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의 중소 도시 루베(Roubaix). 다소 낯선 이 도시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손꼽힌 미술관이 있다.

사진=송민주
미술관이 되기 전이 수영장은 루베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사진=송민주

 

GLOBAL PARIS

 

 

박물관 ‘라 피신느(La Piscine)’는 말 그대로 ‘수영장’이라는 뜻이다. 루베의 수영장은 평범한 수영장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5번째로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선정됐고, 한 해 평균 25만 명이 찾는 유럽에서도 이름 있는 문화 공간이다. 전시품에 피카소의 ‘양을 든 남자’를 비롯해 자코메티, 카미유 클로델 등 이름 있는 예술가의 작품들도 포함됐다.

루베 노동자들을 기리는 조각 작품들
루베 노동자들을 기리는 조각 작품들 사진=송민주

미술관이 되기 전 이 수영장은 루베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1930년대, 한창 산업화의 바람이 불고 루베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며 사회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개방된 운동 시설, 위생 시설을 제공하자는 뜻에서 루베 시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영장을 지어달라”며 오르세 박물관의 재건축을 맡았던 알베르 바에르(Albert Baert)에게 설계를 맡겼다. 모든 노동자가 근무를 마치면 이 수영장에 와서 수영을 한 뒤 샤워하고 집에 갈 수 있었고, 주변에는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담하고 예쁜 정원을 꾸몄다. 하지만 1970년대가 지나면서 프랑스 직물 산업은 점차 쇠락했고 수영장도 허름해져갔다. 결국 루베 시는 1985년, 안전상의 이유로 수영장 문을 닫았다.

 

과거의 여자 수영팀.
과거의 여자 수영팀.

이렇게 작은 도시의 자부심이었던 수영장은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져 잊힐 뻔했다. 단 두 사람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라 피신느’ 미술관은 없었을 것이다. 바로 현재의 미술관장 부뤼노 고디숑(Bruno Gaudichon)과 수영장 재건축을 맡은 장 폴 필리퐁(JeanPaul Philippon)이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초, 루베의 버려진 역사적 건물을 미술관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사실 수영장은 이 프로젝트의 초기에는 고려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리 둘러봐도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고, 거기라도 가보자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진흙 속에 묻힌 진주를 찾았다. 두 사람은 처음 수영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기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미술관이 되기 전이 수영장은 루베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사진=송민주
미술관이 되기 전이 수영장은 루베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사진=송민주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전혀 거리가 먼, 어둡고, 천장은 내려앉고, 물은 1985년 이후 한 번도 빼지 않아 진흙탕이고 악취가 가득한 폐허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수영장의 잠재력을 알아보았고, 이곳이 아니면 안된다며 시청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자 수영장의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파리에서 전문 건축 감정사가 파견됐다. 하지만 그 역시 더러운 수영장의 매력을 알아보지 못했고, ‘이 건물에는 어떠한 역사적 가치도 없으니 루베 시와 지역 자치단체가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감정을 냈다고 한다. 그렇게 1998년부터 공사가 시작돼 2001년 문을 열었다. 초기 전시 작품은 대부분 루베 시에서 보관하고 있던 용도 없는 예술 작품들이었지만 박물관 문을 열면서 국가 보관 미술품의 지원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특히 오르세 미술관에서 기부한 조각 작품이 많았다. 이렇게 탄생한 박물관은 2002년부터 20만 명이 넘는 연간 방문객 수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미술관이 되기 전이 수영장은 루베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사진=송민주
미술관이 되기 전이 수영장은 루베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사진=송민주

루베에서 나고 자란 주민 프랑수와(52세)는 라 피신느 미술관의 개장이 루베의 예술적·문화적 잠재력을 일깨워준 하나의 사건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버려진 산업 도시가 대부분 그러하듯 범죄와 마약으로 고통 받던 루베 주민들은 이러한 변화를 매우 반가워하고 있다. 버려진 직물 공장은 디자이너들과 크리에이터들의 공동 작업실로 개조됐고 돈 없는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루베로 모여들었다.

글쓴이 송민주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학을 전공 중이다.
<Portraits de Se′oul>의 저자이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서로 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사랑한다.

 

우먼센스 2019년 2월호

에디터 하은정 글·사진 송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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