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8개월째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 발표 안해
고용부 “탄력근로제, 유연근로제 등 논의 사안 확인 후 가이드라인 확정할 것”
전문가들 “기업 현장 실태조사 통해 예외조치 인정할 필요 있어”

정부가 포괄임금제 개선, 가이드라인 발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 사진=셔터스톡
정부가 포괄임금제 개선, 가이드라인 발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 사진=셔터스톡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적용 문제를 논의해온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의 사회적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모양새다. 그러나 정부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밀어붙이면서도 정작 노동자에게 유리한 포괄임금제 개선 및 가이드라인 발표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현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을 시작으로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시행하면서 직장인들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됐다. 다만 포괄임금제를 적용받는 사무직이나 게임업종 등 일부 업계에서는 이 제도로 추가수당 없이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도 근무하는 등 악용하고 있어 정부가 마련할 포괄임금제 개선 가이드라인에 관심이 모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포괄임금제 규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 포괄임금제 오·남용 지도지침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8월 한 차례 연기한 이후 지금까지 약 8개월 동안 감감무소식이다.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업종에서 연장·야간 근로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대법원은 판결을 통해 감시·단속 업무 등 제한적인 업종에만 적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현장에선 무분별하게 활용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 근로시간과 상관없이 따로 수당이 정해져 있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기업에서 근로자들이 추가 근무를 진행해도 정해진 기본급여 이상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왔다.

특히 포괄임금제는 사무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매출액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포괄임금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한 기업 195개사 가운데 113개사(57.9%)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했다. 또 포괄임금제 적용 기업의 70.8%가 포괄임금제의 원칙적 금지에 반대하고 있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무에 대한 구체적 지침 마련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에서 현장 혼란은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의류업계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아무개씨(27)는 “주어진 근로시간 내 업무를 마쳐본 적은 손에 꼽아 야근을 거의 매일 하고 있다”며 “야근을 적을 때는 하루 2시간, 바쁠 때는 5시간도 하게 되는데 포괄임금제도로 임금이 산정돼 추가 수당을 따로 받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출판사에서 근무 중인 유아무개씨(34)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주당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출판업이다 보니 마감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업무를 제때 끝내기 위해 매주 2일 이상 야근을 하고 있다”며 “회사에서 따로 수당을 받은 적은 없다. 임금 지급 방식이 포괄임금제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원래 정부의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예외적인 경우에만 포괄임금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산정이 가능하다면 노사합의가 있어도 포괄임금제가 전면 금지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연차수당이나 퇴직금을 포괄임금에 포함하지 않고, 실제 연장근로시간을 포함해 주 52시간을 넘길 경우 위법으로 본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고용부 관계자는 “올해 발표될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에 크게 바뀐 점이 추가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은 근로시간 단축과 연결되며 탄력근로제를 포함한 유연근로제도 확대논의 진행상황 등을 반영해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포괄임금제도 폐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기업에서의 악용 사례 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기업이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는 선에서 연장근로시간을 반영하고 있다면 포괄임금제를 예외적으로 인정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 마련은 필요하지만, 업종별 특성상 포괄임금제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포괄임금제를 놓고 정부가 기업들의 실태 조사를 통해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지침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실제 기업에서는 근로시간 산정을 어려움으로 불가피하게 포괄임금제를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산업현장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포괄임금제 금지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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