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회사 희노애락 함께 해···최근 들어선 오너리스크로 고생

2000년 6월 22일 대한항공은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등 4개사가 참여해 스카이팀을 창설했다. 당시 창설멤버들과 함께 웃고 있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왼쪽 세번째). / 사진=대한항공
2000년 6월 22일 대한항공은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등 4개사가 참여해 스카이팀을 창설했다. 당시 창설멤버들과 함께 웃고 있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왼쪽 세번째). /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의 지난 50년 역사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조양호 회장은 1974년 12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후 45년간 항공·운송사업 외길을 걷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해당 분야에서 조 회장만큼 경력을 지닌 인물을 찾기 힘들다.

조 회장이 처음 대한항공에 발을 들인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이었다. 이어 1978년부터 1980년에도 2차 오일쇼크도 대한항공을 직격했다. 연료비 부담으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수천명 직원 감원할 정도였다.

조 회장은 당시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줄일 수 있는 원가는 줄이되 시설과 장비 가동률 오히려 높이는 전술을 구사했다. 항공기 구매도 계획대로 진행했다. 불황에 호황을 대비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1997년 외환위기도 비슷한 전략으로 넘겼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대한항공은 1998년 보잉737NG(Next Generation) 주력 모델인 보잉737-800 및 보잉737-900 기종 27대 구매했다. 보잉은 감사의 뜻으로 계약금을 줄이고 금융까지 유리하게 주선하게 됐다. 결국 이들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밖에도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 인맥 등을 바탕으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스카이팀 등 국제 항공업계 조직 창설을 주도하는 등 대한항공 발전역사의 산증인으로 여겨진다.

허나 그는 현재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전 전무가 사회적 물의를 빚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그 역시 재판을 받는 상황이다. 덩달아 회사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대한항공이 오너리스크를 딛고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