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분명한 리듬을 갖고, 의식주 구석구석까지 반짝이며 사는, 빈센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붙여준 애칭은 ‘쓸모인류’. 빈센트의 쓸모 있는 삶을 기록하는 세 번째 이야기는, 정리 정돈의 기술과 잘 정리된 공간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 것입니다.

사진=김덕창

 

빈센트(vincent)는…

우리 나이로 예순여덟.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코넬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인문학적 공돌이’다. 매일 ‘Just do it’을 실천하며 제 삶의 쓸모를 찾아 움직인다. 신간《쓸모인류 : 어른의 쓸모에 대해 묻다》(몽스북)의 주인공이다.

 

좌)스테인리스 양념통 보관함_ 자주 사용하는 양념통의 개수와 크기에 맞춰 직접 주문 제작했다. 빈센트는 자기 삶에 필요한 만큼의 적정 개수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스테인리스는 나무보다 두께가 얇아 좁은 공간에서더 많은 수납을 가능하게 한다. 우)정리 정돈의 우선순위_ 주방의 각종 식기류 수납장은 빈센트의 정리 정돈 우선순 위를 명확히 드러낸다. 그는 일상의 90% 이상이 이뤄지는 공간일수록 더욱 부지런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손님 맞을 일이 많고, 요리를 직접 하는 빈센트에게 주방은 중요한 일상의 공간이다. 요리용 칼을 비롯해 포크, 나이프, 젓가락 등이 손이 닿는 곳에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Back to Normal의 시간

지난 연말 빈센트의 집에 들렀습니다. ‘송구영신’이란 말이 와 닿는 즈음이라 빈센트 식의 연말이 궁금했지요. 그러다 문득, 1년이라는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라는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류의 호기심이 생겼어요. 1년 365일이란 기준이 없다면 다음 날은 하루가 늘어난 366일, 그다음 날은 367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짠~ 하고 1년이란 기준점을 세워놨으니, 365일이 끝나면 새날, 즉 전과 다른 1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1년이란 기준점을 만든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그 이유를 떠나, 개인적으로 365일을 보내고 새로운 하루로 넘어간다는 그정서적 구분이 참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번 사는 짧은 인생, 365일을 보내고 한 번쯤은 삶을 정리 정돈해보라는 시간을 주었으니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소중한 정리의 시간인가는 사람의 한평생을 따져보면 분명합니다. 100세 인생이라고 치면, 딱 100번의 정리 정돈 시간이 주어진 셈이죠. 하, 어느 인기 있는 드라마처럼 맘대로 5회든 10회든 늘릴 수 없는 노릇이라, 더 애틋한 정리 정돈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흔히들 나이가 든 사인으로 ‘정서 과잉’, ‘수다 과잉’을 말하는데, 연말 연초를 맞이하면서 말이 길어졌네요. 과잉의 반대편에서 결핍이란 단어를 떠올립 니다. 정신없이 살았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결핍의 한 해가 ‘감정 과잉’ 을 부른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쓸모인류’ 빈센트의 연말은 나 같은 결핍의 인간과는 반대로 차분하게 정리되고 있습니다. “연말 연초라고 특별할 건 없어. 그래도 연말이 니까 좋아하는 이웃들을 만나 ‘클로징 이벤트’(연말 모임)를 갖고, 가능하면 왁자지껄 신나게 마무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할 뿐이야. 즉 일상으로의 복귀 (Back to Normal)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고 할까.”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말. 참 별것 아니면서 근사했고, 한편으로 따분하고 탈출하고픈 ‘일상’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슴 한구석이 ‘시린’ 말이기도 했습니다. 2019년의 새날을 맞이하면서, 다시 복귀 해야 하는 ‘일상’의 의미를 새삼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접시 수납공간. 빈센트는 빈티지 접시 수집가답게 꽤 많은 양의 접시들을 갖고 있지만 수납 공간을 시원하게 오픈해서 쉽게 필요한 접시를 찾을 수 있다. 빈센트는 살림살이는 잘 보이게 둬야 골고루 잘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집 안의 물건은 숨길수록 나쁜 일(부
다양한 접시 수납공간. 빈센트는 빈티지 접시 수집가답게 꽤 많은 양의 접시들을 갖고 있지만 수납 공간을 시원하게 오픈해서 쉽게 필요한 접시를 찾을 수 있다. 빈센트는 살림살이는 잘 보이게 둬야 골고루 잘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집 안의 물건은 숨길수록 나쁜 일(부패하거나 먼지만 쌓이거나)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집은 살아 있는 공간, 매일 정리 정돈해야 건강해져

