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적사 항공기 10대 중 1대는 경년 항공기···국토부, 경년기 관리·감독 강화해 퇴출 추진
"장기적으로 항공사 정비 및 유지·관리 역량 키워야"

국토교통부가 기령이 20년 넘는 경년 항공기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면서 퇴출 압박 수위를 높인다. 최근 일부 항공사의 경년 항공기를 중심으로 기체결함으로 인한 정비 지연 등 사태가 잇따르면서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다만 아직 제도적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따라 붙는다. 항공기 정비 지연 등을 방지하기 위해선 공항 인프라 및 항공사 정비 여력 확대 등 근본적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25일 국토부는 9개 국적 항공사별 기령이 20년 넘은 경년 항공기의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이 매 반기별 탑승객들이 알기 쉽도록 경년기 보유대수, 기령, 각 노선별 경년기 투입횟수 정보를 국토부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할 전망이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내달까지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개정이 완료되는 대로 즉시 시행된다. 

이와 함께 항공사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한다. 국토부는 기령에 따라 결함이 잦은 기골, 전기배선 등 부위에 대한 특별정비프로그램(6종)을 신설하고 주기적인 점검, 부품교환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항공사에겐 소속 정비사에게 경년기 주요 결함 유형, 정비작업 시 유의사항 등 매년 최소 10시간 이상 교육하도록 의무화하고, 결함률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항공기는 비행 스케줄에서 제외해 기체 점검, 부품 교환 등 충분한 정비시간을 갖도록 한다.  

그간 업계선 경년 항공기의 안전성을 둘러싼 이견이 팽팽했다. 항공기는 내구 연한의 개념이 희미해 20년 넘도록 운항해도 잘 고쳐 쓰면 문제없다는 주장과, 신규 기단에 비해 결함이나 정비 지연이 잦다는 지적이 맞부딪혔다. 정부는 앞서 2015년 항공사와 ‘경년항공하기 자발적 송출협약’을 체결, 항공사의 자발적 경년기 송출을 유도했으나 권고사항에 그쳐 실효성이 전무했다.

출처=국토교통부 /그래프=조현경 디자이너
출처=국토교통부 /그래프=조현경 디자이너

그러나 최근 경년기를 둘러싼 비정상 운항 사태가 늘면서 경년기 퇴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국토부의 집계에 따르면 2017~2018년 최근 2년간 국적사에서 경년기에서 정비 요인으로 인한 지연‧결항이 기령 20년 이하 일반 항공기보다 더 많았다. 특히 이 기간 항공기 1대당 정비요인으로 인한 회항 발생은 경년 항공기가 대당 0.32건을 기록, 일반기(1대당 0.17건)보다 발생건수가 약 2배 많았다. 슬롯이 포화된 김포-제주 노선에선 경년기의 평균 지연 시간이 일반 항공기보다 30%가량 길었다. 특히 B747 기종의 경우 기체결함이 잦은 부위가 부품결함이나 오랜 사용으로 인한 피로 균열이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대책은 2015년 민관 협약의 후속 조치이나, 항공사의 노후 항공기 처분에 실질적 압박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토부는 이번 법제 정비를 통해 항공안전 감독관 9명 1명을 경년기 전담 감독관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여기에 국토부는 향후 항공사가 비행편마다 경년기 배정 여부를 승객에게 사전에 고지하도록 강제하고, 승객이 경년기 탑승을 거부하면 항공사는 환불 및 대체항공편을 제공해야 하는 방안도 추가 검토 중이다. 이 같은 승객 후속 조치가 항공사 경영 및 항공기 가동률, 수익성 등 영업 활동에 영향을 주면서 자발적 경년기 송출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궁극적으로는 전체 경년 항공기 숫자를 줄이는 것이 목표”라며 “경년 항공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항공사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활용하는 방향을 권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통계 분석을 해보니 경년기의 결함 비율이 높았고 승객 불편 등 민원을 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사가 경년기를 운용하기 위해선 스스로 정비 능력을 제고, 정량적 수치로서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마냥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은 연중으로 해당 경년기를 모두 해외 임차 업체에 반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정비 이슈를 겪은 아시아나항공은 국적사 중 경년기 최다 대수를 보유해 갈 길이 멀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기준 경년기 19대(여객기 9대, 화물기 10대)를 보유했다. 이 회사의 전체 보유기단 83대 중 22.9%에 달하는 비율이다. 특히 23년 넘게 운용된 HL7247, HL7248, HL7418 등 항공기는 국적사 여객기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상위 3개 기종으로 기록됐다. 

특히 일부 화물기에서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은 올초부터 비정상 운항으로 인해 국토부 감독을 받았다. 지난달 기령 20년 넘은 일부 B747 화물기에서 기체결함으로 인한 회항, 이륙 중단, 장기 지연 등이 총 4차례나 발생, 정부 안전 감독관은 이달부터 아시아나항공에 상주하며 정비상황을 매일 확인하고 있는 상태다.

이를 두고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경년기 숫자를 줄인다는 국토부 취지에 동감해 순차적으로 경년기를 줄여갈 방침”이라며 “기령 25년이 넘은 B767 HL7247은 앞서 지난달 31일부로 서비스 종료했다. 곧 해체 작업 등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책 취지에 맞춰 운항 안전을 제고하기 위해선 보다 본질적인 해결책을 요구한다. 연달아 발생하는 장기 지연을 막기 위해선 정비 인력 및 부품을 늘리고 대체기 등 정비 여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항공기의 상업적 가치는 12~15년에 그칠 수 있지만 기술적 차원에선 그 이상 시간 운용될 수 있다. 항공사의 철저한 유지‧관리 역량이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기령 정보는 소비자의 일차적 판단을 돕는 긍정적 측면도 있겠지만, 단일 기령 정보엔 해당 항공사가 기단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대한 정보는 함께 담기지 않을 것으로 본다. 신형기라고 해서 결항과 지연이 덜 발생하는 것도 아니며 신형기 도입과 항공기를 유지‧관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장기적으로 항공사의 유지·관리 및 정비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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