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기가지니로 롯데슈퍼 장보기 체험···아직은 갈길 먼 음성쇼핑
‘찾아줘, 담아줘, 주문해줘’ 3단계라기에 기대했더니···“단어 못 알아듣고 원하는 제품 못 찾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쇼핑이란 이런 모습일 테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 벽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곡기를 떠올린다. 이에 필요한 음식을 결정한 뒤 소리친다. "지니야 라면 좀 주문해줘." 그렇다면 지니가 응답할 것이다. "네, 이틀전에도 주문하셨던 O라면 5개입을 주문했습니다. 3시간 이내에 도착합니다." 이후 지니에게 고마워하며 다시 천장을 응시, 이내 돌입한 얕은 잠에서 깨어나면 라면은 이미 내 품에 안겨있는 것이다.

국내 유통사들이 앞다퉈 발표한 AI(인공지능)를 이용한 스마트 쇼핑 서비스 보도자료를 보면서 이런 황홀한 장면을 상상했다. 보이스커머스(Voice Commerce), 즉 음성쇼핑이란 말그대로 목소리로 이뤄지는 쇼핑이다. 보이스커머스는 지난해부터 본격 등장했다. KT 기가지니의 기가지니를 외치건, 네이버의 클로바를 외치건, 어쨌든 무언가를 외치면 금세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게 요지다. 

마침 기자 가족의 집에 KT 기가지니2가 있었다. 생각없이 놀러갔다가 조카가 "기가지니"로 투니버스 채널도 틀고 볼륨도 올리고 내리는 모습을 보고 떠올렸다. 아, 보이스커머스. 롯데슈퍼는 지난해 9월부터 KT 기가지니와 손잡고 AI 장보기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롯데슈퍼 AI 장보기 서비스는 KT의 기가지니를 통해 말 한마디로 롯데슈퍼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검색하고 장바구니 담기, 주문, 당일배송요청, 배송상태조회까지 지원하는 AI 쇼핑 서비스다." 한 번 시행해본다.

우선 기자는 "기계란 차갑고 냉정한 것"이라는 구한말 온건개화파의 사상을 2019년에도 몸소 신뢰하는 IT맹(盲)임을 밝혀둔다. 가까스로 에어팟을 사용중이나, 통화는 역시 단말기를 귀에 직접 가져다대야 맛이라고도 생각한다. 

우선 사용법을 찾아본다. "기가지니, 롯데슈퍼 실행해줘"라고 말하면 된단다. 이후 #찾아줘 #담아줘 #주문해줘 이 3단계만 거치면 물건을 살 수 있단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성대만 울려서도 가능한 쇼핑이라니, 그것도 고작 3단계만에. 희망적이었다.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기가지니로 음성쇼핑을 하고 있다. 꽤 쉬워보인다. 자신감이 붙는다. /사진=kt 유튜브 영상 캡처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기가지니로 음성쇼핑을 하고 있다. 꽤 쉬워보인다. 자신감이 붙는다. /사진=kt 유튜브 영상 캡처

"기가지니 롯데슈퍼 틀어줘~!"

응답이 없다. 너무 과잉친절했던 탓일까, 목소리를 냉철하게 가다듬고 또 다시 외쳤다. "기가지니 롯데슈퍼 틀어줘." 응답이 없다. 내가 기계치인것을 목소리만으로 알아챌 정도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한 것인가 싶었다. 옆에서 8살배기 조카가 알려준다. "이모, 기가지니만 딱 부르고 불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돼."

네! 하듯 "기가지니!"하고 짧게 호령하니 깜깜했던 기가지니 몸통에서 불빛이 발한다. 곧바로 "롯데슈퍼 장보기 해줘"라고 말하자 롯데슈퍼 장보기 페이지가 열린다. 기계와 인간, 그 최초의 소통이었다. 이제 예습한 3단계를 실천할 시간이었다. 찾아줘, 담아줘, 주문해줘.    

첫째로 우유를 찾아본다. "기가지니 우유 찾아줘."(모든 명령의 첫마디는 기가지니여야 한다. 말머리마다 오빠가~ 오빠는~ 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유의 검색결과 47개가 뜬다. 푸르밀, 목우촌, 남양, 덴마크대니쉬우유, 초이스엘, 매일우유 등 다양한 브랜드의 우유가 나온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언니는 평소 먹던 파스퇴르 우유를 사겠다며 "기가지니, 파스퇴르 우유 찾아줘"라고 했지만 원하는 상품이 나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서울우유 보여줘"를 외쳤지만 원하던 1000ml 상품은 뜨지 않았다. 엄한 서울우유 커피우유만 나올뿐이었다. 답답했다. 참고로 롯데슈퍼 온라인몰에서는 서울우유 1000ml를 판매한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돌체구스토 캡슐커피였다. 우리는 기가지니에 대한 신뢰를 잃은지 오래, 우선 가장 간단한 명령어를 말했다. "기가지니, 커피 찾아줘." 커피 검색결과는 총 50건이었는데 최초 노출된 제품들은 모두 맥심 커피믹스였다(적어도 카누는 있을 줄 알았다). "기가지니, 돌체구스토 캡슐커피 찾아줘" 했을 때 기가지니는 갑자기 '스톤커피' 검색 결과를 알려주겠다며 유튜브로 넘어가버렸다. 황당했고, 목이 아팠다. 

두부는 어디에. 튜브는 뭘까. 부부는 뭐고. /사진='기가지니로 속터지는 쇼핑하기' 영상 캡처
두부가 부부가 된 사건. /사진='기가지니로 속터지는 쇼핑하기' 영상 캡처

두부는 아예 살 수도 없었다. 두부를 찾아달랬더니 부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롯데슈퍼는 당연히 부부를 판매하지 않는다. 심기일전하고 다시 두부를 찾았다. 튜브가 나왔다. 다시 두부를 찾았다. "기가지니, 두부(한숨) 두부 찾아줘." 기가지니는 "부부부부의 검색 결과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기자는 끝내 두부도, 부부도, 부부부부도 살 수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가족들 모두 "이럴 바에 그냥 손가락 몇번 움직여서 쇼핑몰에서 사고 말지"라는 반응이었다. 

체험기 작성의 목적이 없었다면 이미 포기했겠지만, 그래도 그간 통(通)한 정을 감안해 신라면 5개입만 사기로 했다. "기가지니, 신라면 담아줘"를 했고 장바구니에 담기 앞서 로그인을 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최초 로그인은 휴대폰 앱을 통해 해야했다. 롯데 통합 아이디로 로그인을 했다. 귀찮았다. 주문지를 선택해야 했고, 귀찮았다. 이후에 결제수단을 등록해야 했다. 귀찮았다. 이 모든 절차가 끝나면 그제서야 주문이 끝난다.  

결론. 편리한 쇼핑을 표방한 음성쇼핑은 불편했다. 원하는 제품을 마음껏 살 수 없었다. 기가지니에게 요청해도 착 붙는 상품을 추천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 기가지니를 하도 외치느라 성대가 닳았다. 롯데몰 아이디가 없는 사람이라면 회원가입도 해야한다. 이는 당연한 것이지만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귀찮은 여정일 뿐이다. 당일배송을 요청하지 않은 탓에 전날 오후 4시경 시킨 신라면 5개입은 다음날 정오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기계치에서 벗어난다면 이 음성쇼핑 서비스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까. 미지수다. 기계는 여전히 차갑고 냉정하며, 직접 손가락(단 1개) 굴려서 쇼핑하는 섬세한 과정이 내겐 아직 더 맞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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