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보전 방안·11시간 휴식권, 예외 사항 둬···교섭력 약한 영세사업장 및 노조 없는 노동자 불리 지적

민주노총이 20일 오후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쟁취, 친재벌 정책 강행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합의는 개악이라며 내달 파업을 예고했다. / 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이 20일 오후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쟁취, 친재벌 정책 강행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합의는 개악이라며 내달 파업을 예고했다. / 사진=연합뉴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탄력근로제 합의가 노동자의 노동시간 불규칙성을 확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러 합의 사안에 예외를 둬 노동자의 교섭력이 약한 영세사업장이나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일수록 휴식권 확보와 임금 보전이 불리할 수 있다.

지난 19일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 참여한 한국노총, 한국경총,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부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최장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경사노위 합의에서 탄력근로제에 대해 근로시간을 기존 하루 단위에서 주 단위로 정하기로 바꾼 점이 지적됐다. 이 경우 1주 내에서 사용자가 일별 근로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일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탄력근로제에 대한 근로시간을 주단위로 정하면 날짜별로 자유롭게 변동될 여지가 생긴다. 일별 시간을 사전에 확정할 필요가 없어진다”며 “탄력근로제는 규칙적 변경에 관한 제도로 사전에 확정해야 하는데 변동성이 커지면 노동자의 생활이 불규칙해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탄력근로제 주간 계획만 가지고 있으면 사용자가 1주내에서 일별로 근로시간을 정할 여지가 생겼다”며 “노동자가 일단위 계획할 권리가 없어진다”고 했다. 노동시간의 불규칙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경총 관계자도 인정했다. 경총 관계자는 “주단위로 탄력근로제 근로시간을 정하면 일별로 근로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노동시간 불규칙성은 합의문의 다음과 같은 단서 조항으로 더 커졌다. 합의문은 ‘다만 서면합의 시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천재지변, 기계고장,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 정해진 단위기간 내 1주 평균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주별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이 단서 조항에서 ‘업무량 급증’이라는 단어와 ‘협의’라는 단어는 불확실성을 키운다”며 “사용자는 원하기만 하면 업무량 급증이라고만 이유를 대고 주별 근로시간을 바꿀수 있다. 특히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가 아닌 협의로 가능하게 했다. 이는 공문을 내리는 등 통보로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 임금보전 방안·11시간 휴식권, 예외 사항 둬···영세사업장 및 노조 없는 노동자 불리

노동자들은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난 만큼 연장근로에 대한 임금 가산 (할증) 부분에서도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에는 일주일 노동시간 52시간까지 임금 할증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사노위는 노동자들의 임금 손실을 막기 위해 합의문에 ‘사용자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합의문에 단서 조항으로 ‘다만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했다.

이 부분은 노동자의 교섭력이 약한 영세사업장과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정훈 정책국장은 “이번 경사노위 합의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로 노사가 임금 보전 방안을 마련해 신고하도록 했으나 근로자 대표와 합의로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를 뒀다”며 “이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약한 영세사업장과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사업자가 신고를 하지 않도록 하거나 임금보전 방안을 불리하게 적용하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보전 방안을 어떻게 할지 기준조차 없다. 최소한의 기준도 없는 상황”이라며 “또 임금보전 방안을 신고만 하게 돼있고 처벌 조항도 없다”고 말했다.

김성희 교수는 “이번 경사노위 회의에서 임금보전 방안을 구체화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4주 이상 탄력근로제 등 길게 적용 되는 부분은 40시간 넘으면 탄력근로제 적용 유무와 상관없이 무조건 임금 보전을 하는 것이 임금보전을 이행하는 장치인데 이 조항은 합의문에서 빠졌다”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번 합의에서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한 것도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다’고 예외를 뒀다.

이 국장은 “이번 합의에서 11시간 휴식권 의무화도 예외를 둬 노동자 교섭력이 작은 영세사업장과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타격이 된다”며 “이처럼 디테일(세부 사안)에 노동자의 불리한 점이 다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했다.

김성희 교수는 “국회는 이러한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 사안의 문제점들에 대해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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