우리는 ‘일상’이란 단어에서 특별함을 찾지 않습니다. 매일이라는 단어에는 반복적 혹은 기계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요. 그런데 그 일상이 없다면, 어떤 특별한 날도 있을 수 없을 겁니다. 특별한 날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한편으로 지루하고 반복 적인 일상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아닐까요? 가까운 행복은 일상에 숨어 있는데도 우리는 ‘일상 관리’를 외면하고 뭔가 다른 날, 특별한 날을 찾아 헤매는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면에서 빈센트만큼 일상을 잘 걷는 사람을 본 적이 드뭅니다.

좌)식탁 위나 집 안 곳곳에 꽃을 꽂아두는데 계절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적절하게 변화를 준다.우)욕실 수납공간. 특히 좁은 집일수록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욕실 입구의 모서리 부분에 삼각형 모양의 욕실용품 수납장을 만들었다
좌)식탁 위나 집 안 곳곳에 꽃을 꽂아두는데 계절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적절하게 변화를 준다.우)욕실 수납공간. 특히 좁은 집일수록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욕실 입구의 모서리 부분에 삼각형 모양의 욕실용품 수납장을 만들었다

 

그의 일상에는 습관처럼 정해진, 부지런한 풍경들이 있습니다.

풍경 1 손님을 초대하고, 직접 음식을 준비하는 그의 모습을 관찰합니다. 음식 재료를 마치고 나면 재료 준비에 쓰인 도구들은 그 즉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마치 내가 언제 재주를 부렸냐는 듯, 원래 자리에 조용히 위치하고, 다음번 차례를 기다립니다.

풍경 2 식사를 마치고, 아내가 설거지를 시작합니다. 그 옆에 선 빈센트가 설거지가 끝난 식기들을 받아 들고, 잘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아냅니다. 그렇게 뒤처리를 하는 동안 손님들과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집니다. 물 흐르듯 정리된 ‘일상’의 다정한 모습 입니다.

풍경 3 빈센트의 집 안 물건들은 언제 들러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상컨대, 새벽 5시에 들러도, 밤 12시에 들러도 그 집의 물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아니, 이 집은 언제 들러도 멀끔한 게, 집들이하려고 애써 정리한 신혼집 같아요.”

한때 사회적으로 유행했던 키워드가 정리 정돈이었는데, 그 ‘정리 정돈의 힘’이란 말을 소환할 수밖에 없네요. 정리 정돈은 일상을 차분하게 끌고 나가는 기초체력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누군가의 정리 정돈된 일상 뒤에는, 그만큼의 부지런한 규칙이 숨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이런 규칙을 알고 나면, “정리 정돈이 잘된 공간에는 운이 자연스레 따라 들어온다”는 빈센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집 역시 살아 있는 생명체야. 사는 사람이 늘 정리 정돈을 해야 집도 건강한 거야. 그런 면에서 정리 정돈은 ‘일상을’ 건강하게 하는 기본 조건이지. 물건이 흐트러지지 않고 제자리를 찾으려면 사는 사람이 부지런해야 해.”

 

좌)세탁기 옆 수납 장. 세탁기와 건조기를 설치하고 나니 그 옆에 30cm 정도 공간이 남았다. 세제류를 보관할 공간이 필요한 터라, 거기에 슬라이딩 방식의 수납장을 짜 넣었다. 세탁할 때만 꺼내 쓰고 평소엔 넣어두니 공간이 깔끔하 다. 비슷한 종류끼리 수납한다는, 정리 정돈의 ‘투게더 (together)’ 원칙을 잘 보여준다. 우) 상비약은 가까운 곳에. 나이 들수록 언제 상비약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 다. 침실과 욕실 사이, 즉 아침에 일어나 몸을 이동하는 통로 사이에 상비약품을 두었다. 가벼운 감기약과 알레르기 계통, 위가 예민한 부인을 위한 소화제 등이 한눈에 보이도록 정리되어 있다.
좌)세탁기 옆 수납 장. 세탁기와 건조기를 설치하고 나니 그 옆에 30cm 정도 공간이 남았다. 세제류를 보관할 공간이 필요한 터라, 거기에 슬라이딩 방식의 수납장을 짜 넣었다. 세탁할 때만 꺼내 쓰고 평소엔 넣어두니 공간이 깔끔하 다. 비슷한 종류끼리 수납한다는, 정리 정돈의 ‘투게더 (together)’ 원칙을 잘 보여준다. 우) 상비약은 가까운 곳에. 나이 들수록 언제 상비약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 다. 침실과 욕실 사이, 즉 아침에 일어나 몸을 이동하는 통로 사이에 상비약품을 두었다. 가벼운 감기약과 알레르기 계통, 위가 예민한 부인을 위한 소화제 등이 한눈에 보이도록 정리되어 있다.

