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시민대책위 “발전소 업무 현장 여전히 위험···2인1조 위한 증원했지만 현장 위험성에 하루 만에 퇴사”
진상규명위 훈령 두고도 시민대책위·법제처 간 해석 차이···발족도 못해

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는 12일 오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사진=이준영 기자
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는 12일 오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사진=이준영 기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고(故) 김용균 사망 사고 대책을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났으나 대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논의는 시작조차 못했다. 김용균 사망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진상규명위원회도 아직 꾸려지지 않았다. 발전소의 업무 현장은 여전히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는 12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현재 당정 대책의 진행 상황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24)가 석탄운송설비에서 운전 업무를 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그동안 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사고 58건이 발생해 하청 노동자 12명이 죽었다.

이에 지난 2월 5일 당정은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찾아 개선해 재발을 막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또 발전소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는 공공기관으로 정규직 전환을 조속히 완료하겠다고 했다. 전환방식, 임금산정, 근로조건 등 구체적 사항은 발전 5사의 노·사·전 통합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기로 했다. 발전소 경상정비 분야도 노·사·전 통합협의체를 구성해 근로자 처우와 정규직화 여부 등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도 석탄발전소 작업현장에서 이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2인 1조에 따른 적정인원 충원을 2월중 완료하겠다고 했다. 현행 석탄발전 설비·시설에 대해 선진사례를 참고해 설비보강 등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에 김용균씨의 유가족과 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사고 후 두 달 만에 용균씨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대책 발표 후 한 달이 넘게 지났으나 이러한 대책 대부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우선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논의는 시작조차 못했다. 발전소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는 노·사·전 통합협의체 구성 논의조차 못했다.

당정 대책이 나오기 약 2주 전인 지난 1월 23일 발전5사는 통합 노사전문가 협의기구 구성을 위한 근로자대표단 10명을 구성했다. 당시 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발전5사에 공문을 보내 정부와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해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대책 결과에 따라 통합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발전5사는 이러한 제안을 거부하고 노동자 대표 10명을 선정했다.

당정의 대책 발표 후 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근로자 대표단 재구성을 하자고 발전사에 공문을 보냈으나 답변이 없었다. 당정 대책 발표 후 한 달이 지났지만 전체 회의를 소집하지 않고 있다.

12일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통상적으로 근로자 대표를 선정하는 과정은 공공기관이 회의 일정을 공지한 후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라나 재구성을 위한 회의는 노동자들이 알아서 하라며 회의를 소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선 시민대책위 상황실장(민주노총 조직국장)은 “공공기관이 회의를 잡지 않으면 사실상 노사전 협의체를 위한 근로자 대표단 재구성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발전소 경상정비 부문도 당정은 지난 2월 노사전 협의체를 즉시 구성키로 했다. 이에 시민대책위 등이 발전5사에 대해 경상정비 노사전 협의체 구성을 위한 세부 일정을 통보해달라고 발전5사에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답변이 없는 상황이다.

김용균 사망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진상규명위원회도 아직 꾸려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위원회의 훈령 제정 과정에서 시민대책위 등과 법제처 간에 이견 때문이다. 현재는 이를 조정 중이다.

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은 훈령에 진상규명위원회의 목적을 ‘석탄‧화력발전소와 관련한 노동안전보건 정책 수립에 관한 국무총리에게 권고하기 위해’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법제처는 그 목적을 ‘석탄화력발전소와 관련한 산업안전보건 정책 수립에 관한 국무총리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 목적의 적극성 부분에서 입장 차이가 있다.

진상규명위원회의 정책수립 범위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다. 시민대책위는 ‘석탄‧화력발전소와 관련한 노동안전보건 정책 수립’을 정책수립 범위로 제안했다. 발전소의 범위를 석탄화력발전소 이외 발전소로 넓히고 전반적 노동 관련 문제로 주제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반면 법제처는 정책수립 범위에 대해 ‘석탄화력발전소와 관련한 산업안전보건 정책 수립’으로 주장한다. 정책수립 범위에 대해 대상 발전소를 석탄화력발전소로 한정하고 산업안전분야로 제한했다.

진상규명위원회 회의의 유족 참관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르다. 시민대책위는 유족이 모든 회의에 참관하도록 훈령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제처는 ‘위원장이 특별한 지장이 없는 한 유족 참관을 허용’하도록 했다. 특별한 지장이 있는 경우 유족 참관이 불가능하도록 단서를 달고 위원장 허락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에 시민대책위는 “유족에 대한 결례다”고 말했다.

발전소 업무 현장의 위험성도 여전히 개선이 안 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 4일 김용균 씨가 숨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설비에 끼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2인1조 근무로 옆에 있던 동료가 풀코드(비상정지장치)를 당겨 설비운영을 멈춰 목숨을 건졌다.

박준선 실장은 “지난 4일 사고에 대해 2인1조 작업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언론에 알려졌다. 그러나 작업할 수 있는 구조가 확보되고 기계에 끼는 사고 자체가 발생되지 않도록 근본 개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석 한국발전기술 태안지회장은 “발전소의 환경운전 쪽에서는 2인 1조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현장에 환경운전원이 2명 있는데 현장에 나갈 경우 제어원이 현장까지 같이 간다. 그러면 제어실은 아무도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발전사는 2인 1조 근무를 위한 충원을 위해 1차로 뽑고 나머지는 2차를 통해 공공기관 전환 후 뽑는다고 했다”며 “그러나 신입직원이 오면 안전교육에 3개월이 걸린다. 게다가 공공기관 전환 시점까지 몇 개월이 더 걸린다. 그 때까지 2인 1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즉시 인원 충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인력 충원을 하고 있지만 현장의 위험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어 신입 직원들이 하루 만에 일을 그만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씨는 “정부와 대통령이 약속한 진상규명위원회와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진행이 안 돼 답답하다. 즉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정부와 서부발전관계자에게 묻고 싶다. 얼른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