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딸린 12층 아파트 등장, 고층아파트 시대 열어
시범·공작 등 다수 단지 ‘신탁’ 방식 재건축 사업 추진
서울시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막혀 속도 못내

여의도 일대 재건축 단지 재건축 추진 현황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대한민국 첫 신도시로 계획됐던 여의도가 부활을 위한 잰걸음을 내고 있다. 준공 40~50년차를 맞이한 아파트 단지들이 재건축을 준비 중이다. 뛰어난 입지 갖춘 여의도는 개발이 완료되면 용산과 함께 신흥 부촌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다만 현재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발목을 잡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한민국 최초 신도시…고층 아파트 시대 열어

여의도는 대한민국 최초로 신도시로 계획된 도시다. 박정희 정부 시절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김현옥 서울시장은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신시가지 개발을 목적으로 여의도 개발계획을 세웠다. 김 시장은 밤섬을 폭파해 얻은 돌과 자갈로 제방을 쌓아 모래벌판이던 여의도를 택지로 조성했다.

당시 김 시장은 왼쪽에는 국회·외교공관을 오른쪽에는 대법원·시청·시의회 등을 각각 배치해 우리나라 정치·외교·행정의 중심지로 삼을 예정이었다. 이 계획은 건축가 김수근 씨가 참여하면서 본격화 됐다. 하지만 김 시장이 오우아파트 붕괴 사고로 경질되면서 여의도 개발 계획은 유야무야 됐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재정난을 이유로 주거·상업·업무지역 등 토지용도 구분 없이 희망자에게 여의도 일대 토지를 매각했다. 아파트 부지의 경우 상업지역에서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이 이뤄져야 하지만 개발 초기 이러한 행정절차는 생략됐다. 그 결과 여의도는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함께 공존하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2층 높이로 지어진 시범아파트는 대한민국에 고층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단지 내에는 엘리베이터, 중앙 스팀난방 등 신기술이 적용됐다. 사진은 1971년 여의도 시범아파트 준공 당시 모습 / 사진=e영상 역사관

여의도 첫 개발 포문은 아파트가 열었다. 당시 서울시는 조성한 택지가 팔리지 않자 시범적으로 아파트 단지를 지어 보급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이에 1971년 당초 대법원과 시청이 들어오려던 자리에 ‘시범아파트’(1584가구)가 들어섰다. 아파트 개발을 성공시키기 위해 서울시는 시범아파트에 심혈을 기울였다.

시범아파트는 당시 최고층인 12층 높이로 지어졌다. 이때부터 민간업체들은 12~15층 높이의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또 시범아파트에는 아파트 사장 처음으로 동 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으며 중앙 스팀난방 등 신기술이 적용됐다. 상가, 학교(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우체국, 은행, 파출소, 동사무소 등도 통합적으로 배치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아파트의 등장에 분양은 성공적이었다.

시범아파트가 인기를 끌자 민간업체들도 너나할 것 없이 여의도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여의도에는 1974년 삼익주택이 지은 삼익아파트를 기점으로 한양아파트, 목화아파트, 공작아파트, 대교아파트, 삼부아파트, 진주아파트 등이 줄지어 들어섰다.

◇다수 단지, 신탁 재건축 추진…서울시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발목 잡혀

준공 40~50년차를 맞이한 여의도 아파트 각 단지들은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거나 논의 중에 있다. 여의도 재건축 사업은 시범을 포함한 대교·공작·수정·진주 등 다수 단지가 신탁 방식을 선택한 것이 특징이다. 신탁은 일반 재건축과 달리 추진위원회와 조합 구성 등의 단계를 생략해 사업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

공작·한양·대교 등은 KB부동산신탁과 업무협약(MOU)을 맺었고 수정·광장·시범 등은 한국자산신탁(한자신)과 MOU를 체결했다. 시범의 경우 MOU에서 한 발 나아가 한자신을 정식 사업시행사로 선정했다. 하지만 속도를 내는 듯 했던 여의도 재건축 사업은 서울시가 추진 중인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여의도를 국제금융중심지로 개발하는 ‘마스터플랜’과 단지들을 함께 개발하는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등을 준비 중이다. 이에 각 단지의 정비계획안이 마스터플랜·지구단위계획 가이드라인과 부합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당초 서울시는 개별 단지가 사업추진의 가이드라인을 삼을 수 있는 지구단위계획 틀을 마련해 이달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부동산 시장 상황을 충분히 검토한 뒤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그 시기는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신탁 방식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됐던 여의도 재건축 사업은 서울시의 ‘마스터플랜’에 막혀 지체된 상황이다. 사진은 여의도 ‘광장아파트’ 전경 / 사진=길해성 기자

현재 단지들은 서울시의 밑그림이 무엇인지 몰라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범아파트는 기존 용적률 230%를 법정 상한인 300%로 늘리는 정비계획 변경안을 지난해 6월과 9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공작아파트 역시 주택재건축 정비계획 수립과 정비구역 지정안 심의가 보류됐다. 나머지 단지 역시 도계위 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여의도 재건축 사업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아직 발표도 되지 않은 마스터플랜을 이유로 한창 진행 중이던 재건축 사업을 막는 것은 문제”라며 “건물 노후화로 인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고, 재산권을 침해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올 상반기 내에는 마스터플랜과 지구단위계획의 구상들을 발표한다는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날짜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면서 주민들의 재건축사업 추진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주민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국민청원을 통한 여론 활동을 하는 등 단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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