는 상무가 된다. 이사진들 사이에서 ‘승진 아닌 승급’이란 농담이 나올 정도다. 올 9월부터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의 지급도 1~2개로 축소할 예정이다.

그룹 안팎에선 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가 가져온 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평소 신차 출시 행사장 등에서 청바지와 흰색 면 티셔츠만을 걸친 채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정 부회장이 그룹 전면에 나서면서 이 같은 DNA를 그룹에 이양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해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쏘나타 신차 발표회에 현대디자인센터장 이상엽 전무가 후드 티셔츠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것만 보더라도 변화하는 현대차그룹의 단면을 알 수 있다”며 “자유롭게 사고하고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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