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발간···"좋은 시인, 착하고 부드러운 마음 가져야"
호기심 많고 젊은 사람 좋아하는 성격···"시 쓸 땐 철저하게 따지고 이성적으로 접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시 ‘풀꽃’의 저자 나태주(74) 시인은 초등학교 교사 출신 시인이다. 1945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그는 교사 재직 중이던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시인에 입문,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비롯한 40여권의 창작 시집을 출간했다. 시집 외에도 산문집, 동화집 등 저서 100여권을 세상에 내놨다.

2003년 발표된 ‘풀꽃’은 나 시인의 대표시로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오르고 드라마에 인용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최근엔 산문집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를 출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나 시인은 초등학교에서 43년간 아이들과 함께했다. 그래서일까. 나태주의 시는 젊고 쉽고 따뜻하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 15일 충남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시사저널e와 만난 나 시인은 “좋은 시는 짧고 단순하며 쉽고 감동이 있는 시”라며 “이런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나태주 시인이 지난 15일 충남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시사저널e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노성윤 PD
나태주 시인이 지난 15일 충남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시사저널e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노성윤 PD

시인이 된 계기는.

“어떤 여자가 좋아서 연애편지 쓰다가 시인이 됐다. 그래서 내 시는 연애편지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대상이 여성에서 세상으로 바뀌었다. 세상에게 보내는 러브레터가 내 시다. 러브레터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걸 쓴다. 울렁이는 마음을 담는다. 정성껏 예쁜 글씨로 아름다운 말을 골라 쓴다. 연애편지는 최대한 사기치려고 쓰는 편지다. 어떻게 사기치나. 상대방의 마음을 쓰러뜨려야 한다.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내 시다.”

나태주 시의 특징은.

“별것이 아닌 게 특징이다. 내 시는 크고 거창한 게 아니라 사소하고 흔하고 가까운 것들이다. 그래서 시가 졸렬하다. 내 시는 쉽게 쓰지만 어려운 내용을 쓴다. 작게 쓰지만 크게 쓴다. 시는 ‘따지며 느끼며’ 알 수 있다. 공부하듯 따지며 노래듣는 것처럼 느낀다. 내 시는 여기에 ‘들여다보며’가 추가된다. 물에서 물고기 보는 것처럼 들여다보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자면.

“내 묘비명은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이다. 굉장히 낭만적이고 단순하면서 쉽고 짧다. 그런데 좀 더 상황을 전개시켜보자. 내가 죽은 뒤 내 묘비에 ‘많이 보고싶겠지만 조금만 참자’를 적었다면 그걸 가장 많이와서 볼 사람은 내 아들과 딸이다. 자녀들은 ‘내가 보고싶어서 왔는데 우리 아버지가 미리 써놨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조금만 참자’는 인생을 얘기한다. ‘너희들 나 보고싶어서 왔지. 조금만 참어. 너도 나처럼 죽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각성이다. 인생을 잘 살란 얘기다. 엄청난 훈계다. 훈계라고 해서 혼내고 야단치고 도덕적 규범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한 줄 문장 속에 어떤 걸 알게 하는 게 내 시다.”

나태주 시인. / 사진=노성윤 PD

오늘 어머니 삼우제라고 들었다.

“어머니를 보내드리면서 딸의 슬픔이 며느리의 슬픔이 되게 하는 게 감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려면 시를 써야 한다. 시는 금방 아프게 할 수 있다. 어머니를 보내며 동생들을 일렬로 세우고 ‘어머니,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셔도 이렇게 낳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어머니께 보낸 최고의 찬사다.”

애착이 가는 시가 있다면.

“그런 건 의미 없다. 시는 생명과 같다. 생명은 유일하기 때문에 존중받는다. 시도 마찬가지다. 가장 정성스럽게 쓴 시는 ‘막동리 소묘’인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대중과 가장 호흡이 맞고 소통이 맞는 시는 ‘풀꽃’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별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다. 실패한 시라고 볼 수는 없지만 대단한 시는 아니다.”

풀꽃이 사랑받을 걸 예상 못했나.

“풀꽃이 유명해진 것은 내 뜻이 아니다. 쓰기만 내가 썼지 그 시를 키운 것은 세상이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고 어느 정도는 어머니가 키운다. 그 다음 세상과 아이가 서로 상호관계하면서 살면서 부딪히면서 성공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실패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태주가 생각하는 인생, 사랑, 행복은.

