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블루레이 제작을 추진하는 것은 유통사나 외주제작사가 아닌, 바로 팬들

드라마 한편이 제작되고 나면, 우리는 심심찮게 본편이 전부 실린 DVD나 블루레이가 시중에서 유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인기가 있거나 마니아층이 형성된 몇몇 드라마는 팬들의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부가 상품과 함께 하나의 상품으로 제작되고 편성이 끝난후에 판매된다. 

단순히 생각하면 스트리밍으로 보거나 다운로드를 통해서도 소장할 수도 있는 드라마를 굳이 세트박스로 구매한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DVD에는 본 드라마 내용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코멘터리가 포함되거나 본편에 제공되지 않았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추가돼 있는데다 다양한 드라마 파생상품, 즉 굿즈가 제공되기도 한다. 포토카드나 포스터, 사인집이나 설정집, 대본집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제작되는 드라마 DVD 및 블루레이는 드라마가 끝난 뒤 열성팬들이 드라마를 소장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서 자리 잡았다. 특히 감독이나 배우, 작가들의 코멘터리를 듣고 볼 수 있다는 점, 드라마 편성 시간대에 모두 볼 수 없었던 비하인드 영상이나 감독판을 따로 볼 수 있는 점은 드라마가 끝나면 두 번 다시 그 콘텐츠의 후속편을 보기 힘든 팬들에게 있어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다. 

이러한 방식은 하나의 드라마가 종결된 뒤에도 후속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 DVD·블루레이 제작을 추진하는 것은 유통사나 외주제작사가 아닌, 바로 팬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드라마가 종결되고 난 뒤 소장용 DVD·블루레이는 팬들의 가수요 조사를 통해 제작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드라마 제작사나 방송사가 제작한 생산품이 아닌,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익명의 소수 팬들이 DVD나 블루레이 소장본 수요를 조사하고, 조사를 바탕으로 드라마 소장본을 제작하는 외주제작사와 직접 컨택하는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적극적으로 수요 조사를 맡는 팬들은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DVD나 블루레이가 제작되려면 팬들의 가수요(구매의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상의 수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홍보한다. 이러한 홍보를 통해 가수요가 일정 숫자를 넘기게 되면 팬들은 그 드라마의 DVD·블루레이를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팬들의 적극적인 소구 욕망을 다양한 미디어 경로로 표현하고 이를 획득하면서 시작된다. 후속 DVD나 블루레이 제작의 경우 제작사, 방송사, 감독, 배우와 배우소속사까지 모두 컨택을 해서 만들어지는 사후 제작물이기 때문에 하나의 팬 서비스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팬들은 이 과정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자신이 DVD나 블루레이를 구매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어필하며, 동시에 상품 제작이나 코멘터리에 관여하기도 한다. 

다시말해 하나의 드라마가 DVD나 블루레이로 만들어져 판매되는 경로가 상업적인 가치가 아닌, 스스로 팬문화를 개척한 팬들의 힘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팬들이 만드는 스스로의 ‘권력’이자 ‘문화자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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