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 기사가 결정적 제보···신종 마약 ‘신의 눈물’ 사건 언론 ‘대서특필’
신고포상금 법정 상한액은 2000만원···“위험 무릅썼는데 터무니 없이 모자라”
신고자 A씨 ‘포상금 이상해’ 인터넷에 글···경찰관 명예훼손 혐의로 피고소인 돼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은밀히 마약 거래를 하던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시가 4억원 상당의 신종 마약을 압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범죄신고자가 수사기관으로부터 받은 신고포상금(공로보상금)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포상금액이 법 규정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데다, 지급 과정이 불투명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이 신고자는 경찰 수사에 도움을 주고도 되레 ‘경찰 수사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경찰 사이버수사대 조사를 받고 있다. 인터넷 상에 포상금 지급 문제 등을 지적하는 사연을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범죄신고자 A씨의 증언과 시사저널e 취재 결과에 따르면, 퀵서비스 기사 A씨는 지난 2015년 9월경 경기도 고양시에서 출발하는 ‘콜’을 받았다. 서울 OO동까지 가는 이른바 ‘광역콜’이었다. 광역콜은 출퇴근 시간대 교통 혼잡 문제로 기사들이 평소 잘 받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시원찮은 벌이 탓에 A씨는 콜을 수락했다고 한다.

‘아기 비상약’이라던 그 물건···그건 ‘신종마약’이었다

A씨가 만난 콜 발신자는 이아무개씨(당시 40세)였다. 이씨가 건넨 물건은 조잡한 이면지로 꾸깃꾸깃 포장돼 있었다. 손가락만한 크기였다. 이씨는 ‘아픈 아기에게 먹일 비상약’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아이 걱정에 평소보다 오토바이 속도를 더 냈다. A씨의 머릿속엔 우는 아이를 안고 안절부절하는 여성이 떠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급하다’던 물건을 받을 사람은 배송지에서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수령지 주소도 정확하지 않았다. 통상 수취인 문 앞까지 물건을 전달해주길 바라는 퀵서비스 이용자들과는 달랐다. A씨는 이 남성에 대해 “불량한 느낌이었고 아이를 키우는 것 같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A씨는 결국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도 받지 못했다.

이씨는 이후에도 수차례 A씨를 통해 물건을 보냈다. 콜을 받고 갈 때마다 이씨는 ‘비상약’이라며 유사한 모양의 ‘물건’을 건넸다. 비상약을 수차례 퀵서비스로 보낸다고 하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퀵서비스는 택배보다 비용이 비싸 개인 간 거래에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 순간 A씨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단상이 있었다. 

“아···. 이거 마약 범죄 아닌가.”

첫 배송 후 4개월가량 지난 이듬해 1월, A씨는 고심 끝에 경찰에 마약범죄 신고를 했다. 같은 내용의 퀵서비스 주문이 10여 차례에 이르자 확신이 든 것이다. A씨는 경찰에 이씨와 수취인의 전화번호, 주소 등을 구체적으로 신고했다. A씨가 기자에게 확인해준 문자메시지에는 이들의 개인정보가 담겨있었다. 경찰과의 통화내역도 확인됐다.

하지만 신고를 받은 경찰의 움직임은 A씨 생각보다 더디었다. A씨는 “마약거래로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정황과 정보를 신고했다”면서 “그런데 경찰이 ‘증거물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수사할 수 없다’고만 해 의아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증거물’을 이유로 수사를 미루자 A씨 마음도 급해졌다고 한다. 이러다 범죄자를 놓치는 건 아닌가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미루면 범죄자를 잡을 수 없겠다는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다.

수 개월 이 문제로 고심하던 A씨는 ‘이제 끝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의 콜 단말기가 울린 것도 그때쯤이었다. A씨는 곧바로 경찰 수사관에게 연락을 했다. 배송 시간을 단축해 증거물을 채취하자고 수사관과 입을 맞췄다. ‘증거물이 필요하다’는 경찰의 태도에 A씨가 직접 위험을 무릅쓰기로 한 것이다.

결국 서울 △△동 한 시장을 접선 장소로 잡았다. 경찰은 A씨가 가져온 물건이 시약통(안약통)에 든 투명한 액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액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졌고, 나중에 대마 성분을 가진 ‘엑스엘알-11’로 판명됐다.

