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독립운동과 기업인]② “교육이 민족의 미래다”···교보생명 설립자 ‘대산’ 신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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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독립운동과 기업인]② “교육이 민족의 미래다”···교보생명 설립자 ‘대산’ 신용호
  • 이용우 기자(ywl@sisajournal-e.com)
  • 승인 2019.03.1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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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에 중국서 사업 시작하며 독립운동 자금 지원···아버지·형들 모두 항일운동 동참
이육사에게 ‘민족자본가’ 영감 받아···교보생명·교보문고 통해 ‘교육 진흥’ 이뤘다는 평가

2019년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일본제국주의 억압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지 100년이 흘렀지만 아직 그 정신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생생히 흐르고 있다. 한민족의 독립운동사(史)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 중에는 기업인 출신들도 많았다. 민족자본가로 통하는 이들은 독립운동의 전면에 나서거나 물질적 재원을 지원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들이 직접 창립하거나 기틀을 마련한 기업들은 지금도 대한민국 경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사저널e는 창간 4주년을 맞아 100년 전 독립운동의 역사 속에 족적을 남긴 기업인들의 면면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 개업식에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대산 신용호. / 사진=교보생명
지난 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 개업식에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설립자. / 사진=교보생명

독립운동에 공헌한 기업들이 주목받는 가운데 교보생명도 그중 한 기업이다. 교보생명 설립자 대산(大山) 신용호 선생(1917~2003년)이 독립 운동가들을 지원한 대표적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대산 신용호뿐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가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신예범, 형들인 신용국, 신용원 모두 항일운동에 나선 인물이다. 대산 신용호는 해방 이후에도 국가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를 설립, 국가 교육 진흥에 이바지했다. 
 
대산은 6남 중 다섯째 아들이다. 집안의 항일 운동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 신예범은 항일운동을 했기 때문에 일 년에 두어 번 볼 정도였다. 신예범은 일본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농민 수탈에 항거해 일어난 민란의 중심에서 활동했고, 이를 이유로 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당시 일본에 요주 인물로 찍힌 신예범은 더 이상 마을에 정착할 수 없었고 결국 생업에 종사하지 못하게 되면서 전남 일대를 떠돌아야 했다. 예비검속에도 자주 걸려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잦았다. 이로 인해 대산은 어릴 적부터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아버지 신예범에 이어 형들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독립운동에 나섰다. 큰형 신용국은 일제 수탈에 항거한 영암 농민항일운동에 참여하며 세 번에 걸쳐 옥살이를 해야 했다.  당시 신용국의 항일운동이 유명해 ‘일본인이 싫어하는 일만 골라 하는 부자간’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이런 공훈을 인정 받아 그는 훗날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추서 받았다. 셋째 형 신용원도 1936년 일본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인이 됐지만 유학생들과 항일음악가로 활동해 일본의 탄압을 받았다. 결국 제대로 된 음악 활동뿐 아니라 취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대산은 가난으로 인해 어릴 적부터 폐병을 앓는 등 병마에 시달렸다. 병이 나은 그는 늦은 학업에 매진하기 위해 동생의 책을 빌리는 등의 방법으로 독학을 시작했다. 천일 독서를 통해 100권의 책을 정독하고, 시장·부두·관공서를 둘러보는 현장학습으로 세상을 깨우친 것은 이미 유명하다.

1987년 7월 천안 계성원(교보생명 연수원)에서 열린‘제23차 세계보험협회(IIS) 연차총회’에서 세계보험리더들과 환담하는 대산 신용호(오른쪽 두번째). / 사진=교보생명
1987년 7월 천안 계성원(교보생명 연수원)에서 열린‘제23차 세계보험협회(IIS) 연차총회’에서 세계보험리더들과 환담하는 대산 신용호(오른쪽 두번째). / 사진=교보생명

스무 살에 중국으로 넘어간 대산은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많은 독립운동가를 만나 도움을 주었다. 특히 독립사상가 신갑범 선생의 추천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던 이육사를 만나면서 국가와 민족에 눈을 떴다.

