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안이와 같이 길을 걸어 다니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어머나, 주안이가 이렇게 많이 자랐구나!”

아빠가 레몬 향기를 맡고 있어요.
아빠가 레몬 향기를 맡고 있어요.

 

'과학’을 주제로 그린 브레인 스토밍.
'과학’을 주제로 그린 브레인 스토밍.

사람들이 주안이를 보고 많이 자랐다고 할 때마다 공감하지 못했다. 내 눈에 주안이는 아직도 어려 보여서 SBS <오! 마이 베이비>에 출연할 당시와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과거의 방송을 찾아 보았는데 “주안이가 이렇게 아기였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주안이와 내가 매일 보는 주안이는 정말 달랐다. 이렇게 새로운 눈으로 보고 느끼니 혼자 씩씩하게 걷고, 밥을 먹고, 심부름을 하거나 엄마 아빠를 도와주는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성장한 만큼 자기주장도 강해져 아빠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일이 늘어났다. 그 모습에 화가 날때도 있고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주안이와 공유하는 감정의 폭이 커진 동시에 그렇지 못한 것도 많아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누리는 행복중 하나가 주안이의 포옹이었다. “주안아, 안아줘”라고 말하면 주안이는 내 배 위로 올라와 목을 끌어안아줬다.

무민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무민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하지만 요즘엔 이 녀석이 “아빠는 왜 매일 안아달라고 부탁해?”라며 번거롭고 귀찮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길 때가 종종 있다. 대수롭지 않게 느꼈던 일인데, 과거 방송을 보고 아이의 성장을 체감하고 나니 이제 ‘아기 주안이’와 이별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 내 생각보다 주안이가 더 성장했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다. 아기 같던 목소리도 한층 성숙하게 변했고, 혀 짧은 소리가 났던 발음도 이젠 제법 정확하다. 또 땀 냄새가 섞여 이젠 제법 사내아이의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내가 생각했던 아기 주안이와는 거리가 있었다.

무민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무민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쑥 커버린 주안이를 보면서 아빠한테 엉겨붙던 아기 주안이를 그리워하는 나에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사건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 신경 치료를 했던 앞니에 영구치가 나오면서 잇몸에 고름이 생겨 치과를 찾았을 때다. 더 이상 충치가 생기지 않길 바라면서 매일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양치를 했던 주안이는 나름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발치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자신 있게 치과를 찾았던 주안이는 거의 흔들리지 않는 치아를 뽑는 게 무서웠고 다음에 이를 뽑자고 나를 설득하더니 이내 내 품 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무서워서 우는 아들을 안고 달래는데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론 사랑스러운 아기 주안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주안이는 무사히 발치를 끝내고 10분 정도 울더니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

눈 깜짝할 새에 어린이가 된 주안.<br>
눈 깜짝할 새에 어린이가 된 주안.

 

그리곤 할아버지, 할머니, 매니저 삼촌, 길을 가다 만난 사람들에게 이를 뽑았다고 뿌듯하게 이야기했다. 그모습을 보니 어쩌면 지금의 주안이가 가장 귀엽고 많은 기쁨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의 모습과 순수하면서 씩씩한 어린이가 된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얼마의 시간이 흘러 주안이가 성장하면 또 다른 변화가 생기겠지만, 그때까지 아들의 사랑스러움을 만끽해야겠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

 

우먼센스 2019년 2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에디터 김지은 손준호

사진 서울문화사 DB, 손준호(@baritong)·김소현(@sofiakim1112)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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