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불합치 가능성 전망, 정부도 실태조사 결과 발표···업계, 헌재 선고에 촉각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조만간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선고할 예정이다. 법조계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예상하고 있다. 정부도 낙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관측대로 위헌 성향 판결이 내려질 경우 그동안 논란이 됐던 사후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과 관련 시장 확대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26일 법조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헌재는 오는 4월 초 형법의 낙태죄 관련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선고할 예정이다. 선고 대상은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270조 1항(의사낙태죄)이다. 헌재는 낙태죄 논란에 대해 지난 2012년 재판관 4명(위헌) 대 4명(합헌)의 의견으로 최종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낙태죄에 대한 일반인 의식이 변화되는 등 사회 분위기가 성숙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 결과, 여성 4명 중 3명(75.4%)이 “낙태죄를 개정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여성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즉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것이다. 

법조계도 과거 합헌 판결을 벗어나 위헌 성향 판결을 예상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의 한 변호사는 “과거에는 한정위헌이라는 용어를 많이 썼는데 최근에는 헌법불합치를 많이 사용한다”면서 “법조계 대부분이 이번에는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로 선고날 것으로 예상하며, 이 경우 어느 시점까지 입법하라고 헌재가 주문할 것”으로 예상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적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을 지칭한다.

특히 여성 등 소수자 배려를 국정운영의 한 원칙으로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 특성 상 헌재 판결이 내려지면 관련 정책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의약품 분야에서는 그동안 보건당국이 추진했던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추진했지만 종교계와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좌절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여성 인권이 신장된 상황에서 헌재의 위헌 성향 판결이라는 전제조건 하에 진보 성격을 갖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보수 성격의 정부에서도 복지부와 식약처가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검토했던 것은 시대 상황이 변화했고 국민들 특히 여성들 인식을 반영한 결과”라며 “이제는 일반약 전환을 긍정적으로 공론화하고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사회 전반의 개방 분위기와 인식 변화로 인해 의약품 정책이 변경되면 관련 시장 확대로 이어지는 사례 중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사후피임약으로 분석된다. 사후피임약은 현재는 병의원에서 의사 처방 후 약국에서 구매하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국내 시장은 현대약품 ‘엘라원정’과 ‘노레보원정’이 1, 2위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각각 32억원과 26억7000만원 매출을 올린 상태다. 이어 바이엘제약 ‘포스티노원’과 명문제약 ‘레보니아’, 콜마파마 ‘세븐투에이치정’ 매출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법조계 예상과 관측대로 헌재 판결에 이어 보건당국의 사후피임약 일반약 전환이 추진되면 관련 의약품 시장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후피임약이 일반약으로 판매되면 품목 약가도 일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4월로 예정된 헌재 선고 내용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후피임약은 헌재 판결과 정부 정책, 사회적 분위기, 보수와 진보 간 논쟁 등이 얽혀 있는 고차원의 복잡한 방정식과 같아 섣불리 언급하기 힘들다”며 “일단 헌재 선고를 지켜보자”고 말을 아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