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내 그릇 앞에서 내 생각에 몰두하는 시간의 달콤함

따끔했던 혼밥의 기억. 하릴없이 몽롱해지는 어떤 주말 아침, 무작정 밀고 들어간 식당 주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한 명, 더 바랄 것도 없이 오직 나 한 명 뿐임을 알린 후 자리(조금 구석)에 앉아 원하는 메뉴를 시킨다. 시킨 것을 당차게 먹는다. 밥을 먹을 때는 하늘에서 무언가 내리지 않는 한 그냥 휴대폰을 본다. 적막하고 편리하다. 그러다가 먹던 걸 뿜을 뻔했다. 혼밥이 정신병이라는 내용의 글을 봤기 때문. 나는 그리하여 타인을 통해 나의 병증을 검진할 수 있었다. 혼밥은 폄하된다.  

저런 류의 주장은 차고 넘친다. 최근에는 1인 손님을 위한 바(bar)를 두거나, 아예 1인 손님만을 위한 칸막이 식탁만을 구비한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추세를 겨눈 주장들이 쏟아진다. '혼밥', '이기주의' 이 두 단어를 섞어서 포털 검색창에 넣으면 제목만으로도 서론 본론 결론을 유추할 수 있는 칼럼이 여럿이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혼밥·혼술족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이는 곧 이기주의의 팽배를 보여준다. 사회성 결여와 같은 이기주의의 득세는 이타주의를 뿌리까지 말려 끝내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저해하고 말 것"이라는 저주와 우려를 열심히 버무려놓은 주장들이다. 물론 위의 내용은 전반적인 '혼밥 논평'을 기자가 각색한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대체로 '다같이 둘러 앉아 먹던 밥상'에의 향수로 끝맺음한다. 여기서 혼밥·혼술에 대한 공격은 곧 공동체주의로의 환원을 설득하기 위한 필수 과정 같은 것이다. 그러나 혼밥의 실상은 사회성 결여나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로 단언할 수 있을만큼 순진하고 단편적이지 않다. 오늘 혼밥했던 나는 오늘 혼밥했던 친구A와의 저녁 식사를 기다린다. 나와 A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친구들을 모아 논다. 혼술집에 가면 그곳에는 친한 사장님이 있다. "같이 밥 먹자"는 제안의 따뜻한 온도도 안다. 혼밥이 소외와 고립의 다른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사실 사람 만나는 걸 좀 안 좋아하면 어떤가. 다같이 모여 시끌벅적 밥 먹는 자리는 언제나 다정다감했나. 항상 신체 어디쯤에 불편을 걸어두고 고기를 굽지 않았나. 명절 이후 체증 환자가 늘어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같이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이고자 하는 자유 의사를 존중하자는 뜻이다. 하고싶어서 하든, 어쩔 수 없이 하든 혼밥은 혼밥이다. 자꾸 거기다가 부정적인 맥락을 붙이려고 하면 먹다 체한다.   

고요한 내 그릇 앞에서 내 생각에 몰두하는 시간은 달다. 사람 지겨운 어떤 날에는 나혼자 밥 먹는 게 남에게도 좋다. 이거 이타주의 아닌가. 차라리 혼밥 혼술족을 위한 도시락이나 안주, 혼행족을 위한 여행 패키지 프로그램이 천진난만한 제목으로 출시되는 걸 바라보는 게 즐겁다. 1인가구를 겨냥한 상술이면 어떤가. 인상쓰면서 밥 같이 먹으라고, 꼭 먹으라고 함부로 휘두르는 말보다 훨씬 혼자들을 풍요롭게 해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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