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대형가맹점보다 열위에 놓여있어”
카드노조 “수수료 역진성 해소하라 판 벌려놓고 정부는 나몰라라”
금융위 “사적 계약에 당국이 일일이 관여할 수 없어”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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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와 카드수수료 협상에서 카드사들이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 향후 통신·대형할인점·항공사 등 다른 업계와 수수료 협상에서도 대형가맹점의 우월적 지위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강조한 카드수수료 ‘역진성 해소’ 가이드라인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형가맹점-카드업계 ‘갑을관계’…향후 협상 우려

14일 카드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던 카드사들이 모두 현대차의 조정안을 수용했다. 11일부터 현대차의 가맹 카드사 명단에서 제외됐던 신한·삼성·롯데카드 3사는 모두 조정안을 수용하겠다고 현대차 측에 통보했다. 신한카드는 지난 13일 협상을 타결했고 이날 삼성카드와 롯데카드도 현대차와 수수료율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카드사는 수수료율 조정의 첫 번째 테이블이었던 현대차와 협상에서 원하던 수수료율 인상을 끌어내지 못한 만큼 향후 다른 업계와 협상에서도 카드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버거울 것으로 예상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의 협상이 대형가맹점과 카드사 간 첫 협상 테이블이었던 만큼 향후 다른 업계와의 협상에서도 바로미터로 작용할 것”이라며 “현대차 사태가 선례로 자리 잡은 것 같아 앞으로 이어질 다른 업계와의 2차, 3차 협상 라운드가 우려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카드사들은 연매출 500억원을 초과하는 대형가맹점들에 수수료 인상을 통보하고 이달부터 새 수수료율을 본격 적용했다.

이에 SK텔레콤 등 통신사와 이마트 등 대형할인점은 카드사들에 공문을 보내 3월 1일부터 적용한 새 수수료율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대형가맹점과의 수수료율 줄다리기에서 카드사는 열위에 놓인 입장이다. 자동차를 비롯해 수수료 인상에 반발하는 주요 업종들이 대체로 독과점 체제로 대형가맹점이 카드사에 대해 협상력에서 우위를 지니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이들과 협상이 결렬될 경우 매출 및 점유율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구매력이 높은 대형가맹점과 카드사를 비교해보면 카드사가 상대적 열위에 있는 건 당연하다”며 “카드사 입장에선 대형가맹점이 큰 고객이라고 볼 수 있어 이들과 계약을 맺고 유지하기 위해 너도나도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카드노조 “금융당국, 역진성 해소하라 해놓고 사태 방관”

카드업계 내에선 지난해 카드수수료 개편안을 내놓으며 가맹점 간 카드수수료 ‘역진성 해소’를 강조한 정부가 정작 판을 벌여놓고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는 불만이 거세다.

지난 13일 카드산업 노동자를 대표하는 금융노동자 공동투쟁본부(이하 카드노조)은 금융위원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위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카드노조 관계자는 “지난 11월 정부는 카드수수료 개편안을 내놓으며 500억 이상 대형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을 전제로 중소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해 가맹점 간 역진성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며 “카드수수료 개편안으로 이번 사태에 불을 질러놓고는 정작 불은 우리 카드노동에게 끄라며 해결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11월 카드수수료 체계를 개편하면서 매출이 많은 대형가맹점일수록 수수료를 더 많이 부과하는 방식으로 수수료율 틀을 개편했다. 무이자 할부 등 각종 카드사 마케팅 혜택이 대형마트와 자동차 제조사 등 초대형 가맹점에 쏠려 있음에도 이들은 카드사보다 협상력이 우위에 있어 그동안 매출이 적은 중소가맹점에 비해 수수료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역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정부 기조에도 대형가맹점을 대상으로 수수료를 올리려던 카드사의 첫번째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초 취지인 역진성 해소가 요원해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사적 계약에 당국이 일일이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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