범죄신고자 A씨가 경찰에 신고한 신종마약. 성인 손가락 길이만한 시약통에 담긴 마약이 이면지로 포장돼 있다./ 사진=A씨 제공
범죄신고자 A씨가 경찰에 신고한 신종마약. 성인 손가락 길이만한 시약통에 담긴 마약이 이면지로 포장돼 있다./ 사진=A씨 제공

A씨가 신고한 이 사건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경찰은 미국에서 유행하는 신종 마약 TG(Tears of God·신의 눈물)를 밀반입해 유통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이씨와 공범 김아무개씨 등 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이 TG를 구입한 전아무개씨 등 2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한 일간지는 증거채취 당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시사저널e가 확보한 이씨의 1·2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 등은 미국 체류 중인 박아무개씨와 공모해 2015년 8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TG 약 4370㎖ (시가 4억원 상당)를 밀수입했다. 이들은 TG를 손세정제통(236㎖)에 담아 정상적인 국제우편물인 것처럼 국내로 발송했다. TG는 가루가 아닌 액체이다 보니 통관 X선 등에서 적발되지도 않았다. 이씨 등은 TG를 10㎖ 안약통에 4㎖씩 옮겨 담은 후 통당 25만원~35만원에 거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그는 총 223회에 걸쳐 TG 1636㎖를 팔았다.

경찰은 A씨의 제보로 마약거래의 중심 인물이자 입출금·배송자인 이씨를 파악했고, 이후 공급자 및 자금관리·연락·판매자, 중간유통자, 매수자들을 검거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A씨는 같은 해 5월 초 마약 수사관의 요청으로 서울경찰청 사무실을 방문해 포상금 신청서류를 작성했다. 시가 4억원대 마약 사건을 신고한 만큼 A씨도 큰 액수의 포상금을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A씨가 받은 신고포상금은 350만원에 불과했다. 경찰 측은 A씨에게 50만원, 검찰 측은 300만원을 각각 보상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현행 ‘마약류보상금 지급규칙’(법무부령)은 신고포상금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신고 또는 고발내용의 정확성 ▲사건에 직접 기여한 공로 ▲사건의 난이도 ▲범죄의 경중과 규모 ▲압수 또는 몰수한 마약류의 양 ▲사건기준가액 실제 국고수입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한다. 이 규칙에서 규정된 보상금 상한액은 사건기준가액이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일 경우 최대 2000만원에 달한다. 법 규정 상한액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포상금이 산정되자 A씨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국민신문고에 진정을 넣었다. A씨는 “포상금 액수도 문제였지만 포상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도 의문이 드는 대목이 많았다”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 신고를 했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알아보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진정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이 진정은 2017년 3월 종결됐다. A씨는 “세 차례 진정을 넣고 두 차례 진정처리 담당자와 통화 끝에 사건 담당 검사와 연락이 닿았다”면서 “그러나 이 검사는 전화상으로만 ‘진정 내용에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고, 제공해주겠다는 관련 서류는 끝내 받아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국민신문고 진정 등으로 의문점을 해소하지 못한 A씨는 지난해 11월 18일부터 같은 달 30일까지 5차례에 걸쳐 자신의 경험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다. 글에는 마약제보 과정 외에도 경찰의 부실한 수사, 언론 보도를 통한 제보자 신원 유출문제, 포상금 수령 과정에서 느낀 문제점 등이 담겼다.

범죄신고자 A씨, ‘경찰 비판 글’로 피고소···고소 경찰관 “포상금 지급 아무 문제없어”

A씨는 신고포상금의 의문도 풀지 못한 채 최근 경찰 사이버수사대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A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에 등장한 마약 담당 경찰 수사관이 A씨를 고소한 것이다. A씨는 지난 27일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기자가 A씨의 의혹 제기와 고소 이유 등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 수사관 B경위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고소내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B경위는 A씨가 포상금액에 불만을 품고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주장했다. A씨가 제기하는 포상금액의 적절성 문제에 대해서도 B경위는 “포상금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사전에 알려줬다”면서 “A씨는 세 차례 국민신문고 진정을 통해 포상금 지급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신종 마약사건 신고자에서 피고소인 신분이 된 A씨는 “목숨을 걸고 마약 범죄를 신고했고, 포상금이 적절하지 않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인데 고소까지 당하니 착잡하다”면서 “경찰 조사 과정을 통해 당시 신고포상금 집행 절차에 문제가 없었는지 제대로 따져 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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