‘아Q정전’의 작가 루쉰의 영향을 받은 이육사는 경술국치 이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상세히 거론하며, 대산에게 사업의 중요성과 사업가의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에 열변을 토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산이 반드시 큰 사업가가 돼 독립운동자금을 내놓겠다고 하자, 이육사는 “대사업가가 돼 헐벗은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자본가가 되길 바라네”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대산은 1940년 베이징에 ‘북일공사’를 설립, 곡물 유통업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북일공사는 당시 중국의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공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대산은 이때 얻은 이익을 독립운동자금에 지원했다. 

대산은 이때의 경험으로 민족자본가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또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이라는 교보생명 창립이념도 이육사 등 독립운동가와 교류하며 조국을 위해 기업가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숙고한 결과다. 이에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교보생명의 전신인 교육보험을 설립하게 된다. 이후 교보문고, 교보교육재단, 대산문화재단이 만들어졌다. 

특히 보험사업을 시작했던 1950년 중후반은 국민 100중 99명이 끼니만을 걱정하는 시절이었다. 보험에 가입한다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다. 생명보험은 50년이 지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도 강했다. 하지만 대산은 다르게 생각했다. 생명보험업이 국가에 이바지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교육보험’이 시작할 때 발기취지서에는 이런 글이 적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7일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독립운동 당시 태극기를 재현한 대형 태극기가 내걸렸다. / 사진=교보생명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독립운동 당시 태극기를 재현한 대형 태극기가 내걸렸다. / 사진=교보생명

“평소의 영세한 부담으로 인간생활에 있어 필연적이며 또한 우발적인 장래의 경제적 손실 내지 불행한 사고에 대비하는 한편, 막대하게 축적하게 되는 책임준비금이 형성한 자산을 유효적절하게 운용함으로써 국가경제정책에 조력하게 됨은 선진국가에서 능히 볼 수 있는 보험업적이며 오국(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선진국의 범례에 따라 건실한 보험제도를 실시,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통감한 오등 발기인은 문자 그대로 보험본질에 입각하여 또한 우리 국민생활에 적합한 종류를 점차적으로 발안하여 건실하고도 합리적인 경영으로써 보험제도의 혜택을 보급하는 동시에, 미약한 우리 보험계 발전에 조력하고 사계의 선봉적 역할을 완수하고자 본 사업을 발기하는 바이다.”

국민 생활에 적합하고 필수적인 보험업을 시작하겠다는 뜻을 담은 발기취지서였다. 상호 ‘교육보험’도 대산에게는 한국인을 움직일 상호라고 여겨졌다. 생명보험사업을 수행하는 회사의 상호가 반드시 ‘생명보험’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당국의 요구와 보험업법의 조항에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신념 하나로 ‘대한교육보험’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사업을 시작했다. 

대산 신용호 선생 프로필 / 표=이다인 디자이너

사업을 만들어낸 보험 상품 중에는 상호와 이름이 같은 ‘교육보험’이 있었다. 이 보험 상품은 피보험자가 만기 때까지 살았을 경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해 진학자금과 생활독립자금에 사용토록 돕는 상품이다. 피보험자가 죽으면 사망급여금을 지급했다. 이 상품은 1973년 1월까지 13년 동안 판매됐고 전체 보험 계약액의 59%를 차지했다. 교육열이 높은 국민의 요구에 맞는 상품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980년 설립한 교보문고도 대산의 철학이 반영된 문화사업이다. 교보문고가 광화문 교보빌딩 지하에 들어선 것도 대산의 아이디어였다. 황금자리로 여겨지는 교보빌딩 지하에 서점을 만든다는 생각에 모두 반대했지만, 대산은 수익 사업을 포기해서라도 시민들과 가까운 자리에 책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라에 독서열풍을 일으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교보문고를 설립한 것이다. 

결국 지금의 교보문고는 연간 5000만명이 찾는 ‘국민책방’이 됐다. 외국인들도 거쳐 가는 대표적 문화 명소다. 이를 인정해 정부에서는 지난 1996년 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교보문고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유명한 문구인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글귀는 대산의 대표적 독서철학이다. 

대산은 2003년 9월19일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86세였다. 영안실에는 영장과 함께 금관문화훈장이 놓였다. 평생에 그는 기업가가 돈만 버는 것만이 제일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이 기업가의 진정한 인품임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이용우 기자
금융투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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