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 문제제기 해놓고 후속 조치 더뎌···“정부 차원 진상조사도 필요”
외교부, '강제 연행' 인정 여부 공개 소송 패소에 항소···위안부 합의 헌법소원에 각하 의견서 제출도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 집 정면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동상. / 사진=이준영 기자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 집 정면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동상. / 사진=이준영 기자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우리들이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는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우리를 강제로 위안부로 끌고 갔는데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가 가만히 있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92세)

“살아있는 동안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90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및 학계는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박근혜 전 정부가 합의한 2015년 말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가 피해자 중심이 아니였음에도 문재인 정부가 문제 해결을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외교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헌법소원 재판에 대해 피해자들이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고,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강제 연행을 인정했는지 여부를 공개하라는 소송의 1심 패소에도 항소한 점을 지적했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의 일본군에 의한 강제동원과 전쟁범죄 인정, 법적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등으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피해자 중심의 진정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서울 외교부 청사에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했다.

당시 위안부 합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기시다 외무상은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을 출연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심적 상처 치유 사업을 하는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일본이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인정했는지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따른 전쟁범죄 인정과 법적 배상 차원도 아니었다. 이는 모두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진정한 사과와 배상의 조건과 어긋난다.

당시 기시다 외무상은 공동회견 후 일본 취재진 대상 브리핑에서 “법적입장은 (최종 해결됐다)는 과거와 아무런 변함이 없다”며 일본 정부 예산 출연에 대해서도 “배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도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인 2016년 1월 1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서 “이제까지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 위안부 모집은 군의 요청을 받은 사업자가 주로 했다”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전쟁범죄 인정이 아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탄핵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2017년 12월 27일 한일위안부 합의 검토 TF(태스크포스)는 보고서를 통해 한일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와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결론 내렸다. 또 국내외 소녀상, 위안부 표현, 위안부 관련 단체 설득 등 비공개 부분이 있었다며 한일 간 비공개 합의의 존재를 인정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월 21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은 허가를 취소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더 이상의 실질적 진척은 없었다.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재협상이나 향후 처리 방침에 대해서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하는 진정한 사과인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전쟁범죄 인정, 법적 배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 않다. 정부 차원의 위안부 문제 진상조사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성희 정의기억연대 인권연대처장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이전 정부에서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일본은 이 합의들로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이라며 “피해자 할머니들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전으로 되돌려 달라고 한다. 이 합의 때문에 진정한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오 처장은 “화해치유재단 해산 과정이 진행 중인데 이것도 신속히 해산시켜야 한다. 피해자들과 가족분들은 일본 정부가 출연하 10억엔도 일본 정부에 빨리 반환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도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명시적으로 위안부 합의가 무효라고 주장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화해치유재단 해산 절차 진행, 10억엔 반환 등 실질적으로 무효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부가 이 절차들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위안부문제 진상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오 처장은 “정부 차원의 위안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에 위안부 관련 자료를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도록 국제사회의 여론 압박도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이 같은 일들을 해 나가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체계적 로드맵을 만들어 실행해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정부가 움직여야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실질적 진전이 이뤄진다”며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으면 결말을 지어야 한다. 피해자 문제 해결과 관련해 피해자 의견을 모두 수용할지, 일본 정부가 수용 가능한 부분으로 할지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결과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외교부, 위안부 합의 헌법소원에 각하 의견서···'강제 연행' 인정 여부 공개 소송 패소에 항소도

특히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문제 제기한 여러 소송에서 보인 외교부의 행태도 지적했다.

외교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헌법소원 재판에 대해 피해자들이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고,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강제 연행을 인정했는지 여부를 공개하라는 소송의 1심 패소에도 항소하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2016년 3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대리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고 피해자 당사자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외교부는 2018년 6월 위안부 합의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의견서를 냈다. 당시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법적 효력이 있는 조약이 아니라 외교적 합의이기에 국가기관의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외교 당국자의 정치적 선언으로 개별 배상청구권 등 법적 권리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도 들었다.

이에 정의기억연대는 “2011년 헌법재판소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해 한국 정부가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의 핵심은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의 인정을 넘어 배상청구권 실현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라는 것”이라며 “그러나 외교부는 이러한 국가 의무를 무참하게 만든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가 법적효력이 없는 정치 외교적 합의이므로 피해자들에 대한 기본권 침해가 없는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더구나 지난 28년간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일본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이라는 요구는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국가의 외교적 행위로 더욱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강제 연행을 인정했는지 여부를 공개하라는 소송에서 1심 패소에도 항소하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도 하다. 당시 합의안에는 회담 내용 중 일본 정부의 강제 연행 인정 여부, 군의 관여 등이 담긴 부분이 비공개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한일 위안부 합의 공동 발표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합의 문서를 공개하라며 정보공개소송을 했다.

소송 공개 대상은 일본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의 사실 인정 문제, 군의 관여 용어 선택의 의미 등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 사실 인정이 있었는지 여부는 중요하다. 송기호 변호사는 “만약 합의에 일본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 사실 인정이 없었다면 이는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지 않은 합의를 의미한다”며 “즉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인정하지 않은 합의이기에 합의 무효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반면 강제 연행 사실을 합의에서 인정했다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2017년 1월 1심은 “외교 분야 특수성을 고려해도 정보의 비공개로 보호되는 국가의 이익은 국민의 알권리보다 크지 않다고 할 것이다. 12·28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합의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이에 즉각 항소했다.

송 변호사는 “외교부의 항소는 잘못된 항소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 인정 여부가 위안부 합의에 들어갔는지는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와 연결된다”며 “외교 문서라는 보호막으로 비공개해선 안되는 것이다. 외교 문제 이전에 인권 문제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달 재판부가 선고를 하는데 외교부는 상고해선 안 된다. 소송을 낸 할머니분들이 대부분 90대 고령이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사법부와 민간, 국회차원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고 이에 기초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평화를 찾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도 이를 토대로 위안부 합의 실체를 규명하고 위안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간 외교관계로 인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이 희생되선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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