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정식 개관···오동진 부관장 “사랑·연대·희망의 ‘전태일 정신’ 지금 젊은이들에 필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 항거한 전태일)

49년 전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염원을 담은 기념관이 평화시장 인근에 세워졌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다. 국내 최초의 노동자 기념관이다. 서울시는 이 곳을 ‘노동존중’ 상징 시설로 만들 계획이다.

전태일기념관은 전태일 분신 항거 49주년을 앞두고 오는 4월 중 정식 개관한다. 지금은 시민들에게 우선 개방하고 있다. 지상 6층 규모의 전태일기념관은 2층에 공연장, 3층에 전시관이 마련됐다. 4~6층은 노동허브와 서울노동권익센터 등이 들어선다.

3층 전시관에서는 당시 열악한 노동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태일 열사의 출생부터 평화시장에서 노동운동을 한 발자취를 담은 전시관은 1960~70년대 평화시장의 옷 만드는 공장의 모습도 그대로 재현했다. 노동자들이 1.5m 높이의 천장에서 쭈그리고 일해야 했던 현장이다.

전시관에는 전태일 열사가 사망한 후 어머니 이소선씨가 전태일의 꿈을 이어받아 청계피복노동조합 창립 등 노동 운동의 역사도 담았다. 전태일의 분신 항거가 노동자에 미친 영향과 각성 그로인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역사도 보여준다.

지난 22일 오동진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부관장은 기념관이 만들어진 취지에 대해 “전태일의 사랑·연대·희망의 정신은 2019년 현재의 젊은 노동자와 학생들에게 여전히 중요하다”며 “경제는 발전했으나 빈부격차는 커졌고 경쟁 심화로 이기주의가 만연됐다. 취업난, 비정규직으로 좌절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다. 전태일기념관을 통해 이들에게 전태일의 사랑, 연대, 희망의 정신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태일기념관은 서울시와 함께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에도 힘쓸 계획이다. 청년과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다. 전태일기념관은 서울시 교육청과 함께 이 공간에서 학생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해 나갈 계획이다. 방문 학생들이 기념관에서 전태일 다리까지 1.4㎞ 정도 청계천을 따라가며 해설사와 함께 서울의 변천사를 알아보고, 분신 자리 현장과 전태일 동상을 마주하며 50년 전 그날의 모습을 기억해보는 과정이다.

1960년대 전태일과 어린 시다(보조원)들은 하루 14시간 이상 일했다. 한 달에 휴일은 이틀뿐이었다. 생리 휴가는 있어본 일이 없었다. 이들은 1.5미터 높이 천장의 작업현장에서 쭈그리고 앉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했다. 공장 비성수기가 되면 이들은 대량 해고됐다. 시다들은 가정이 어려워 학교를 가지 못한 12~15살의 소녀들이었다. 햇볕도 없이 먼지를 마셨다. 직업병인 폐병에 걸리면 해고당했다. 당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영양실조, 소화불량, 호흡기질환, 안질 등에 시달렸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처참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동료들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직 ‘바보회’, ‘삼동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노동실태를 일일이 조사해 신문사와 근로감독관에 알렸다. 대통령에게 보내지는 못했지만 노동환경 개선과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탄원서도 썼다. 현실은 어려웠지만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졌다.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며 평화시장에서 분신 항거했다. 그 때,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 책도 함께 불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