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벌판에서 한강맨션 들어서며 ‘부촌’으로 자리매김
준공 40~50년차 단지, 재개발·리모델링 사업 한창
“입지적 특수성 뛰어나, 중장기적으로 상승여력 충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일대 재건축·리모델링 사업 현황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동부이촌동은 대한민국 최초로 ‘고급 아파트’ 시대를 연 역사적인 지역이다. 지금도 강남권 단지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촌으로 꼽힌다. 준공 40~50년차를 맞이하는 이곳 단지들은 재건축·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새 단장을 준비 중이다. 속도는 더딘 편이지만 강북 최고의 입지를 갖춘 만큼 동부이촌동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국내 최초로 ‘고급 아파트’ 들어서…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대표 ‘부촌’으로 

1960년대 중반까지 모래벌판이던 동부이촌동이 개발되기 시작한 시기는 ‘한강개발 3개년 계획’부터다. 이곳은 1968년 ‘한강변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통해 대규모 주거단지를 지을 수 있는 택지로 재탄생했다. 특히 동부이촌동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고급 주거지로 기획됐다. 서민아파트 일색이었던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동부이촌동의 첫 아파트 단지는 1968년에 지어진 공무원아파트다. 이 아파트에는 군장성들과 요직에 있는 고위직 공무원들이 대거 입주했다. 그 옆에는 중산층을 상대로 한 최초의 ‘고급 아파트’인 한강맨션이 1970년에 준공됐다. 이 아파트는 중산층을 상대로 지어진 만큼 대형평형(27~57평)이 주를 이뤘다. 이어 한강외인, 한강민영 등이 들어서면서 동부이촌동은 3000여세대가 넘는 아파트촌으로 탈바꿈 했다.

특히 한강맨션 단지 내에는 학교와 상가, 우체국, 은행, 동사무소 등이 통합적으로 운영되는 ‘근린주구’ 방식이 최초로 도입됐다. 이 방식은 현재까지도 대단지 아파트를 계획하는 기본 개념이 되고 있다. 내부에는 국내 최초로 중앙공급 보일러가 설치됐고 고급 자재를 사용해 기존 아파트와 차별화를 꾀했다.

1969년 10월 6일자 동아일보 1면 하단에 실린 ‘한강맨션’ 분양광고 / 출처=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또 한강맨션은 분양 당시 국내 최초로 모델하우스를 운영했던 단지다. 당시 시공사였던 대한주택공사(現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고급 아파트’를 표방한 한강맨션의 건설이 상당한 자금 부담을 안게 되는 일이었기에 착공 이전부터 분양 광고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모델하우스를 지어 대중에게 선보였던 것이다. 선분양에서 모델하우스를 이용해 건설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은 이후의 민간업체 아파트 건설에서도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됐다.

고급 아파트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한강맨션에는 영화배우와 정치인, 기업 총수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거주했다.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이후 비싸지만 안전한 중산층 아파트의 선호도가 높아진 점도 한강맨션이 주목받은 이유였다. 이후 동부이촌동 일대에는 빌라맨션, 타워맨션, 장미맨숀, 현대맨숀 등 ‘맨션’이 들어가는 90~100평형대의 대형 고급 아파트들도 속속 등장했다. 동부이촌동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표 ‘부촌’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준공 40~50년차 단지들 재건축·리모델링 사업 진행…“사업 완료되면, 강남3구 아성 넘볼 것”

동부이촌동 일대 아파트 단지들은 준공 40~50년차를 맞이해 새 단장을 준비 중이다. 현재 한강외인아파트를 재건축한 LG한강자이(2003년 준공)와 래미안 첼리투스(구 렉스아파트·2015년 준공), 동부센트레빌(구 복지아파트·2001년 준공)를 제외한 나머지 단지들이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단지들이 한강변에 위치한 뛰어난 입지 덕에 사업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 달리 사업 속도는 더딘 편이다.

‘강북 재건축 대장주’로 불리며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한강맨션은 사업이 안개 속을 걷고 있다. 이 단지는 한강 조망이 가능한데다 대지지분이 높고 용적률이 낮아 강북에서 보기 힘든 사업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건축이 완료되면 현재 5층, 660가구에서 최고 35층, 1450가구 대단지로 거듭난다. 지난해 11월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이는 조합이 설립된 지 15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순항을 걷는 듯 했던 한강맨션 재건축 사업은 지난달 말 조합장이 해임되면서 잠정 중단됐다. 조합이 추진한 ‘강변북로 덮개공원’ 사업과 여러 명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 주변의 나대지와 최초 놀이터 부지 흡수 등 많은 사안들을 두고 조합원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다. 현재 내부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어 향후 사업지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강맨션은 용적률이 낮고 한강변에 위치해 ‘강북 재건축 대장주’로 꼽힌다. 다만 현재 조합 내 갈등으로 재건축 사업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사진은 한강맨션 단지 전경 / 사진=길해성 기자  

한강맨션 외에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단지는 삼익, 왕궁, 반도 등이다. 삼익은 2003년 일찌감치 조합이 설립됐다. 삼익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서울시에 정비계획안을 제출한 상태로 시 최종심의인 건축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1대1 재건축’을 추진 중인 왕궁 재건축 조합 역시 상반기내로 건축심의를 통과한다는 계획이다. 반도는 주민 간 재건축 사업 추진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이촌동에는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는 단지들도 적지 않다. 1974년 준공된 이촌현대(구 현대맨숀)는 리모델링 사업장에서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이다. 지난해 말 착공 전 마지막 단계인 사업계획 승인을 용산구청에 제출했다. 포스코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이 단지는 승인을 받는 대로 올 하반기 이주를 개시하고 내년 상반기 착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1973~1975년도에 나란히 입주한 타워맨션, 빌라맨션, 장미맨숀 등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이다.

1995~2000년대 지어진 이촌우성·한강대우·한가람·코오롱·강촌 등 5개 단지도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단지는 지난해 초 5개 단지, 총 5000가구가 대규모로 통합 리모델링을 추진했지만 주민들 간 의견 충돌로 현재는 각 단지별로 리모델링을 다시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동부이촌동의 재건축 사업이 다소 더디긴 하지만 인근에 용산민족공원이 들어서고 한강대로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사업이 하나 둘 완료되면 강남권의 아성도 넘볼 것으로 평가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정부의 재건축 규제로 인해 이촌동 일대 재건축 사업이 주춤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지역은 중산층 이상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곳인 데다 용산공원, 한강 조망권 등의 입지적 특수성을 갖췄기 때문에 개발이 완료되면 그 가치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이미 고점에 오른 강남권보다 가치 상승여력이 더 높은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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