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 속속 생기던 1990년대, E마트·월마트·롯데 마그넷 등 IMF 외환위기에도 대형마트만 고속성장···영업익 고꾸라지는 현재와 대비
옆 마트 할인하면 곧바로 할인 돌입··· 장보기 대행 서비스도 등장

1990년생은 올해 서른살이 되었고, 30년이라는 세월은 강산을 못해도 서른 번은 바꾼다. 1990년대 보도된 과거 기사를 바탕으로 그간 유통업계의 변화상을 바라본다. 현재 유통산업의 고민이 당시의 고민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혹은 수십년 세월의 경과에도 여전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등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펴본다. [편집자주]

1990년대는 이른바 할인점 전성시대였다. 1993년 이마트가 1호점(창동점)을 냈다. 국내 대형마트 시대의 개막이었다. 이후 1997년 홈플러스 1호점(대구점)이 오픈했다. 1998년에는 세계 1위 할인점 브랜드였던 월마트가 국내에 들어왔다. 같은해 4월 롯데마트의 옛 이름인 롯데 마그넷 강변점이 문을 열었다. 지금은 대형마트 3사에 밀려 기를 못 펴고 있지만 이랜드리테일 뉴코아아웃렛 킴스클럽 역시 당시에는 인기였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우후죽순 새 대형마트 브랜드가 탄생하던 당시에는 대형마트 매출 역시 급성장했다. IMF 외환위기로 전국이 휘청거릴 때에도 대형마트는 성장했다. 1999년 12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할인점 전체 매출은 지난해 6조원에서 올해 8조원으로 30%이상 성장했다"면서 "내년에도 이같은 성장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올해보다 28% 증가한 10조 2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있다"고 적었다. "특히 IMF로 씀씀이가 줄어든 고객들이 대부분 할인점으로 유입되면서 시장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라고도 보도했다. 지난 한 해 이마트 할인점 매출만 11조원이 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국내 할인점 시장은 분명 꾸준히 성장해왔다. 

새 밀레니엄을 맞아 IMF로 침체된 소비심리가 되살아나면서, 2000년 한 해에 이뤄진 대형마트 신규 출점만 60여건에 달했다. 출점보다 폐점이 많은 현재와 비교하면 당시는 말그대로 할인점 전성시대였다. 

지금의 '이커머스'와 같이 폭풍성장 중이었던 할인점의 당시 고민은 마트 간 경쟁이었다. 이마트는 1998년 월마트가 국내에 상륙하자 가격정책에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1998년 8월 13일 <한겨레> '월마트 공룡 공세에 이마트 '이에는 이'' 기사를 보면 "국내 할인점업계 선두주자 이마트는 12일 하루 동안 월마트와 두차례의 가격 인하를 주고받으며 자존심 경쟁에 나섰다"고 나온다. 내용은 월마트가 7월부터 텔리비전·라면 등을 타 마트보다 10~30%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있는데, 곧바로 이마트가 40여개 품목에 대해 무기한 최저가 판매를 선언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월마트는 또다시 2차 가격 인하를 단행했고, 또 다시 이마트는 월마트의 할인가격보다 많게는 3만원까지 값을 깎아 팔기도 했다. 당시 이마트는 "인접 상권에서 더 싼 물건을 팔면 가격의 2배를 보상해 준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출혈경쟁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2000년대 이커머스가 등장하면서 '최저가' 출혈 경쟁을 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998년에는 가격 할인 경쟁뿐 아니라 아니라 셔틀버스 경쟁도 있었다. 국내 브랜드 대 외국 브랜드 마트 간 경쟁은 2000년대 중반 월마트가 국내 시장 철수를 밝히며 이마트에 흡수되고, 홈플러스가 홈에버(까르푸)를 인수하면서 3강 체제로 정리된다. 

국내서는 쓴맛을 봤지만 월마트는 아직 건재하다. 얼마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그레그 포란(Greg Foran) 월마트 미국 법인 최고경영자(CEO)와 만나기도 했다. 딜로이트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리테일 파워(Global Powers of Retailing 2019)’ 보고서에서 월마트는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경쟁사인 아마존은 코스트코와 크로거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다만 이제 고민의 대상이 변했다. 월마트의 경쟁사가 더이상 코스트코가 아닌 아마존이듯, 국내 대형마트의 경쟁사는 더이상 마트가 아니다. 마트의 경쟁자는 결국 물건을 많이 그리고 잘 파는 곳일진데, 그런 면에서 이커머스 업체가 현재 이들의 경쟁상대다. 과거 대형마트는 배송 대신 '대행'을 편의 서비스로 내걸었다. 이른바 '장보기 대행'이다. 비슷한 부분은 있다. 모두 '당일 배송'을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1997년 9월 30일자 <매일경제>기사 "시장 대신 봐 드립니다"를 보면 늘어나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장보기 대행 서비스가 유행한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주문자로부터 구매 목록을 받은 대행 업체는 할인점서 의뢰받은 물품을 구매해 당일날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주문은 '전화나 팩스'로 받는다. 모바일 주문이 익숙한 현재의 눈으로 보면 귀찮고도 아득한 부분이다. 

이제는 오프라인 마저도 방문에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배송에 방점을 찍고 있는 모양새다. 이미 100조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이커머스로 모든 오프라인 업체가 몰리고 있다. 이마트는 올해 성장 핵심 키워드로 ‘온라인 신설법인’을 꼽고, 3월 온라인 통합법인이 출범하면 공격적인 마케팅을 실시해 온라인 통합법인의 총매출이 지난해보다 30% 가량 증가한 3조원이 넘어서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롯데마트 역시 모바일 전용 상품을 지난해 3500억원 규모에서 올해 4300억원 규모로 확대한다. 홈플러스는 오는 21일 발표하기로 했던 온라인 사업 전략 발표회를 3월달로 미뤘다.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이 올해와 내년의 전반적인 성장 전략과 함께 발표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이토록 모두가 온라인에 힘을 주고 있다. 대형마트의 절박함을 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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