 

내 삶에 맞는 적정량을 유지하고 사나요?

빈센트의 집을 유심히 들여다봤습니다. 때에 따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눈에 띕니다. 변하는 것들은 꽃들입니다. 식탁 위나 집 안 곳곳 장식용 꽃들은 계절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적절하게 변화를 줍니다. 나머지 것들은 거의 변하지 않고 제 모습, 제자리를 찾아 삽니다. 쓰고 나면 제자리에 두는 것, 거주자의 부지런함이 만든 정갈한 풍경입니다. 빈센트에게 정리 정돈의 노하우를 물었습니다. “우리들 인생 목표와 마찬가지로, 정리 정돈 역시 우선순위를 두어야겠지. 사용 빈도가 높을수록 더 꼼꼼하게 정리 정돈을 해야 해. 나는 요리를 좋아하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 많으니까 주방은 늘 정리 정돈 1순위 공간이야. 이를테면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 이 재료가 어디 있더라?’, ‘가위를 어디에 뒀지?’ 하느라 시간을 망칠 수는 없잖아. 사용 자의 동선에 맞게 모든 게 정리되어 있어야 해. ” 구체적으로 빈센트의 정리 정돈 노하우는 4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가능한 한 눈에 보이도록 오픈(Open) 형태일 것. 오픈 형태의 장점은 많다고 합니 다. 먼저 숨은 게 없으니 재료가 썩을 일이 없고, 있는 물건을 쓸데없이 2~3개 더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지저분한 것도 눈에 잘 드러나겠죠. ‘아이쿠, 여기는 왜 이리 지저 분하지’ 하고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결국 ’마찰력‘이 되어 청소를 자주 하는 계기를 만든다고 합니다.

둘째 비슷한 종류는 함께 모아서. 이른바 ‘투게더(together)’ 원칙입니다. 매일 쓰는 물건은 가까운 곳에, 덜 쓰는 물건은 따로 모아두는 방식입니다. 이를테면 세탁기 옆에는 세제류를 모아두고, 마당에는 화분과 화병들을 정리해두는 ‘다 같이’ 노하우입니다.

셋째 가지고 있는 물건의 개수를 파악할 것. 빈센트는 자기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파악 하지 못하면 적정 수준의 살림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퍼뜩 내 옷장은 왜 그리 빽빽한지, 옷들은 많은데 왜 입을 만한 옷은 없는지, 그 이유들을 알게 됐습니다. 한편으로 빈센트는 어떤 물건은 많아서 좋다고 말합니다. 빈센트가 수집한 다양한 접시와 와인 잔이 그렇습니다. 손님이 다섯 명 왔는데 한 명에게만 다른 모양의 잔을 건네는 건 대접의 격이 아니랍니다. 내 물건의 숫자에는 ‘내 삶의 스타일에 맞는 적정의 수’라는 규칙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넷째 여백의 미라고 할까요. 가지고 있는 물건이 10개라면 20~30% 정도의 여유 공간을 둘 것을 제안합니다. 나중에 필요한 것들을 추가할 공간이면서, 빼곡하게 차 있는 것보다는 적당히 비어 있는 게 삶을 여유롭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눈치가 빠르거나 자기 삶에 예민한 분이라면, 빈센트가 소개한 정리 정돈 노하우를 살림살이가 아닌 인생 살이 노하우로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2019년,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챙기되 여유의 공간 또한 잊지 말길! 뒤늦게 ‘해피 뉴 이어’, 인사를 전합니다.

 

기획 정미경 기자 글 강승민(프리랜서) 사진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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