“인생은 사람마다 답이 다르기 때문에 답을 정할 수 없다. 그냥 사는게 인생이다. 장자에 ‘인생여 백구과극’이란 말이 있다. 인생이란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걸 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가장 정확한 말이다. 사랑은 소유 개념이 아닌 사용 개념이다. ‘저 여자는 내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은 늘 가변적이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봐주고 좋지 않은 걸 좋게 봐주며 싫은 것도 잘 참아가는 게 사랑이다. 오늘만이 아닌 나중까지 이러는 게 사랑이다. 행복은 내 안에 있다. 남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찾아내는 것이다. 가까이 있고, 흔하고 오래되고 값싸고 작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게 행복이다. 인생, 사랑, 행복 중에 행복이 가장 구체적이고 쉽다.”

나태주 시인 . / 사진=노성윤 PD

지난해 문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미투 운동은 어떻게 보는가.

“미투는 우리 사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각성제 역할을 했다. 여자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또 여자는 소유, 사유개념도 아니고 생명에 대한 외경의 개념으로 봐야한다. 생명을 받들고 존경하고 두렵게 생각하는 쪽으로 미투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힘을 가진 사람이 약한 사람을 배려하고 조심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겠다. 다만 미투가 성대결로 가서는 안된다고 본다. 남녀간 진실한 사랑은 권장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보는가.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은 패러다임의 변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촛불을 기점으로 거대 담론의 시대에서 생활 담론의 시대로 바뀌었다. 거대 담론이란 중요한 것 하나만 붙잡으면 나머지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무엇을 할 때 배고프고 다친 사람들은 목표를 위해 참으라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활 담론과 개인 담론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미투가 일어났고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투를 통해 우리 모두 존중과 배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시가 젊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호기심이 많고 젊은 사람을 좋아하고 친하게 생각하는 감정인 도파민이 많이 나와서 그런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아직까지 철이 안 들어서일 수도 있고. 시를 쓸 때 철저하게 따지고 이성적인 접근을 한다.”

나태주 시인. / 사진=노성윤 PD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착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공부도 다방면으로 넓게 해야한다. 그리고 자기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 난 시는 물론이고 동화책, 소설, 평론, 희곡, 수필도 많이 읽었다. 하나만 읽고 다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 교사 선생 43년하면서 지겨울 때도 있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지금 그때를 돌아보니 좋더라. 출세하고 일찍 유명해지려 하지 말고 열심히 살고 공부하고 노력하고 착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라. 세상을 아름답게 살다 보면 좋은 시를 쓰게 될 것이다.”

독서 외에 경험도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채근담 외편에 보면 ‘왜 사람들은 유자서만 읽고 무자서를 읽지 않는가’란 말이 있다. 유자서란 글자가 있는 책이다. 무자서는 글자가 없는 책이다. 인생, 세상, 사람에게서 책을 찾는 것이다. 이것들은 다 얽혀있지만 그 속에 진짜 책이 있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는 책 속에 없다. 책속에 있는 것은 남의 시다. 내 시는 내가 본 세상, 내가 겪은 인생 속에 있다.”

산문집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30대 눈높이에 맞춘 책인데 반응이 좋아서 나도 좋다. 책 제목도 젊은이의 의견을 반영해서 정했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라는 문구에는 리듬과 주고 받는 상호작용이 담겨있다. 가는 말만 있으면 재미가 없다. 이 시대에 소통이 필요하다. 글도 소통하자는 의미가 이 책에 담겨있다.”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 하루하루에 대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다. 내게 있는 것의 발견. 우리는 이미 행복하고 이미 사랑을 주고받고 있으며 우리 자신이 엄청난 사람이란 것을 전하고 싶다.”

일흔을 훌쩍 넘긴 노(老)시인은 인터뷰를 마치며 “일제시대 활동했던 윤동주와 김소월 같은 분은 뛰어난 재능을 갖췄음에도 시대의 축복을 받지 못해 20~30대 젊은 시기에 꺾였지만, 나는 시대의 축복을 받아 나이 70이 넘어서 이름을 알렸다”고 자신을 낮춘 뒤 “내 능력이 아니라 세상을 잘 만난 덕분”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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